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 정책혁신위 의견서 공개

‘핵개발 전용’ 문구도 청와대 작품
“탈북민 진술ㆍ정황에 기초…
객관성ㆍ신뢰성 없었다” 반성
총선 직전 北 식당 집단 탈북도
국정원 요구에 통일부가 발표
임성택 통일부 정책혁신위원회 위원이 2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이전 정부의 개성공단 전면 중단 결정 등 대북 정책 점검 결과 발표를 마친 뒤 기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2월 정부가 내린 개성공단 가동 중단 결정이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일방적 지시 결과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4월 총선 직전 이뤄진 통일부의 북한 식당 여종업원 집단 탈북 사실 공개도 국가정보원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 대북 정책 주무 부처가 남북 관계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는 사안을 다루면서 정권에 의해 이리저리 휘둘린 셈이다.

통일부 정책혁신위원회는 28일 개성공단 중단 등 보수 정부가 추진한 주요 대북 정책의 점검 결과를 담은 ‘정책혁신 의견서’를 발표했다. 9명의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혁신위는 3개월여 동안 박근혜 정부 등의 대북ㆍ통일 정책 추진 과정에서 제기된 쟁점 사안들을 검토한 결과를 이날 의견서에 담았다.

김종수 혁신위 위원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개성공단 중단 결정과 관련해 “지난 정부 발표와 달리 지난해 2월 10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회의 전인 2월 8일 박 전 대통령이 개성공단에서 철수하라는 지시를 내렸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잇단 북한 핵ㆍ미사일 도발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개성공단 중단을 통일부가 제안했고 NSC 상임위가 이 방침을 공식 결정했다는 게 전 정부 설명이었다.

혁신위에 따르면 지난해 2월 7일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직후 열린 NSC 회의까지 ‘단호한 대응’이라는 원칙적 논의뿐이었다. 그러나 이튿날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오전 김규현 당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 홍용표 당시 통일부 장관에게 개성공단에서 철수하라는 박 전 대통령의 구두 지시를 통보한 뒤 당일 오후 김관진 당시 국가안보실장 주재 회의가 소집됐고, 이 자리에서 통일부가 만든 철수 대책안을 기초로 세부 계획이 마련됐다.

다만 대통령 지시의 배경ㆍ경위까지는 규명되지 못했다. 무성했던 ‘비선 실세’ 최순실씨 개입 소문은 여전히 의혹인데, 혁신위 조사 대상이 통일부로 한정된 탓이다.

당시 정부가 중단 필요성의 주요 근거로 제시한 ‘개성공단 임금의 핵개발 전용(轉用)’ 문구도 청와대 작품이었다. 정부 성명 초안을 작성한 통일부가 2월 9일 청와대와 협의하는 과정에서 청와대가 자금 전용 표현이 들어가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고, 이튿날 NSC 상임위 회의 뒤 성명문을 대통령에게 서면 보고할 때 해당 표현이 최종 포함됐다는 게 혁신위 설명이다. 김종수 위원장은 “당시 참고된 문건은 주로 탈북민 진술과 정황에 기초한 것으로 객관성ㆍ신뢰성이 담보되지 않은 것이었다”고 했다.

혁신위에 따르면 통일부가 ‘갑작스런 운영 중단은 피해가 크다. 철수 시기를 잘 판단해야 한다’는 의견을 개진했지만 ‘대통령 지시를 바꿀 수 없다’는 청와대에 막혔다. 혁신위는 “개성공단 중단은 행정 행위가 아닌 초법적 통치 행위 방식으로 이뤄졌지만, 그렇더라도 헌법과 법률에 근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통일부는 북한 해외 식당 여종업원 집단 탈북 사실 공개에도 동원됐다. 혁신위 관계자는 “통일부가 대북 관련 사항을 발표하는 창구 역할을 했는데 독자적 판단보다는 관련 기관 요청에 의해 발표하는 일이 잦았다”며 “당시 권력 구조와 역학 관계상 자기 의지와 무관하게 악역을 맡았던 셈”이라고 했다.

통일부 책임도 없지 않다고 혁신위는 질타했다. 부당 요구는 법률을 근거로 거부해야 하는데도 그러지 못한 데다 경험과 전문성을 살리지 못한 채 지나치게 수동적인 태도를 취할 때가 많았다는 것이다. 혁신위는 “통일부의 깊은 자기 반성과 성찰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통일부는 입장 자료를 내고 “겸허한 자세로 받아들이고 필요한 후속 조치를 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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