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와 ‘동시’ 하면 별 연관성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소설가 이문구 선생이 동시집 ‘개구쟁이 산복이’(1988)를 낸 것도 예외적인 일이다. ‘관촌수필’ 연작, ‘우리 동네’ 연작 등 시대를 대표할 만한 작품들로 평가를 받는 소설가가 불쑥 동시집을 내놓았던 것이다. 그러나 찬찬히 동시집을 읽은 이들은 그가 잠시의 일탈로 동시를 써 본 것이 아니라, 자녀들을 키우면서 우리 동시의 가락과 전통을 깊이 이해하고 큰 공력을 기울여 무르익은 좋은 작품들을 쓰게 되었음을 알아보았다. 소설에서 발휘된 능청스러운 해학, 민중 인물들의 입말을 생생하게 되살린 문체 등과는 또 다르게 아이들에 대한 애정, 생활과 자연의 다양한 모습을 맑고 또렷한 언어로 노래했던 것이다.

이번에 그의 동시들을 다시 읽으면서 나는 새삼 느꼈다. 자녀들이 자라는 모습, 주변의 일상들, 자연의 다채로운 변화 등을 깊은 눈으로 살피고 포착한 그의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이마에 땀방울/송알송알//손에는 땟국이/반질반질”(‘개구쟁이 산복이’)과 같이 자녀의 노는 모습, 관심사 등을 세심하게 그린 시도 명편이며, “해 기운 언덕에/하얀 눈꽃이 피었네./하얀 할머니가 따는/하얀 목화송이들.”(‘가을 언덕에’)과 같이 자연 속의 사람과 온갖 생명들을 자신의 캔버스에 옮겨 놓은 작품들은 그가 참 시인임을 증명하고도 남는다.

‘저녁상’은 더운 여름날 마당에 멍석 펴고 국수를 삶아 먹는 가족의 저녁 한때가 오롯이 펼쳐진 작품이다. “엄마는 덥다면서 더운 국물을 마시고/눈 매운 모깃불 연기 함께 마시고,/아기는 젓가락이 너무 길어서/집어도 집어도 반은 흘리고”에서 가족을 보고 있는 눈이 사랑으로 가득함을 짐작할 수 있고, 옆에서 눈치 보는 강아지와 송아지에게까지 그 시선은 살뜰하게 가 닿는다. 소설가의 장기가 발휘되었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 그의 작품 전반에서 확인되는 사물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빈틈없는 표현의 특징이 동시에도 작동하고 있다고 하겠다. 집집마다 처마 밑에 제비가 집을 짓고 새끼를 까서 노란 부리의 아기 제비가 “둥지 밖을 내다보며 갸웃거리”던 시절의 풍경이 이젠 그리운 기억이 된다.

그의 작품 세계는 불쑥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 윤석중, 권태응, 정지용, 윤복진 등 뛰어난 동시인의 성취를 충분히 받아들여 형성되었다. 최근 동시의 경향에서는 얼핏 보아 예스럽게 다가올 수 있지만 찬찬히 살펴 읽을수록 깊은 맛이 느껴진다. 그에게 동시 창작이 여기(餘技)가 아니었음은 유고로 출간된 동시집 ‘산에는 산새 물에는 물새’(2003)로 더욱 분명해진다.

김이구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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