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겔라 메르켈(왼쪽) 독일 총리와 마르틴 슐츠 사회민주당 대표가 대연정 예비협상을 마치고 열린 기자회견 도중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베를린=로이터 연합뉴스

지난해 9월 총선에서 제1당 지위를 유지했지만 약 4개월간 내각 구성에 실패해 곤란을 겪었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기독민주당(CDU)ㆍ기독사회당(CSU) 연합이 최대 야당 사회민주당(SPD)과의 대연정 예비협상에 성공했다. 이로써 메르켈 총리는 4연임 발판을 마련하며 한숨 돌리게 됐다.

12일(현지시간) 메르켈 총리와 기사당 대표인 호르스트 제호퍼 바이에른주 총리, 마르틴 슐츠 사민당 대표는 본협상에 앞서 새 연정의 정책목표에 합의하는 예비협상 과정을 완료하고 각 당에 대연정을 위한 본협상에 돌입할 것을 권고했다. 양측은 지난 7일부터 예비협상에 돌입해 막판에는 24시간 마라톤 협상을 벌인 끝에 이날 아침 28페이지 분량의 합의문에 서명했다. 메르켈 총리는 협상을 마치고 기자회견에서 “세계는 우리를 기다리지 않는다. 유럽에 새로운 시작이 필요하며, 그게 곧 독일의 새로운 시작”이라고 말했다.

독일 일간 빌트에 따르면 기민당 측이 고용자와 피고용자의 건강 보험 기여금을 동일하게 하라는 사민당의 요구에 동조하면서 극적인 돌파구가 마련됐다. 대신 사민당은 최대 세율을 45%로 인상하라는 요구를 접고 기존 최대세율인 42%를 인정했으며 100억유로(약 12조9,000억원) 규모 감세안 마련에도 동의했다.

난민 문제도 일단 실타래를 풀었다. 해외 가족 수용은 매달 1,000명의 상한선을 두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또 연간 상한선은 18만명에서 22만명 사이로 설정했으며 독일에 난민으로 오기 전 가족관계였던 사람과 범죄 경력이 없는 사람만이 들어올 수 있도록 했다. 독일 난민법에 따라 특정 이민자의 난민 자격이 인정되면 그 가족도 받아들여야 하지만, 메르켈 정부는 난민 유입이 급증할 것을 우려해 이 제도의 시행을 올해 3월까지 유예한 상태였다.

이외에 양측은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유로존 개혁을 내세우는 프랑스와 긴밀하게 협력하기로 했으며, 주택 공급 증대ㆍ고급 노동력 이민 허용법 도입ㆍ전 국가차원의 저개발지역 지원ㆍ연금제도 안정화와 2030년까지 전력 공급의 65%를 재생가능전력으로 대체하는 계획 등에도 합의했다.

이날 합의로 대연정은 일단 1차 관문을 넘었지만 21일로 예정된 사민당 대의원 회의에서 연정 반대가 당론으로 정해질 경우 어렵게 합의안을 끌어낸 대연정이 좌초할 가능성도 있다. 실제 당내에선 사민당이 또다시 기민당과의 연정에 참여할 경우 메르켈 총리의 그늘에 가려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지 못할 것이라는 회의론이 퍼지고 있다. 슐츠 대표는 9월 총선 직후 “야성을 회복하겠다”며 연정 거부를 선언했지만, 현재는 메르켈 총리의 조기 총선거 선언이 부담스러웠기에 반 강제로 손을 잡은 상태다. 사민당 청년조직 대표인 케핀 퀴네르트는 반 대연정을 주장하는 전국 순회 운동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메르켈 총리 역시 상황이 그다지 좋지 못하다. 지난해 소수 야당인 자유민주당(FDP) 및 녹색당과의 ‘흑ㆍ황ㆍ녹’ 연정 협상이 결렬되면서 기세는 더욱 위축됐다. 극우 독일대안당(AfD)이 제3당까지 성장하는 등 선전하면서 자민당마저 덩달아 우경화되는 등 보수의 아성을 위협받고 있다. 베를린자유대학의 정치학자 오스카르 니더마이어는 경제지 한델스블라트에 “메르켈 총리는 정점을 지났다”며 “기민당이 차기 선거에서 좋은 성적을 내려면 그가 총리직을 일찍 내려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정 협상이 결렬될 경우 메르켈 총리는 소수 내각을 구성하거나 조기 총선거를 할 수 있지만 어느 쪽이나 메르켈 총리 입장에서는 더욱 취약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독일의 대연정 합의 소식에 유럽은 고무됐다. 유럽연합(EU)의 장클로드 융커 집행위원장은 “유럽 정책에 중대하고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조력”이라고 환영했고 벤자민 그레보 프랑스 정부 대변인도 “독일에도 프랑스에도 유럽에도 좋은 일”이라며 “유럽의 안정과 미래에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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