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 강경읍 1970년대로 시간여행

젓갈만은 ‘전국 3대 시장’ 자존심
노을이 지는 강경 금강에 작은 고깃배가 잔잔한 파문을 그리며 이동하고 있다. 하루 100척의 배가 드나들던 시절을 떠올리면 쓸쓸하지만, 황금 노을의 풍경은 여전히 푸근하고 넉넉하다. 논산=최흥수기자

퀴즈 하나, 전국 최대 젓갈시장인 강경에 젓갈전문식당은 몇 개나 될까? 뽀얀 쌀밥에 짭조름한 젓갈 한 점, 강경에 가면 젓갈백반은 골라 먹을 줄 알았다. 세상의 모든 젓갈을 취급하는 도소매 판매장만 140여 곳이니 젓갈식당도 즐비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강경읍내에 젓갈전문식당은 단 2곳에 불과하다.

그래도 강경까지 와서 젓갈백반은 먹어 봐야 하지 않겠는가. 2개의 젓갈식당 중 ‘○○가든’ 식당에 들어갔다. 각각 다른 젓갈을 담은 10개 접시를 올린 작은 쟁반이 먼저 나온다. 무슨 젓갈인지 물어보자 주인장이 접시를 살짝 들어 보인다. 일일이 답해주기 번거로워 아예 쟁반에 이름을 붙여 놓았다. 명란젓을 가운데 두고 갈치속젓, 청어알, 창란, 낙지, 오징어, 꼴뚜기, 토하, 가리비, 아가미젓이 동그랗게 자리 잡았다. 여기에 조개, 조기, 새우, 밴댕이, 어리굴젓이 다른 반찬과 함께 나온다. 꼬들꼬들, 쫄깃쫄깃, 콤콤하고, 담백하고…. 젓갈마다 풍기는 맛이 다르다. 밥 한 공기 비우기에 너무 많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결국 접시를 거의 다 비웠다. 저장시설이 부실했던 시절엔 소금을 많이 쓰지만, 요즘 젓갈은 염분이 낮아 그리 짜지 않다. 토굴에서 숙성한 젓갈이 좋다는 것도 옛말, 200년 노하우에 과학의 힘으로 저염 저온 숙성해 최적의 맛을 낸 것이 요즘의 ‘강경맛깔젓’이다.

강경 달봉가든 식당의 젓갈백반 정식. 1인 1만원, 2인분 이상만 판매한다.
명란젓을 비롯한 10가지 젓갈을 작은 쟁반에 담아 내온다. 접시를 들면 쟁반에 젓갈 이름을 붙여 놓았다.
젓갈시장은 그나마 옛 영화를 간직한 강경의 마지막 자존심이다.

강경은 금강 하구인 군산에서 뱃길로 약 37km 떨어져 있다. 한겨울 얼음이 어는 30일 정도를 제외하면 수량이 일정해 조운선이 내륙 깊숙이 들어올 수 있는 위치다. 특히 바람과 밀물 때가 맞으면 큰 배들도 힘들이지 않고 서해에서 강경까지 단번에 이동할 수 있었다. 덕분에 강경은 17세기 후반부터 물류 중심으로 자리 잡았고, 전국 3대 시장으로까지 성장할 수 있었다. 편리한 교통은 동전의 양면이었다. 일제강점기에 내륙수탈의 전초기지로 번성했던 강경은 도로와 철도교통에 물류를 내주면서 해방 이후 급격히 쇠락의 길을 걷는다. 젓갈은 강경의 명성을 지키는 유일한 브랜드자 마지막 자존심인 셈이다.

마지막 자존심 강경젓갈과 근대문화유적

퀴즈 둘, 충남 논산경찰서가 위치한 곳은? 일반의 상식과 달리 논산 시내가 아니라 이웃 강경읍이다. 대전지방검찰청 논산지청과 지방법원도 강경에 있다. 소위 힘 좀 쓴다는 권력기관이 몰려 있으니 강경이 논산의 중심인가 하면 그도 아니다. 한때 ‘1평양, 2강경, 3대구’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번성하던 곳이었지만, 지금의 강경은 옛 영화의 언저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 몇몇 고층아파트를 제외하면 대부분 낮은 건물이 논산평야와 높이를 같이하고 있다. 깊은 맛과 향을 풍기는 젓갈처럼 오랜 시간 곰삭은 풍경이다.

강경읍내의 구 한일은행. 일제강점기에는 식민지 수탈의 한 축인 조선식산은행 강경지점이었다. 지금은 강경근대역사관이다.
구 남일당한약방. 한옥과 일식 가옥이 결합된 형태다.
구 남일당한약방 주변 풍경도 1960~70년대에서 크게 변하지 않은 모습이다.

금강 제방 옆에 낮은 건물이 올망졸망 자리 잡은 강경읍내 풍경은 1960~70년대로 거슬러 오른 듯하다. 읍내 중심부에서 반경 1km 이내에 강경의 볼거리가 모두 몰려 있어 자박자박 걸어 한나절이면 충분히 돌아볼 수 있다.

