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대학가야 한다는 말? 뻥이요!”

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 응시한 59만여명의 수험생들이 떨리는 마음으로 수학 문제를 풀던 지난 23일 오전. 빨강과 노랑, 초록 등 알록달록한 옷을 입은 11명의 청소년들이 서울 청계광장 한 가운데 섰다.

그들은 스스로 수능시험장에 가지 않았고 대학에 가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그들의 결정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대학 입시 거부’를 선언했다. ‘그냥 좀 참아 대학가서 하면 되지’라고 쓰인 뻥튀기 모형에 ‘뻥이요’를 외치며 주먹을 날리던 그들은 ‘대학 입시 거부를 통해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이다.

학력차별, 소위 가방끈 길이를 따지는 불평등한 사회를 바꾸기 위한 청년단체 투명가방끈이 대학입시 거부선언을 한지 벌써 7년이 됐다. 2011년부터 올해까지 계속된 선언에 70여명이 참여했다. 매년하는 선언이지만 할 때마다 주목을 받았다. 세상을 바꾸려는 이들의 투쟁은 선언 뒤의 삶에서 더 치열했다.

학교에서 배운 건 경쟁하는 법뿐
‘투명가방끈’에서 활동하는 대학입시거부 선언자 나래, 난다, 박성우씨(왼쪽부터)가 지난 12일 서울 용산구의 사무실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창선ㆍ한설이 PD.

‘너네 열심히 공부 하지 않으면 나중에 배추장사 하게 된다.’ 2011년 첫 선언에 동참한 난다(26)씨는 고등학생시절 한 선생님이 버릇처럼 이야기하던 그 말이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직업과 학력으로 사람을 차별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선생님들의 이상한 행동은 계속됐다. ‘너 그러다가 지방대 간다’는 말은 기본이었다. 야간자율학습을 하지 않고 집으로 가면 다음날 반드시 매를 때렸고, 전교 50등 이상의 학생들에게만 따로 좋은 독서실에서 자습을 하도록 배려했다.

난다씨가 보기에 이런 것들은 모두 차별이다. 결국 계속 학교를 다니면 경쟁하는 법 외에는 배우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는 고 2때 자퇴했다.

난다씨 뿐만 아니라 투명가방끈 구성원들은 같은 문제 의식을 갖고 있다. 올해 수능거부선언을 한 고 3생 정재현(19)군은 초등학생 시절 ‘공부 때문에 죽고 싶다’며 펑펑 울던 한 친구의 모습을 생생히 기억했다. “하루 한 시간씩 공부해서 만점을 받을 수 있는 친구가 있고 그것보다 두 세배 더 오래 공부해도 그 점수를 받을 수 없는 친구가 있어요. 각자의 특성과 환경이 다른데 사회는 늘 경쟁해서 이기는 것만을 강요해요.”

정씨는 대학에 가더라도 결국 숫자로 다른 사람을 짓밟는 삶을 계속 살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정씨를 비롯한 투명가방끈들은 대학 입시 거부를 통해 학력ㆍ학벌 차별을 지속시키는 위치에 서는 것을 거부했다.

‘대졸중심주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지난 23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투명가방끈의 대학 입시 거부 선언자들이 뻥튀기 모양 피켓을 들고 있다. 신현욱 인턴PD.

하지만 이들이 당찬 선언 뒤에 마주한 것은 학력 차별이라는 익숙한 현실이다. 또래보다 먼저 사회로 뛰어든 투명가방끈들은 직장생활에서 가장 먼저 현실의 온도를 체감했다.

