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비닐하우스만 금지 조치

작년 불 난 숙소 모두 컨테이너
거주 형태도 비닐하우스의 7배
그나마 농업 분야에 한해 금지
정부 개선 대책 ‘눈 가리고 아웅’
구체적 기숙사 기준 내놓아야
게티이미지뱅크

‘농업분야 외국인 근로자 권익보호를 위해 비닐하우스를 숙소로 사용하는 사업장은 신규 외국인력 배정이 중단됩니다.’

지난달 22일 정부가 제25차 외국인력정책위원회를 열어 발표한 농업분야 외국인 근로자 근로환경 개선 방안입니다. 일부 사업주들이 공장의 옥상이나 농장 한 켠의 비닐하우스를 숙소랍시고 제공하면서 수십만원에 달하는 월세까지 받는 등 인권침해에 가까운 거주환경에 대한 문제 제기가 나오자 앞으로 이런 사업장에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일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겁니다.

왜 이제서야 나왔나 싶을 정도로 박수를 받을 조치이긴 한데, 이런 의문이 듭니다. 비닐하우스 못지 않게 위험한 컨테이너 같은 임시 주거시설은 그럼 괜찮다는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정부는 컨테이너는 비닐하우스보다는 상황이 낫기 때문에 일제히 규제할 수는 없다는 입장입니다. 심지어 지난해 초에는 외국인 근로자 숙식비 공제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는데요. 아파트ㆍ단독주택, 연립ㆍ다세대 주택은 물론이고 임시 주거시설을 제공하는 경우에도 통상임금의 최대 20%까지 소득에서 공제를 하도록 했습니다. 컨테이너 등의 숙소 사용을 오히려 권장한 겁니다.

하지만 컨테이너는 비닐하우스만큼이나 열악합니다. 2013년 한국외국인력지원센터가 외국인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주거실태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일반주택(41.4%) 다음으로 컨테이너 거주자(30.2%)가 많았는데요. 비닐하우스 거주자(4.1%)의 7배를 넘습니다. 컨테이너 건물은 겨울철 난방시설이 따로 없어 라디에이터 등 전열기구에만 의지해 한파를 견뎌내야 하는데다가, 불이 붙으면 빠르게 타면서 유독가스를 내뿜는 샌드위치 패널로 만들어져 화재에 취약합니다. 실제로 지난해 잇따라 화마에 휩싸였던 외국인 근로자들의 숙소는 모두 컨테이너였습니다. 지난달 18일 부산 사상구 공장 컨테이너 기숙사에서 잠을 자던 베트남인 노동자 A(35)씨는 추위를 막으려고 사용했던 전기장판이 원인이 된 화재로 목숨을 잃었고, 나흘 후인 22일에도 부산 강서구 공장의 컨테이너 기숙사에서 불이 났습니다. 경상도의 한 농장에서 일했던 베트남인 유영(28)씨는 “여러 명이 함께 지내 한 콘센트에 플러그 수십 개가 꽂혀있는데, 숙소였던 컨테이너는 비가 오면 방바닥에 물이 차서 매일매일 무서웠다”고 말했습니다.

게다가 이번 대책은 농업분야에서 일하는 외국인들에게만 적용돼 제조업이나 건설업, 서비스업 등 다른 분야의 외국인 근로자들은 비닐하우스에 살게 되더라도 규제할 근거가 없습니다. ‘외국인 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의 고용허가 요건에는 따로 숙소의 기준이 없고, 국내 근로기준법은 기숙사에 대해 ‘근로자의 건강, 풍기와 생명의 유지에 필요한 조치를 강구하여야 한다’고 추상적으로만 언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근로자 기숙사 기준을 구체화한 근로기준법과 외국인고용법 개정안을 지난해 9월 발의했지만 아직 제대로 된 논의조차 시작되지 않은 상황인데요. 이한숙 이주와인권연구소장은 "상당수 외국인 근로자들이 이용하는 컨테이너 등의 임시 주거시설에 대한 조치는 없이 비닐하우스, 그것도 농업 분야에 대해서만 제한을 하겠다는 건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에 다름 없다”고 꼬집었습니다.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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