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스승, 이탈리아 셰프 페페 바로네

박찬일 셰프. 한국일보 자료사진

주방장이 파슬리 다발을 던져주더니 다지라고 했다. 열심히 다졌다. 절반만 요리에 쓰고는 남은 것을 냉장고에 넣었다. 아, 파슬리는 다져서 바로 쓰는 것이라면서요? 내가 의아해서 물었다. 주방장은 씩 웃었다. 그러더니, 자기도 파슬리를 다져서 냉장고에 넣었다. 뭘까, 갈수록 미궁인 걸.

다음 날, 그가 냉장고에서 파슬리를 꺼냈다. 내가 다진 것, 그가 다진 것. 색깔이 달랐다. 내 것은 짙은 색을 띠었고, 그의 것은 멀쩡했다.

“내 칼은 금으로 만든 것인가?”

그가 농담을 했다. 농담이었지만 아팠다. 그는 더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자기 가슴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가 늘 얘기하던 “영혼 있는 태도”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의 말은 이랬다.

“무엇을 하든 일을 할 때는 아니마(Animaㆍ영혼)와 쿠오레(Cuoreㆍ마음)를 집어넣는다(자기 가슴에서 진짜로 심장을 꺼내는 듯한 제스처와 함께). 오케이?”

파슬리 하나를 다질 때도 정성을 들였는가? 그의 물음이었다. 시칠리아의 한 작은 마을에 있는 식당의 주인이자 주방장 페페 바로네(Peppe Barone). 식당 자리를 빚내어 얻는 바람에 늘 쪼들리는 것 같았다. 내가 이 식당에 실습을 하러 도착하던 날이 생각난다. 시칠리아 하면 마피아 같은 우락부락한 사내가 마중나올 줄 알았다. 그는 북부 유럽인처럼 흰 피부에 섬세한 표정을 지녔다. 그가 내게 처음 물어본 말은 이랬다.

“북쪽? 남쪽?”

코리아는 그냥 그들에게는 남북이 갈라져 살고 있는 이상한 나라였다.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이탈리아를 박살낸 공격수 박두익은 북한 선수였지만, 그들이 기억하는 유일한 ‘코리안’이었다. 알게 뭐람. 나중에 안정환이 다시 박두익처럼 이탈리아팀을 혼내줬지만, 그들은 아직도 남인지 북인지 관심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섬세한 사내는 남북을 알았다. 그래서 물어본 것이었다. 나는 어쨌든 이상한 나라에서 온 실습생이었고, 그는 가르쳐야 할 의무를 넘어 내게 호기심을 가졌다. 그 호기심이 나를 늘 피곤하게 했다. 자, 요리사가 어떻게 일하는지 말해드려야 할 것 같다. 보통 일주일에 하루 쉬며, 근무 시간은 ‘아침에 나와서 마지막 손님이 갈 때까지’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정식 요리사가 아니었다. 새로운 직업을 막 시작한 참이었고, 그래서 부적응 상태였다. 늘 피곤했다. 그의 호기심은 나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다. 피곤에 절어 자고 있는 아침시간에 그는 문을 두드렸다.

“이봐, 장 보러 가자고.”

장? 그런 건 다 도매상이 가져다 주는 것 아닌가. 그의 일과는 요리보다 장 보는 데 더 많이 쓰였다. 요리사라면, 멋진 제복을 입고, 아랫사람 앞에서 거들먹거리면서 카리스마나 풍기는 그런 사람을 상상하면 오산이다. 그는 대단히 현실적인 사람이었다. 좋은 재료를 구해서 맛있는 걸 만들자. 그냥 좋은 재료만 찾은 건 아니었다. 그는 이젠 세계적인 유명세를 타고 있는 ‘슬로푸드’ 운동의 일원이었다(슬로푸드는 한국지부를 두고 있을 만큼 성장했다). 좋은 재료 더하기 올바른 재료. 그것이 슬로푸드 멤버의 재료 찾는 기술이었다. 생선이든 버섯이든 고기든. 그가 거래하는 집은 하나같이 작고 허름하며 오래된 지역 가게였다. 정작 아침에 나를 깨워서 무엇이든 사러 가면, 구매에 들이는 시간보다 가게 주인과 수다가 더 길고 요란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시칠리아 사투리로 말이지. 무슨 얘기를 그리 길게 하느냐는 내 재촉에 그는 이렇게 대꾸하던, 흥미로운 남자였다.