2011년 선언자인 자유(23)씨는 “교육관련 시민단체에서 일했는데 다른 직원과 똑같은 업무를 해도 고졸이라는 이유로 월급을 적게 받았다”며 “학벌주의를 반대하는 곳에서까지 학력차별이 계속되는 것을 보고 동일임금 동일노동 원칙은 법에만 있다는 것을 체감했다”고 말했다. 2011년 선언자 호야(25)씨는 “우리사회에서 대졸은 기본값이 됐다”고 지적했다. 기업들 대부분이 대졸자만 채용해 이력서조차 내보지 못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일터 밖에서도 비슷한 경험이 이어졌다. 난다씨는 중ㆍ고등학교에서 인권 강의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그들이 요구한 강사 프로필을 작성해 제출하려다가 애를 먹었다. 기본 양식에 대학과 전공을 적는 칸을 비워 두었더니 ‘출신대학을 쓰기 싫으면 전공이라도 적어달라’는 부탁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 사회는 누군가를 가르치는 사람은 당연히 대학을 나왔을 것이라고 여긴다는 것을 체감했다”고 말했다.

정부와 지자체의 각종 청년정책도 대학생 중심이다. 난다씨는 “청년대상 강연 등에 참여하려는데 대학 학생증을 확인해야 한다고 해서 돌아온 적이 많다”며 “복지ㆍ주거정책부터 ‘청년=대학생’이라는 인식이 뿌리깊다”고 지적했다.

우리는 ‘자기 결정력 회복 선언’을 했다
지난 12일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투명가방끈의 나래(왼쪽부터), 난다, 박성우, 호야, 자유씨. 이들은 가방끈 길이로 삶을 재단하는 불평등한 사회를 바꾸기 위해 대학 입시 거부 선언을 했다. 한설이ㆍ김창선 PD

그럼에도 이들이 선언을 후회하지 않는 것은 대학생으로 국한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호야씨는 “공부를 하기 위해 시민강좌 등에 참여해도 그곳에 계신 교수님과 사제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사람 대 사람으로 토론을 한다”며 “대학생이 돼 20대를 보낸다면 ‘학생은 교수 말을 따라야 한다’는 사회적 고정관념 때문에 하기 어려웠을 일”이라고 설명했다.

대학에 간 또래 친구들의 삶을 보며 이들이 느낀 것은 ‘대학을 나오든 아니든 미래에 대한 불안은 똑같다’는 것이었다. 올해 선언에 참여한 나래(23)씨는 “대학이 소위 취업학원이라 불리는데도 대졸자들이 직장에서 하는 일은 내가 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며 “대학생 친구들은 벌써 직장생활을 하고 자취도 해본 나를 사회적응력이 높다고 부러워한다”고 말했다.

자유씨는 “고교 졸업한 뒤 4년간 가치관에 따라 스스로 삶을 조직하고 생존력을 키운 것이 수천만원을 내고 대학 다닌 것보다 더 값지다”고 자신했다. 그는 또래들이 대학이라는 보호막 안에서 생존의 고민을 유예할 때 취업전선에 먼저 나가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사회적 역할을 하는 어른이 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대학거부선언이 사실상 독립 선언이자 자기 결정력 회복 선언이었다”고 주장했다.

어떤 선택을 하든 ‘덜 망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지난 23일 서울 청계광장 앞에서 대학입시거부 선언자들이 선언문을 읽고 있다. 투명가방끈 제공.

지난해 고교졸업자의 대학진학률은 69.8%다. 이는 많은 청년들이 대학에 간다는 뜻이지만 대학을 가지 않은 청년도 30%라는 의미다.

투명가방끈은 대학을 가지 않은 청년들도 이 사회에 살고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알리고 있다. 그리고 대학에 간 청년 중 상당수가 강요된 선택을 했다는 진실을 직시하자고 외치고 있다. 이들이 평소 차별실태조사를 벌이고 학력에 따른 취업차별을 없애기 위한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을 벌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난다씨는 투명가방끈으로 활동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대학에 가지 않아서 더 불안한 삶을 살게 되는 사회는 매우 위험해요. 어떤 선택을 하든, 어떤 학력이나 배경을 가졌든 덜 망할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을 갖춘 사회를 만드는 것이 우리의 바람입니다.”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김창선 PD changsun91@hankookilbo.com

한설이 PD ssoll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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