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미식회’ ‘알쓸신잡’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맛 칼럼니스트’로 이름을 알린 황교익씨. 음식과 맛에 대한 이야기를 다양한 소재와 연결 지어 재미있게 풀어내며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고 있는데요, 사실 ‘맛 칼럼니스트’라는 그의 직업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매우 생소했습니다. 하지만 ‘먹방’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이제는 선망직업 중 하나가 됐죠. 그렇다면 황교익씨는 어쩌다 이 분야에 발을 들이게 된 것일까요? 음식에 문외한이었던 황교익씨가 ‘맛’에 눈 뜨고, 맛 칼럼니스트가 되기까지의 우여곡절을 정리해봤습니다.

기획·제작: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니들이 맛을 알아?

“먹고는 살라나”

아내에게 “음식 전문기자가 되겠다”고 말했을 때 아내는 ‘한심하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 밑도 끝도 없이, 게다가 음식엔 문외한인 내가 갑자기 음식에 대한 글을 쓰겠다고 하니 그럴 수밖에…

게다가 그 때 난 이미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었기에 아내의 걱정이 큰 것은 매우 당연했다.

하지만 자신 있었다.

누군가 개척하지 않은 분야를 개발해보고 싶었다.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설령 그것이 무모한 도전일지라도. 사실 이런 결심을 하게 된 배경엔 결정적인 계기가 된 사건이 있었다.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생기다.

밥벌이를 위해 잠시 다녔던 농민신문에서 ‘음식과 관련된 기사’를 하나 둘 썼는데, 그 과정에서 생산자 입장이 아닌 소비자, 즉 먹는 사람의 입장에서 들여다보게 됐다. 이 때부터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이거다!!!

결정적 사건은 90년대 초 떠났던 일본 출장이었다. 당시 일본은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보다 앞선 경제대국이었다. 일본의 음식문화가 발달한 시기이기도 하다.

호텔에서 텔레비전을 켜면 온통 먹는 프로그램만 나왔다. 지금의 ‘먹방’이다. 서점에도 음식 관련 책들이 깔려 있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우리도 조만간 음식에 주목하는 시기가 올 것이란 강한 예감이 들었다. 내가 시작해서 닦아나가면 주목 받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음식 전문기자가 되겠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와 ‘음식 전문기자’가 되겠다고 당당히 선언했다. 하지만 돌아온 건 욕과 비아냥뿐. 열이면 열, 다들 비웃었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 “삼시세끼 밥 먹기도 힘든데 맛 평가가 웬 말”이냐며 핀잔을 줬다.

남들이 뭐라든 난 본격적으로 ‘음식 공부’를 시작했다. 음식이 하나의 문화라는 인식조차 없었던 때였다. 그 때 가뭄의 단비처럼 마주했던 책이 바로 마빈 해리스가 쓴 ‘음식문화의 수수께끼’다. 크기가 작은 책이었지만 엄청난 이야기들이 숨어있었다.

해리스는 책에서 인간이 먹거리를 확보하고 맛있다고 여기게 되는 과정, 인간이 음식을 선택하는 기준 등을 명쾌하게 설명했다.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들에 눈이 번쩍 뜨였다.

음식에 대한 공부는 ‘인간이 느끼는 행복과 맛의 상관관계’를 찾는 것으로 이어졌다. 이를 위해 인류학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인류학 연구엔 의외로 음식에 대한 내용들이 많이 들어가 있었다.

다년간의 공부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맛의 기준은 ‘수많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가령, 우리나라 사람들은 “전라도에선 라면을 먹어도 맛있다”라고 할 때가 있는데, 이건 ‘전라도 음식은 맛있다’는 일종의 편견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전라도 음식을 먹어보고 “전라도 음식이 정말 맛있다”라고 하니 너도 나도 “그렇지”하고 공감하게 되면서 전라도에선 뭘 먹어도 맛있게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음식을 공부하면서 인간에 대해 깊이 연구하게 됐고, 그러다 보니 한국사회가 보였다. 혹자는 내 정치적 발언을 걱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소신을 두려워해선 안 된다. 사회적 관계 속에서 ‘맛에 대한 기준’을 만들어 가듯, 인간이 행복을 유지하기 위해선 ‘교류’하는 사회가 돼야 한다.

기획·제작: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원문: [나를 키운 8할] 황교익 “인류학으로 음식의 제 맛을 알았다”

사진출처: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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