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이어 공공기관도 증원 본격화
일자리 기준 경영평가 탈선 위험 커
공공기관 민간영역 침해 확산도 우려

‘다사다난(多事多難)’이라는 상투적 표현을 절감한 한 해였다. 박근혜의 몰락도 몰락이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 숨 가쁘게 이어진 격변의 여파가 컸다. 육중한 저주파가 지각을 뒤흔들어 나라의 기본 틀까지 크게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가장 실감하는 변화는 ‘큰 정부’ 시대가 열린 것이다. 무엇보다 일자리정책에서 정부의 역할과 기능이 크게 확장됐다. 최근 국회의 2018년 예산안 처리에서 거의 원안 통과된 공무원 증원 예산은 기꺼이 최대 고용주가 되어 ‘81만개 공공일자리 창출’ 공약을 흔들림 없이 추진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재확인했다. 내년부터는 공공일자리 확충 시책이 공공기관 등으로 들불처럼 번질 기세다.

공무원 외에 공공일자리 창출의 핵심 텃밭은 공공기관이다. 일자리위원회가 지난 10월 발표한 ‘일자리 정책 5년 로드맵’에 따르면 81만 공공일자리 창출 공약에서 공무원 증원 분은 국가ㆍ지방직을 합쳐 17만4,000명이다. 나머지 공공일자리 64만개 창출의 주역은 공공기관에 맡겨졌다. 우선 공공기관 정규직 전환 일자리가 20만개다. 여기에 부족인력 충원과 근로시간 단축을 통해 10만명을 추가 고용하는 걸로 돼 있다.

공공기관 일자리 창출을 겨냥한 제도 개선도 임박했다. 이달 중 발표 예정인 ‘공공기관 경영평가 제도 개편안’에는 일자리 창출 실적을 경영평가에 중점 반영하는 방안이 포함된다. 공공기관들은 벌써부터 분주하다. 도로교통공단은 이미 자체 로드맵을 발표했다. 한국자산관리공단 등 부산 혁신도시에 자리한 공공기관들은 50억원 규모의 일자리 창출 펀드를 설립키로 했다. 불과 몇 개월 전 만해도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한 ‘내핍경영’이 공공기관 개혁의 화두였으나, 이제 일자리에 관한 한 ‘확장경영’이 당면 목표가 되는 기막힌 반전이 벌어진 것이다.

하지만 공공기관에까지 일자리 확충을 채찍질하는 정책은 잠재적 위험이 만만찮아 보인다. 어떤 식으로든 계량 평가될 일자리 창출 실적은 내실보다는 좋은 평가를 얻기 위한 전시성 고용으로 이어질 공산이 적지 않다. 경영 판단은 뒷전이고, 일단 머릿수부터 채우고 보자는 식으로 흐를 것이다. 분식 고용과 억지 일자리가 판을 치면서 비효율이 쌓이고 조직은 퇴보할 것이다. 사회주의가 그래서 망했다.

전시성 고용보다 더 걱정스러운 건 공공기관 사업이 민간영역을 무분별하게 침해해 오히려 고용 역효과를 유발할 가능성이다. 한 공공기관이 입주 건물 내에 사회적기업 커피전문점을 차리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이용자에겐 값싸고 맛있는 커피를 제공하고, 점원들에겐 최저임금과 근로시간 기준이 잘 지켜지는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었다고 환호할지 모른다. 하지만 공공기관 커피점에서 4명의 일자리가 창출된 대신, 주변 커피숍에선 8명이 일자리를 잃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서울의 일부 지자체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이다.

공공기관은 독점적 사업에 재정지원까지 받기 때문에 강력한 자금력을 갖춘 경우가 많다. 정부 유관기관으로서 사업승인, 규제, 조세 등에서 민간기업에 비해 막강한 우월적 지위를 누릴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방송, 통신, 의료, 부동산, 에너지, 금융, 보험, 교육 등 거의 모든 분야에 진출한 공공기관 자회사나 출자회사가 경쟁 민간기업의 생존을 위협하고, 민간에서 고용을 창출할 여력을 갉아먹는 경우가 많다. 지난 정권 때 공공개혁의 한 축이 방만경영을 줄이기 위한 사업구조 조정에 맞춰진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일자리 확충 정책은 공공기관의 문어발 확장과 무분별한 민간사업 영역 침해를 또 다시 조장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위험을 감안하면 공공기관 일자리 확충 정책은 신중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그리고 큰 수정 없이 밀어붙이겠다면, 새 공공기관 경영평가 제도에 반드시 전시 고용이나 무분별한 고용사업 확장을 예방할 엄격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다급한 일자리 정책이 다음 세대에 감당키 어려운 짐을 넘기는 악수가 되지 않도록 각성하기 바란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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