함께 집에서 영화를 보던 친구가 이렇게 말한다. “야, 앞으로 돌려서 보자.” 이때 ‘앞으로 돌리자’는 것은 본 부분을 다시 보자는 것일까, 아니면 안 본 부분을 건너뛰고 나아가자는 것일까? 친구의 말은 두 가지 모두로 해석될 수 있다.

이는 우리말의 ‘앞’과 ‘뒤’가 의미상으로 과거와 미래를 모두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 한 방식대로 해라’라고 할 때에는 ‘앞’이 과거를 가리킨다. 그러나 ‘실수한 것은 잊고 앞만 보며 나가자’라고 할 때에는 ‘앞’이 미래를 나타낸다. ‘뒤’도 마찬가지이다. ‘이 업무는 뒤로 갈수록 어려워질 거다’라고 할 때에는 ‘뒤’가 미래를 나타낸다. 하지만 ‘뒤만 자꾸 돌아보면 발전이 없다’라고 할 때에는 과거를 가리킨다. 따라서 분명히 의사를 전달하려면 부가적인 표현을 함께 써야 한다. “야, 나 처음 못 봤어. 앞으로 돌려서 다시 보자.” 하고 말하거나, “너무 지루하네. 앞으로 돌려서 끝만 보자.” 하고 말하는 것이 방법이 될 것이다.

이처럼 같은 말이 비슷한 뜻도 아니고 정반대의 의미를 지니는 것은 꽤 흥미로운 현상이다. 이는 ‘앞, 뒤’의 공간적 의미와 관련이 있다. ‘앞, 뒤’가 시간과 관련된 표현으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더 기본적인 의미는 공간과 관련한 것이다. ‘앞’은 ‘향하고 있는 쪽’이라는 뜻이 가장 기본인데, 이때 ‘앞’이라는 공간은 아직 걸어가지 않은 곳, 이후 걸어갈 곳이기 때문에 시간상 미래와 관련이 있다. 반면 ‘앞’은 ‘차례나 열에서 먼저가 되는 부분’이라는 뜻도 있다. 공간적 순서상 먼저라는 뜻인데, 시간의 순서에서 ‘먼저’는 과거가 될 수 밖에 없다. 여기서 시간상 과거의 의미가 나온 것이다. 말의 의미는 이처럼 오묘하다.

이운영 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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