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 정민승 특파원, 국내 첫 르포

방글라 남부 미얀마 접경 쿠투팔롱
공식 캠프에만 난민 3만명 몰려
‘인종 청소’에 3주간 40만명 탈출
방글라데시 남단 콕스 바자르 인근 쿠투팔롱 난민 캠프에서 생활 중인 한 로힝야족 어린이가 16일 자신만큼 큰 동생을 품에 안아서 달래고 있다.

이름은 모하메드 드레디아. 올해 아홉 살. 미얀마 라카인주의 이슬람 소수민족 로힝야 거주 마을 부티다웅에서 가족과 살다 나흘 전 동생과 둘이 방글라데시 콕스 바자르 인근 난민 캠프로 넘어왔다. 회사 경비원이던 아빠는 집으로 들이닥친 미얀마 군인 아저씨 총에 맞아 죽었고, 아빠를 일으키던 엄마도 눈 앞에서 같은 총에 맞아 쓰러졌다. 남은 가족은 남동생, 세테라(7)뿐이다. 동네 아저씨를 따라 국경을 넘어 이곳에 왔다. 며칠을 걸었는지 모른다. 그 사이 눈물은 말랐고 신발과 옷은 닳아 떨어졌다. 구호단체서 준 노란 티셔츠를 입었지만, 발은 벗은 채로다. 형 드레디아는 가장 하고 싶은 게 무엇이냐는 물음에 “예전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지역 구호단체들이 기증한 헌 옷더미에서 건져 올린 옷가지를 한 아름 끼고 있던 세테라는 입을 열지 않았다. 형의 손을 잡은 채 눈만 껌벅였다. 통역에 나선 한 난민은 ‘며칠째 먹지 못한 것 같다’며 질문을 옮기지 않았다.

16일 방글라데시 콕스 바자르 인근 쿠투팔롱의 로힝야족 난민 캠프에서 만난 드레디아 형제. 형 모하메드 드레디아(오른쪽)는 미얀마 정부군의 총격에 부모를 잃고 동생 세테라와 단둘이 캠프에서 살아가고 있다.

16일 오후 국내 언론 가운데 처음으로 찾은 방글라데시 남부 미얀마 접경도시 콕스 바자르 인근 쿠투팔롱 로힝야(Rohingya)족 난민 캠프. 뜨거운 볕이 내리쬐는 축구장 2개 넓이의 공터는 텅 비었다가도 트럭이 들어오면 사람들로 금세 찼다. 물, 식량, 옷 등을 모두 내린 트럭들이 빠져나가면 이곳은 다시 황토 바닥에 울긋불긋한 옷가지들만 널브러진 횅한 공터가 됐다. 숲속으로, 간이 천막 밑으로 몸을 숨기지 않고선 모든 것이 타버릴 정도로 뜨거운 한낮. 며칠 전 비가 내렸다는 땅이지만 힘없이 끄는 세테라의 맨발에도 먼지는 뿌옇게 일었다. 방글라데시 제2의 도시 치타공에서 달려온 봉사자 포하드 핫산 사욘(25)씨는 “매일 10톤 트럭 3대를 끌고 찾아오고 있으며, 다른 단체들이 역시 식량을 실어 나르지만 로힝야 난민들이 계속 늘면서 역부족이다”라고 말했다.

쿠투팔롱 캠프는 1992년 유엔과 이곳 정부가 처음 문을 연 방글라데시 최대의 로힝야 피난처이다. 1호선 국도 서편에 자리잡은 공식 캠프에는 3만명이 난민 지위를 인정받아 살고 있다. 하지만 이곳 국도 동쪽편 비공식 캠프에서 생활하는 난민 수는 집계가 안되고 있다. 비공식 캠프 내 교사로 일하는 한 난민은 “이곳에도 최소 5,000~6,000명의 로힝야 난민이 머물고 있다”라며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늘고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말 아웅산 수치의 미얀마 정부가 로힝야족 반군단체(ARSA)의 라카인주 경찰초소 습격에 대한 앙갚음으로 시작한 ‘로힝야 인종 청소’ 작전에 쫓겨 국경을 넘은 로힝야족 수는 최근 3주간 40만명에 이른다.

드레디아 형제와 비슷한 사연을 지닌 로힝야 난민들은 이곳에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만날수 있다. 아들과 며느리를 미얀마 군인의 손에 잃고 여덟 살, 네 살, 두 살배기 손주들을 데리고 12일 동안 걸어 이날 아침 난민촌에 도착했다는 할머니 소키나(45), 열흘 전에 도착했고 그 이튿날 길에서 낳았다며 들어 보이는 생후 9일된 딸의 엄마 또요바(24)씨. 로힝야 난민 캠프에서 만난 영국 매체의 한 기자는 “취재하면서 울어보기는 처음”이라며 “눈앞 풍경이 꿈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외신에 따르면 8월말 후 이곳 캠프에서 태어난 아기가 400명에 달한다. 미얀마 군인들의 총검을 피해 국경을 넘은 이들의 80%가 부녀자와 아이들이라는 말도 들려왔다.