“응, 너를 어디에 파묻을지 의논했어.”

시칠리아 마피아를 연상하는 외국인을 골려먹는 농담이었다. 한번은 버섯 몇 상자를 사러 깊은 산의 버섯 따는 노인들을 만나러 가기도 했다. 전화만 하면 오는데! 내가 하는 말이었고, 그는 그때마다 슬쩍 화난 표정을 일부러 지으면서 내게 말했다.

“재료만 좋으면 요리는 다 끝난 거라고.”

페페 바로네 셰프.

그에게 늘 이런 ‘구름 잡는’ 소리만 들은 건 아니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저녁 8시, 요리사들이 예민해지는 시간이었다. 일찍 온 손님에게는 파스타나 메인 요리가 슬슬 나가고, 늦게 온 손님에게는 애피타이저가 서비스되는 시간대였다. 요리가 겹치고, 한번에 몰리기 때문에 주방이 긴장상태에 들어가는 때였다. 요리사들이 예민해지는 건, 수십 명의 손님이 각기 다른 요리를 시키고, 그것을 테이블마다 딱딱 아귀를 맞춰내야 하기 때문이다. 식성이 다른, 제각기 다른 시간대에 온 수많은 손님을 모두 만족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시간대에 제일 정신 없는 파트는 파스타쪽이다. 그들은 대개 스파게티를 먹는 우리와 다르다. 모양도, 조리법도 다른 열 몇 가지의 다채로운 파스타가 메뉴에 있다. 파스타 주문이 쏟아지면, 모양도 익히는 시간도 다른 파스타가 한 번에 솥에 밀려든다. 아마도 우리가 매일 목격하는 유일한 카오스였다. 그때 그가 나를 파스타 파트에 밀어 넣었다. 나는 거의 패닉 상태에서 파스타를 익혔다. 어찌 할 줄 몰라 안절부절 하는 나를 그는 노려보면서 말했다.

“다 익은 파스타는 색깔이 달라진다. 그때 건져서 파스타 요리사에게 주면 된다.”

익는 시간을 재지 않아도, 정말 색깔과 물에 풀리는 모습만 봐도 파스타가 익었는지 알게 된다. 나는 그 기술 하나로 서울에 돌아와서 벌어먹었다. 그는 내게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진짜 기술을 가르쳐준 셈이었다. 조리법을 열심히 적는 나를 만류하며 그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조리법은 책에도 다 있어. 어떻게 요리를 할 것인가 하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

그는 파스타를 다루는 기술과 함께 벌어먹는 진짜 기술 하나를 선사했다. 바로 ‘제철’이라는 놈이었다. 로컬푸드, 제철음식, 건강음식, 지구를 생각하는 요리, 슬로푸드… 이런 복잡한 철학을 그는 딱 한 낱말로 정리해버렸다.

“제철이 전부다. 그것은 인류가 처음 요리를 시작할 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머리가 좋아져도 그것을 바꿀 수는 없다. 제철에 제일 맛있다는 것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제철에 만물은 제 맛을 낸다. 그럼 거의 8할은 먹고 들어간다. 재료가 요리니까. 페페바로네씨는 57세이며, 대학에 다니는 두 딸의 아버지이며, 시칠리아 남단 모디카라는 작은 마을에서 여전히 요리하고 있다. 구글에서 그의 식당을 검색하니 평점 5점 만점에 4.5점이나 된다. 세상에! 어쨌든 이렇게 평판이 좋으니 그가 융자금은 다 갚았을 것 같다.

박찬일 셰프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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