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리(가운데) 구글코리아 대표가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종합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안경을 고쳐 쓰고 있다. 맨 앞줄에 이해진(왼쪽) 네이버 창업자와 고동진(오른쪽) 삼성전자 사장도 보인다.한국일보 자료사진

아무리 큰 기업 경영자라고 하더라도 정부 관료를 만나면 한풀 꺾이는 모습을 여러 번 목격했다. 2005년 고 노무현 대통령은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간 것 같습니다”라고 했지만, 12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권력은 정부가 쥐고 있다. 정권 초기엔 더 강력하다. 지난달 2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은 5대 그룹 경영자를 불러 모아 “기업의 자발적 개혁의지에 대해 의구심이 남아 있다, 분발하라”고 촉구했다. 모임 직후 경제관계장관회의에 늦게 도착한 김 위원장은 “재벌들 혼내 주고 오느라”라고 지각이유를 말했다. 나중에 김 위원장이 사과했지만, 그 자리에 참석한 경영자가 혼나는 기분이 들지 않았을 거로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한편으론 정부의 기업을 향한 권력에 균열이 커지고 있다. 1990년대 후반 이후 급속히 진전된 세계화 물결 속에서 새로운 형태의 글로벌 기업들이 등장하면서부터다. 자체 운영 생산기지 하나 없이 전 세계를 석권한 구글 페이스북 애플 같은 기업들은 세계 각국에 깔린 인터넷과 허술한 금융체계를 이용해서 한 나라에서 번 돈을 다른 나라로 자유자재로 옮긴다. 이를 통해 어느 나라에도 제대로 세금을 내지 않는 재주를 갖게 됐다. 세금도 회피할 정도이니, 각국 정부의 규제를 피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이런 재주는 최근에야 전모가 드러나면서, 세계 각국 정부들은 이들 기업에 과세하고 규제하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고 있다.

구글의 예를 보자. 가브리엘 저크먼 미 버클리대 경제학과 교수가 지난달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에 따르면 구글 버뮤다법인이 2015년 올린 영업이익이 155억달러(약 16조9,0000억원)에 달한다. 만약 이 돈을 모두 버뮤다에서 번 돈이라면, 버뮤다 주민 1명당 24만달러(약 2억6,000만원)를 구글에게 벌어준 셈이다. 왜 구글은 번 돈을 버뮤다에 모았을까. 구글의 본사는 아일랜드에 있다. 구글 수입 중 상당액이 로열티 등의 명목으로 구글 지식재산권을 소유한 ‘구글 아일랜드 홀딩스’나 ‘구글 아일랜드 리미티드’로 흘러 들어간다. 아일랜드를 선택한 이유는 단지 법인세가 싸서가 아니다. 아일랜드 기업법상 법인은 아일랜드에 등록하고 운영은 버뮤다에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버뮤다는 법인세가 한 푼도 없다. 이 과정에서 구글이 법을 어긴 것은 하나도 없다. 전 세계 정부 조세체계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것이다.

우리 정부도 최근에야 관련 법 개정에 착수했다. 매년 수천억원의 돈을 한국에서 벌면서 국내에는 메인 서버조차 갖추고 있지 않아, 세무당국이 한국에서 번 돈을 제대로 파악하고 과세하려면 고쳐야 할 법 조항이 한둘이 아니다. 게다가 여러 나라가 얽혀 있으니 국제적 조세협약도 마련해야 한다. 이 와중에 이들 다국적기업에 대해 국내 소비자들이나 협력업체의 불만도 점점 높아지고 있지만, 당국이 이를 해결해 줄 수 있는 법적 근거도 부족하다. 한마디로 우리 정부가 마음 먹고 ‘혼 내주려’ 해도, 손발이 묶여있는 것이다.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야 하는’ 처지의 토종 기업들은 이런 상황을 보면 억울한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국내 통신망을 통해 매년 수천억원의 수익을 올리는 구글이나 페이스북이 망 사용료는 거의 내지 않고 있고, 구글이나 애플이 만들어 놓은 장터에서 게임을 팔며 30% 수수료를 물어야 하는 국내 게임업자들은 정작 자신이 만든 게임을 누가 구매하고 이용하는지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역차별 받는 토종기업들은 “특혜를 바라는 게 아니라, 적어도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게 해달라”고 거듭 호소하지만, 정부는 실효성 있는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기업의 자발적 협조가 없다면 제아무리 좋은 기업정책도 성공할 수 없다. 점점 더 경제분야 국경이 낮아지는 상황에서는 더 그렇다. 정책의 효과를 높이려면, 기업이 억울해하는 이런 문제부터 해결해줘야 한다.

정영오 산업부장 young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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