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제작된 영화 ‘프랑스 중위의 여자’의 한 장면. 존 파울스의 소설을 원작으로 카렐 라이스 감독이 연출하고 메릴 스트립, 제레미 아이언스가 주연을 맡았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969년 출간된 ‘프랑스 중위의 여자(The French Lieutenant’s Woman)’는 영국 작가 존 파울스의 출세작이자 2차 세계대전 이후를 대표하는 포스트모더니즘 소설로 꼽힌다. 작품의 배경은 대영제국이 가장 융성했던 19세기 빅토리아 시대다. 귀족 집안에서 태어난 남자 찰스는 오랜 방랑 생활을 청산하고 부유한 상인의 딸 어니스티나와 결혼을 앞두고 있다. 그런 찰스의 앞에 어딘지 불안정해 보이는 여자 사라 우드러프가 등장한다. 마을 사람들이 사라를 부르는 별명은 ‘프랑스 중위의 여자’다.

알 수 없는 그림자가 드리워진 사라에게 찰스는 동정과 호기심을 느껴 다가가지만 곧 속수무책으로 빠져든다. 현실의 삶도 그를 가만히 두지 않는다. 약속된 유산을 받지 못하게 된 찰스에게 예비 장인은 다른 직장을 구하라고 강요하고, 그는 결국 사라와 사랑의 도피를 결심한다. 그러나 어니스티나와 파혼하고 찾아간 자리에 사라는 없다. 찰스는 다시 방랑길에 오르고, 두 사람은 2년 뒤 재회한다.

발표하는 작품마다 뜨거운 논쟁을 불러 일으킨 파울스의 책 중에서도, 유독 이 소설에 집중적인 찬사가 쏟아진 데는 작가의 문학적 실험이 한몫을 했다. 1926년 영국 남부 엑시스주에서 태어난 파울스는 옥스퍼드대에서 프랑스 문학을 전공하면서 자연스럽게 카뮈, 사르트르의 사상에 영향을 받았다. 실존주의 철학의 세례를 받은 그가 인간, 정확히는 유럽인의 자신감이 최고치에 달했던 빅토리아 시대를 해체하고 싶어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기존 세계의 안전한 질서를 따르려던 찰스는 19세기를, 시종 안개에 휩싸인 듯한 사라는 20세기를 상징한다. 작품이 출간된 1969년은 전세계가 전쟁의 충격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던 때였다. 인간성에 대한 믿음이 무너져버린 시대에 파울스는 남녀의 사랑이라는 평범한 서사를 통해 인간, 세계, 문학에 대한 기존의 관념들을 낱낱이 깨부쉈다. 생전에 수 차례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됐던 그는 2005년 11월 5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김석희 번역으로 열린책들에서 출간된 ‘프랑스 중위의 여자’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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