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3일 제주시청 광장에서 산업체 현장실습 과정에서 사고로 숨진 고교생 이민호군에 대한 추모문화제가 열렸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기자 생활을 하다 보면 다른 줄 알았던 두 사건이 극적으로 연결되는 순간이 있다. 물리학의 통일장이론처럼, A와 B는 결국 하나의 법칙 속에 묶이는 것이었구나 깨닫는 것. 최근 나는 ‘중증외상센터’와 ‘특성화고 현장실습’이 하나로 연결되는 순간을 맞았다. 총상을 입은 북한 병사를 살려낸 이국종 아주대 교수가 중증외상센터의 열악함을 강조하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고, 제주 고교생 이민호(18)군이 실습 업체에서 기계에 눌려 사망한 사건은 현장실습 문제를 끄집어 냈다. 부처로 따지자면 보건복지부, 하나는 교육부 소관이다. 우리부(정책사회부)에서도 각기 다른 기자가 담당한다. 그런데 이군 사고 일주일 뒤 경기 안산의 현장실습 사업체 옥상에서 뛰어내려 중태에 빠진 박모군이 아주대 중증외상센터에서 치료받고 있다는 사실을 접하고, 두 문제는 결국 하나의 문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장소를 말하는 게 아니다. 이국종 교수는 이런 말을 했다. 심각한 사고를 당해서 중증외상센터에 실려오는 사람들 대다수가 블루칼라들이라고. 외상센터의 다른 교수는 “외상환자는 대부분 나이가 젊다”고 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의 산업재해 국가(산재 사망률 유럽연합의 5배), 그리고 이송 시스템과 지원이 열악해 이들을 욕심껏 살려낼 수 없는 의사들. 학생이건, 노동자(법정 근로자보다 넓은 의미)건 특성화고 실습생들의 비극은 이 시스템에 편입한 사람이 겪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누가 겪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 결국 벌어질 일이었다는 것.

그런 면에서 특성화고 현장실습을 없애겠다는 정부의 대책만으로 우리가 마음의 짐을 내리는 것은 얼마나 무책임한가. 고3 현장실습을 없애서, 산업현장에 나가는 시점을 졸업 후 내년으로 미루는 것은 무엇을 뜻하나. 18세의 죽음을 19세로 미루는 것일 뿐이다. 교육부 책임(학생)이 고용노동부의 책임(노동자)으로 바뀌는 것일 뿐이다.

이민호군이 학생 신분을 벗고 20세 노동자 신분으로 사망했다면 언론에서, 사회에서 그는 존재했던 사실조차 기록되지 않은 채 사라져 갔을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산업재해 사망자는 1,777명이었다. 하루 5명 꼴로 죽었다. ‘불법’은 너무 흔히 발생할 때, 마치 그래도 되는 냥 심리적 합법성을 획득한다. 지난 10월 한국타이어 금산공장에서 32세 노동자가 컨베이어벨트와 롤에 끼어 숨졌다. 이달 11일에는 제주 공사장의 크레인 트럭이 쓰러지면서 운전기사 신모(42)씨를 덮쳐 사망했다. 지난 달 광주에서 환경미화원 두 명이 생활쓰레기 수거차 뒷바퀴에 치여 숨지고, 수거차 덮개에 끼여 사망했다. 대형 타워크레인 사고를 비롯해 그나마 보도로 접할 수 있는 산재 사망사고는 극소수다. 올해 상반기에만 990명(건설현장 298명)이 숨졌다. 기자인 나도, 숫자로만 표시되는 이들의 사연을 알 길이 없다.

생텍쥐페리는 ‘야간비행’에서 “우리는 항상 마치 무언가 인간의 생명보다 더 가치 있는 게 있는 듯이 행동하지, 그런데 그게 무엇인가”라고 했다. 그 무엇이 독립운동쯤 된다면, ‘야간비행’ 속 이야기처럼 항공우편 개척 정도라도 되면 모르겠다. 기껏 쓰레기를 낮에 수거하면 못마땅해 하는 주민들이 있다며 환경미화원들을 위험한 새벽근무로 내몰고, 원청업체 주머니 불리자고 최저가입찰제로 비용을 줄여 하청ㆍ재하청 노동자들이 현장에서 목숨을 걸게 만든다. 노동자 목숨 값으로 대기업 사장님 한 명이 구속이라도 돼야 멈추게 될까.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시 ‘노동자가 의사에게 하는 말’은 ‘우리는 무엇이 우리를 아프게 만드는지 압니다!’로 시작한다. 그리고 이런 대목이 있다. ‘너무 많은 노동과 너무 적은 음식이/ 우리를 약하고 마르게 만듭니다/ 선생님은 처방전을 내주셨지요/ 몸무게를 늘려라/ 그렇다면 선생님께선 갈대에게/ 젖지 말라고 말할 수도 있겠군요’.

이진희 정책사회부 기자 rive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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