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A ‘하트시그널’은 한 공간에 남녀 6명이 함께 거주하며 발생하는 미묘한 감정을 그린다. 스튜디오에서 이들의 관계를 지켜보는 연예인들은 출연자가 누구와 ‘썸’을 타는지 관계를 추리한다. 채널A 제공

안방극장이 다시 핑크빛으로 물들고 있다. 한때 유행하다 한풀 꺾였던 ‘커플 매칭’(남녀 이어주기) 프로그램이 변형된 형태로 돌아오고 있다. 연예인 가족이 등장하는 예능프로그램에 대해 시청자들이 피로감을 느끼면서 새로운 강자로 자리할 조짐이다.

요즘 커플 매칭 프로그램은 예전과 포맷이 확연히 다르다. 커플을 지정해 가상 결혼 생활을 시키거나(MBC ‘우리 결혼했어요’), 선을 보듯 각자의 조건과 성격을 따져 짝을 선택하게 하는(SBS ‘짝’) 작위적인 형식은 이제 찾을 수 없다. 평범한 남녀를 초대해 한 공간에서 생활하도록 하고,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지켜보는 게 최근 트렌드다. 제작진의 개입은 최소화하고 진행자의 역할도 줄여, 더욱 자연스러운 실제 ‘썸’(정식으로 사귀기 전 감정을 탐색하는 과정)을 다뤘다. 남녀의 연애, 결혼 과정이 아니라 사랑을 시작하기 전 설레는 감정에 초점을 맞추면서 말 못 하고, 눈치 보는 청춘남녀의 복잡미묘한 심리가 더욱 섬세하게 그려진다.

결혼 상대 찾기는 고전… 20대 청춘의 ‘썸 타는 예능’

1990~2000년대 초반 커플 매칭 프로그램은 스튜디오에서 진행되는 ‘맞선형’이 많았다. 1990년대 후반 방송됐던 MBC 예능프로그램 ‘사랑의 스튜디오’는 결혼과 진중한 만남을 목적으로 하는 미팅·맞선 형식이었다. 이후 MBC 예능 ‘강호동의 천생연분’(2002), KBS2 예능 ‘산장미팅- 장미의 전쟁’(2003) 등 연예인이 다양한 게임을 통해 사랑을 찾는 형식의 ‘버라이어티형’이 등장했고, 대본에 따라 전개되는 비현실적 예능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2000년대 후반에는 일반인을 상대로 Mnet 예능 ‘아찔한 소개팅’(2012)과 같은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었으나, 출연자에게 ‘돈과 사랑’이라는 선택지를 쥐여주는 자극적인 설정으로 눈총을 받기도 했다.

리얼리티 장르가 유행하면서 등장한 SBS 예능프로그램 ‘짝’(2011)과 최근 커플 매칭 프로그램의 차별점은 ‘썸’의 유무다. 8일 첫 방송한 Mnet 예능 ‘내 사람친구의 연애’(‘내사친’)는 사랑보다는 멀고, 우정보다는 가까운 ‘남사친’(남자 사람 친구의 줄인 말로 남자친구보다 덜 가깝다는 뜻)과 ‘여사친’(여자 사람 친구의 줄인 말) 네 쌍을 초대한다. 3박4일 여행을 통해 이들은 친구와의 사랑을 확인하거나, 다른 팀의 이성과 새로운 썸에 빠지게 된다. 짧은 시간 동안 떠난 여행에서 사랑을 찾는다는 설정은 얼핏 보면 SBS ‘짝’과 비슷하지만, 결혼 적령기의 남녀가 결혼 상대를 찾았던 ‘짝’과 달리, ‘내사친’은 20대 청춘이 실제 겪고 있는 썸과 얽히고 설키는 묘한 심리게임을 다룬다. ‘내사친’의 제작진은 “청춘들의 트렌드한 사랑 찾기 방식과 연애관을 들여다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채널A 예능프로그램 ‘하트시그널’은 6명의 일반인 남녀가 한 달 동안 일명 ‘시그널 하우스’에서 동거하면서 사랑을 찾는 과정을 그렸다. 스튜디오에서 이들을 지켜보는 연예인 MC들이 출연자들의 녹화 내용을 보며 러브라인을 추리하는 액자식 구성이다.

Mnet ‘내 사람친구의 연애’는 네 쌍의 ‘남사친’ ‘여사친’이 다른 이성과 썸을 타는 과정을 통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모습을 그린다. Mnet 제공
“모호한 관계에서 가장 많은 쾌감 느껴”

예능뿐 만이 아니다. 지난달 11일 종방한 KBS2 드라마 ‘쌈 마이웨이’는 오랜 친구가 연인으로 발전하는 과정을, 온라인에서 화제인 웹드라마 ‘연애플레이리스트 2’는 대학교 교정에서 벌어지는 ‘썸남썸녀’의 심리 변화를 담았다.

관계의 확실성에서 오는 안정감보다, 애매한 관계에서 오는 설렘과 스릴감이 요즘 커플 매칭 프로그램의 새로운 흥행요소다. 결혼과 연애를 필수가 아닌 선택이라고 생각하고, 사랑을 찾는 방식도 자유분방해진 청춘의 연애관이 반영된 결과다. ‘하트시그널’의 애청자인 직장인 이은주(29·가명)씨는 “드라마에 나오는 뻔한 얘기가 아닌, 현실감 있는 내용이라 대리만족하게 되는 것 같다”며 “요즘 신경 쓸 게 많아 연애를 지속하는 노력이 힘든데, 썸은 부담은 덜 느끼면서도 설레는 감정이 배가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취업 준비하랴, 직장 일 하랴 바쁜 청춘이 썸을 통해 책임에서 자유로운, 편의 위주의 사랑을 즐기는 것이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심리학적으로 헷갈리고 모호한 관계를 그릴 때 (시청자의) 몰입도가 높아진다”며 “시청자는 누가 누구와 사귀고 결혼하는지는 관심이 없다. 썸 타는 심리가 얼마나 리얼하고 섬세하게 다뤄지는 지가 포인트”라고 분석했다.

포맷은 달라졌다 하더라도 커플 매칭 프로그램에 대한 우려는 여전하다. 연예계 종사자나 개인 사업 홍보 등 다른 목적을 지닌 출연자가 진정한 모습을 보여줄 수 없고, 평범하다고 소개된 출연자가 남다른 재력 등을 뽐내 위화감을 조성할 수도 있다. 김 평론가는 “욕하면서 보는 심리를 악용해 자극적인 편집으로 출연자를 ‘마녀사냥’의 희생자로 만들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소라 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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