방글라데시 콕스 바자르 쿠투팔롱 로힝야 난민 캠프의 '골목' 사이로 어린이들이 다니고 있다.

일어나서 신세를 한탄할 수 있다면 그나마 나은 경우이다. 수많은 난민은 움직이지도 못한 채 천막 아래서 초점없는 시선만 외국인 기자에게 보낼 뿐이다. 취재진이 타고 온 차량이 만드는 그늘에는 땡볕에 지친 난민들이 몰려와 조용히 몸을 뉘었다. 의류 등 구호품이 계속 캠프로 전해져 오지만 이상하게 제대로 옷을 걸치지 못한 이들이 많다. 한 관계자는 “구호품이라고 보내온 옷들이지만, 입을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경우가 많다”라며 “쓰레기 옷을 이곳에 버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굶주림 속 힘없는 외침 “우리의 국가를 원한다”

무엇 하나 풍족한 게 없다 보니 난민들 사이 싸움도 자주 벌어진다. 식량 트럭에서 내린 자루를 놓고 몸싸움이 벌어지거나 먼저 음식을 받으려고 트럭에 뛰어오르는 이들 때문에 자원 봉사자들은 매일 전쟁을 치른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나무 막대기를 휘두르며 난민들을 제압하는 경우도 보인다. 노련한 구호단체들은 줄을 세운 뒤 바닥에 앉게 하고 뒤쪽부터 음식을 나눠주기도 한다. 여성들이 힘에 밀려 배급받지 못하는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 남성과 여성으로 나눠 식량을 공급하는 경우도 눈에 띈다.

지옥과 다름없는 풍경이지만 웃음소리도 들린다. 짐을 내려놓고 빠져나가는 트럭을 뒤쫓아 기어오르며 깔깔거리는 아이들, 진흙에 빠진 차량을 향해 달려와 호흡을 맞춰 밀어내는 남자들의 미소가 따뜻하다. ‘고맙다’는 경적에 손을 흔들어 주는 이들은 ‘잊지 말고 또 오라’는 바람을 표정으로 드러냈다.

난민들이 식량을 놓고 다투고 있다. 국경을 넘어오는 난민 수가 급격히 늘고 있어 공급 식량은 늘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불행히 캠프에 자리를 잡지 못한 난민들은 국도를 따로 북으로 콕스 바자르를 향해 마냥 걸어야 한다. 북쪽으로 가는 도로는 방글라데시 국도 1호선이 유일하다. 길이 비좁아 양방향 2차선 도로는 종일 걷거나 지친 난민들로 정체다. 도로 중간에 쓰러져 잠에 빠진 이들도 적지 않다. 그들과 바짝 붙어 트럭과 톰톰(삼륜 오토바이)들이 달렸다. 통역에 나선 난민은 “국도 1호선 따라 이름 없는 캠프들이 들어서고 있다”고 말했다.

취재진을 보고 달려온 로힝야족 모하마드 쇼무(40)씨는 “우리는 우리의 국가를 원한다. 민주주의를 원한다”고 소리쳤다. 자원봉사자 파이암 에드타 샤리프(37)씨는 “사지로 몰리는 로힝야족을 외면할 수 없어 정부가 받아주고 있고, 국민도 침묵으로 동의하고 있지만 방글라데시도 살기 힘들다”고 했다.

치타공에서 거주하며 난민 캠프 봉사활동을 하는 한 교민은 “방글라데시 정부는 어느 단체라도 로힝야족을 도와주면 단체(NGO) 설립 허가를 취소한다는 입장이었다”며 “하지만 지금 로힝야족이 물밀 듯 들어오면서 그 기조를 유지하기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우리 외교부 관계자는 “첨예하게 갈등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목소리를 내기 어렵고, (로힝야)난민에 대한 공식적 지원도 곤란하다”고 밝혔다.

콕스 바자르(방글라데시)=글ㆍ사진 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로힝야 난민들이 식량을 받기 위해 줄을 서 기다리고 있다.
식량을 기다리는 줄 중간에 앉아 있는 한 어린이가 초점 없는 눈빛으로 무엇인가를 응시하고 있다.
콕스 바자르에서 쿠투팔롱 난민캠프로 가는 국도1호선 모습. 오가는 차량들과 난민들이 한데 엉켜 차량들이 속도 내기가 쉽지 않다.
로힝야 난민 어린이가 길가에서 풀잎을 뜯어 먹고 있다.

관련 기사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