시작은 읍내 중심부에 자리한 ‘강경노동조합’ 이다. 하루 100척까지 드나들던 강경포구의 번성을 상징하는 건물이다. 1925년 부두노동조합 사무실로 지은 2층 건물은 2009년 일본목조건축 양식으로 개축해 지금은 강경역사문화안내소로 사용하고 있다. 1905년 지은 구(舊) 한일은행 건물은 일제가 남긴 서양식 고전건축물이다. 높이는 3층에 가깝지만 내부는 천장이 높은 단층이다. 현재 강경근대역사관으로 이용하고 있다. 한일은행과 충청은행 강경지점으로 사용한 것은 해방 이후의 일이고, 일제강점기에는 동양척식주식회사와 함께 식민지 경제지배의 양대 축이었던 조선식산은행 강경지점이었다. 많은 근대 유적들이 그렇듯 이 건물도 제국주의 수탈의 첨병이었다는 달갑지 않은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인근의 구 남일당한약방은 전통적인 한식 구조에 상가의 기능을 더해 일본 건축의 분위기를 띠는 특이한 건물이다. 1923년 ‘남쪽에서 제일 크다’는 뜻의 남일당한약방으로 지은 건물이다. 이곳은 강경 하시장(下市場)이 섰던 곳으로 주변 분위기는 지금도 오랜 과거로 시간여행을 온 듯하다. 드라마 세트장도 이렇게 실감나게 과거를 재현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논산시에서는 이 일대를 ‘근대역사문화촌’으로 조성 중이다. 일부 건물을 사들여 근대 풍으로 개축하고 숙박업소나 공방 등을 유치하고 있는데, 아직은 대부분 빈 건물로 남아 있어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논산시에서 조성 중인 강경근대역사거리. 깔끔하지만 빈 건물이 많아 아직 생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돛대를 연상시키는 강경성당의 뾰족 지붕.
성당 내부는 배를 뒤집어 놓은 모양의 아치형 구조다.
한옥으로 지어진 강경성결교회예배당.
말발굽서까래 구조의 예배당 내부.

강경은 금강 수로를 따라 서양 종교가 일찍 전해진 곳이기도 하다. 감리교, 침례교, 장로교와 천주교 등 작은 읍내에 유난히 교회 건물이 많다. 읍내 가운데에 위치한 강경천주교회는 배를 뒤집어 놓은 듯한 아치형 골조로 지었다. 이렇게 내부에 대형공간을 확보한 특이한 구조로 건축적ㆍ종교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등록문화재에 이름을 올렸다. 우뚝 솟은 빨간 첨탑은 큰 돛을 연상케 한다.

1923년에 세운 강경성결교회예배당은 기독교 토착화 과정에서 볼 수 있는 초기 한옥교회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기와지붕에 붉은 벽돌 외형은 전형적인 한옥이지만, 내부는 정방형의 넓은 평면이다. 초기에는 가운데에 천을 대서 남녀 신도를 분리했다고 한다. 예배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서까래를 방사형으로 배치한 말굽서까래(馬足椽) 구조도 특이하다. 한때 감리교회로 넘어갔다가 역사적 중요성을 인식한 성결교회에서 다시 매입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쓸쓸한 듯, 넉넉한 듯 금강 서정

읍내에서 금강변 남측 언덕에는 죽림서원ㆍ임리정ㆍ팔괘정 등 조선시대 유적이 연이어 남아 있다. 임리정(臨履亭)은 인조4년(1626)에 김장생이 건립해 후학을 가르치던 곳이다. 원래 황산정(黃山亭)이었는데 시경의 ‘두려워하고 조심하기를 깊은 못에 임하는 것같이 하며, 엷은 얼음을 밟는 것같이 하라(戰戰兢兢 如臨深淵 如履薄氷)’는 구절에서 따와 임리정으로 고쳤다고 전한다. 바로 인근 팔괘정(八卦亭)은 우암 송시열이 스승 김장생을 가까이 하기 위해 건립하고 강학한 정자다. 팔괘정과 임리정의 단아함도 돋보이지만, 두 곳에서 바라보는 전망은 더욱 운치 있다. 앞마당에 서면 금강이 유유히 흐르고 건너편으로 부여의 평야가 넓게 펼쳐진다.

금강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자리잡은 임리정.
강경 최고봉인 옥녀봉에서 내려다 본 금강 풍경.
옥녀봉은 강경 최고의 일몰 전망대이기도 하다. 강경 젓갈처럼 곰삭은 풍경이다.

금강 제방을 따라 북측으로 조금만 이동하면 강경에서 가장 높은 옥녀봉이 위치하고 있다. 해발 44m에 불과해 다른 지역에서는 봉우리라 할 수도 없지만, 사방이 평지인 강경에서는 최고의 전망대다. 바로 아래로 금강이 드넓은 곡선을 그리며 흐르고 있어, 바라보는 마음도 한없이 순하고 부드러워진다. 한때 온갖 물산을 실은 배들로 분주하던 포구에 지금은 작은 고깃배가 이따금씩 지날 뿐이어서 쓸쓸하기도 하지만, 천리를 달려온 금강이 해질 무렵 황금빛으로 물드는 모습은 언제까지고 넉넉하고 황홀하다.

논산=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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