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초등학생 살인 사건’과 ‘부산 여중생 폭행 사건’으로 인해 소년법을 폐지하자는 주장이 거세게 일고 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당해 사건의 피해자와 향후의 잠재적 피해자의 입장을 고려하면 가해자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소년법이 폐지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국민들의 주장에는 가해자에 대한 엄벌이 피해자를 위한 최선의 배려라는 생각이 짙게 깔려 있다. 하지만 그것만이 피해자를 위한 길인지는 좀 더 신중히 생각해 보아야 한다.

범죄는 인간사회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해악이므로 사회생활 속에서는 누구라도 가해자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그런데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보다는 그렇지 않은 사람이 더 많기에 사람들이 피해자의 입장에 서서 가해자에 대한 엄벌을 요구하는 경향을 취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하지만 아무리 무거운 형벌을 부과한다고 하더라도 새로운 범죄의 발생을 막을 수는 없다. 형사정책적으로도 엄벌주의를 채택하여 범죄율을 두드러지게 떨어뜨렸다는 사례는 찾기가 어렵다. 더 나아가 엄벌주의를 채택함으로써 사회가 치러야 할 비용이나 정서적 문제도 무시할 수가 없다. 예컨대, ‘소년보호재판’에서 비행을 저지른 ‘보호소년’에 대해 국민들이 바라는 수준으로 처벌하기 위해서는 우선 소년원의 수를 대폭 늘려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 있는 소년원은 모두 10개소로, 52개 소년원이 있는 일본과 비교하면 턱없이 적은 수이다. 과밀수용으로 인한 문제점은 차치하더라도 인구 대비 사건수를 감안하면 최소 10개 이상의 소년원이 더 필요하다. 만약 소년법을 폐지하여 소년원이 없어지게 되면 소년교도소를 20개 정도 다시 지어야 한다. 하지만 각 지역주민들이 자기 지역에 보호관찰소나 장애인을 위한 특수학교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보다 시설혐오도가 높은 소년원이나 소년교도소의 증설이나 신설을 받아들이려 할까? 이는 결국 또 다른 사회적 진통으로 이어질 것이다.

더 중요한 문제는 가해자에 대한 엄벌만으로 피해자의 상처가 치유되고 회복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중범죄의 경우에는 가해자에게 어떤 처벌을 내리더라도 피해자나 그 가족이 100% 만족하기가 어려울 것이고, 설령 어느 정도 만족한다고 해도 그로 인해 범죄로 인한 상처가 온전히 치유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고대에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동해보복법칙(同害報復法則, jus talionis)’이 적용되어 피해에 상응한 가해자에 대한 ‘보복’이 가능했다. 하지만 근대에 이르러서는 ‘형벌의 부과와 집행 권한’이 피해자 측이 아니라 국가에 주어져 있고, 형벌의 내용과 수위도 법률이 정한 바에 따르기 때문에 형벌로 인한 피해자 측의 보복과 그로 인한 만족도가 고대에 비해 낮을 수밖에 없다. 바로 여기에서 가해자에 대한 처벌과 그로 인한 피해자의 만족감 사이에 괴리가 발생한다. 결국 현대 법치주의 체계 아래에서는 처벌에 대한 피해자 측의 불만족을 완전히 해소시키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국가의 형벌권 행사로 범죄의 피해자 측을 온전히 만족시키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면, 국가는 형벌과는 별개로 피해자를 배려하기 위한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헌법 제30조가 ‘타인의 범죄 행위로 인하여 생명․신체에 대한 피해를 받은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로부터 구조를 받을 수 있다’라고 규정하는 것도 그 이념을 반영한 것이다. 위 규정을 바탕으로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2005년 12월에 ‘범죄피해자보호법’이 제정되었고, 이 법으로 인해 범죄 피해자에 대하여 상담, 의료 지원, 구조금 지급, 법률구조, 취업 관련 지원, 주거 지원 등과 같은 조치를 취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국가기관이 시행하는 조치에는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 현행법상 소년보호처분이 내려진 이후 소년부판사로 하여금 피해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하는 제도는 없다. 소년부판사가 처분을 내린 이후 사법형 그룹홈인 ‘청소년회복센터’ 등에 위탁된 보호소년들과 교류하는 것은 법이 ‘소년들의 재비행을 방지하여 새로운 피해자를 발생시키지 않도록’ 할 권한과 책임을 부과하였기 때문이지, 피해자보다 보호소년을 우선시해서가 아니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소년부판사가 처분을 내린 이후 피해를 당한 아이들과도 소통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기를 기대한다.

가해자에 대한 엄벌도 피해자에 대한 제도적 조치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면 한계 너머의 피해자에 대한 배려는 사회공동체의 몫이 되어야 한다. 재판 과정에서 엄벌 여론을 주도하는 것도 피해자에게 위로가 되겠지만 보다 근원적 해결책은 피해자의 고통을 공동체가 나누어 지는 것이다. 특정 사건이 터졌을 때만 끓어오르다 이내 식어버리는 ‘냄비성’ 관심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이 결코 그대들에 대한 기억을 지우지 못하리라’는 로마 시인 버질의 시구처럼 피해자의 아픔에 지속적으로 동참해 주는 것이 진정으로 피해자를 위한 길임을 잊지 말자.

천종호 부산가정법원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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