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결과... 회의록 조작 등 추가 확인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 송경동 간사가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KT빌딩에서 기자 브리핑을 열고 조사 결과를 중간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20일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진상조사위)의 중간 조사 결과 발표는 블랙리스트 작성과 지원 배제 실행이 알려졌던 것보다 더 촘촘하고 광범위하게 적용됐음을 보여준다.

진상조사위의 조사 결과 예술인 개인, 민간 단체뿐만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지자체)까지 지원 배제 명단에 오른 것으로 확인됐다. 박근혜 정부 시절 야당이던 더불어민주당 출신의 정치인이 도지사나 시장으로 있었던 충북도(도지사 이시종), 전북 전주시(시장 김승수), 경기 안산시(시장 제종길), 경기 성남시(시장 이재명) 소속 문화단체가 블랙리스트에 포함됐다. 2016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문예위)의 공연예술창작산실 지원사업과 관련, 이들 지자체가 지원대상에 올랐는데, 2014~2016년 작성된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 예술정책과 관리리스트’(‘관리리스트’) 에 4군데가 명시됐고 이중 충북, 전주, 성남은 지원에서 배제됐다. 여권 성향 지자체장의 문화단체가 블랙리스트에 오른 사례는 없었다.

블랙리스트 실행 과정에서 청와대, 국가정보원(국정원), 문체부뿐만 아니라 경찰까지 관여한 정황도 드러났다. 2015년 7월 문체부 직원이 영화진흥위원회 예술영화전용관 사업 심의 결과를 국정원 간부 2명과 경찰청 정보국 간부에게 보낸 사실이 진상조사위 조사 과정에서 확인됐다. 국정원 간부는 문체부 직원에게 “영화단체 지원사업 중 인디다큐, 인디포럼 등 이념성이 강한 부분이 포함되어” 있다며 대처 계획을 다그치는 답신을 보냈다. 진상조사위 관계자는 “연간 11억~13억원 예산을 지원하는 예술영화전용관사업은 (천안함 침몰에 대한 정부 공식 발표에 의문을 제기한) ‘천안함 프로젝트’를 상영한 (대구 예술영화전용관)동성아트홀을 지원을 배제했다”며 “국정원이 (최근 선임된) 최승호 MBC 사장의 다큐멘터리 '자백' 등에 대해 지원을 배제한 사실도 확인됐다”고 덧붙였다.

출판진흥원이 블랙리스트 인사 지원을 배제하기 위해 심사 채점표, 회의록까지 조작한 사실도 추가 확인됐다. 진상조사위는 “심사위원 개별 조사와 출판진흥원의 2016년 초록ㆍ샘플 지원사업 심사결과표를 대조한 결과, 출판진흥원에서 보고한 심사결과가 임의로 조작되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원본 12차 심사결과표에는 이기호 작가의 소설 ‘차남들의 세계사’, 정지형 작가의 동화 ‘삽살개가 독에 감춘 것’과 ‘텔레비전 나라의 푸푸’ 등 3권이 번역지원 사업 ‘적격’으로 기재됐지만, 위조된 심사표에는 모두 부적격으로 바뀌었다. 장강명 작가의 소설 ‘한국이 싫어서’도 14차 심사에서 심사 조작으로 탈락한 것으로 확인됐다. 2016년 제3회 ‘찾아가는 중국도서전’ 역시 진흥원이 60종을 지원 도서로 선정했지만, 진중권(미학오데세이1~3), 박시백(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등 블랙리스트 인사들의 저서 5종을 탈락시키고, 애초 55종만 지원하기로 한 것처럼 회의록을 조작했다.

각종 방해에도 블랙리스트 단체가 최종 지원단체로 선정되면, 공모사업 자체를 아예 폐지하기도 했다. 문체부 산하 예술경영지원센터는 2015년 블랙리스트에 오른 극단 마실이 뉴욕문화원과의 매칭 사업에 선정되자 이 사업을 폐지했고, 한국예술인복지재단도 민족미술인협회·한국작가회의·우리만화연대·서울연극협회 등 블랙리스트 등재 단체가 선정된 사업을 중단했다.

진상조사위는 지난 8월 31일부터 3개월간 블랙리스트 피해 사례를 받은 결과, 175건이 접수됐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는 공연이 51건으로 가장 많았고, 영화가 33건으로 뒤를 이었다. 진상조사위는 다음 달 17,18일 콘퍼런스를 열어 블랙리스트 재발 방지를 위한 권고 사항을 마련할 방침이다.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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