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케냐 대선 엎치락뒤치락

재선 노리는 현직 대통령과
대권 4修 야당 후보 박빙 경쟁
정치권 “부정선거” 공방전
2007년 투표조작 의혹이
폭력으로 번져 1300여명 사망
국민들, 선거 전부터 피신 준비
지난달 30일 케냐 수도 나이로비 시내에서 평화적 선거 개최를 기원하는 행사에 참여한 한 합창단원이 케냐 국기와 자필로 적은 기도문을 손에 쥐고 있다. AP 연합뉴스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 두바이를 떠나 케냐 수도 나이로비 공항에 도착한 비행기 한 편에 케냐인들의 이목이 쏠렸다. 비행기에 실린 것은 다름 아닌 거대한 종이 더미. 약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대선과 총선 당일(8일) 전국 투표소로 배달될 투표 용지였다. 두바이의 한 인쇄 업체가 찍어낸 용지의 이송 현장에는 독립선거관리위원회(IEBC) 위원뿐 아니라 대선 후보 캠프 대표자들, 무장 경찰, 각종 관계자가 동행했고 언론에도 관련 소식이 긴급 타전됐다. 이날 로셀린 아콤베 IEBC 위원은 “커다란 한 걸음을 내디뎠다”며 “모든 체계가 완벽히 돌아가고 있어 기쁘다”고 자축했다.

우리나라라면 선거철 으레 이뤄질 절차지만 케냐는 현재 이처럼 선거를 향한 걸음걸음마다 전국민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일견 정치에 대한 높은 관심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케냐 사회에 깊이 뿌리 내린 의심에서 오는 행동이다. 2007년 대선 후 투표 조작 의혹으로 여야 정파를 지지하는 부족들이 유혈 충돌해 1,300여명이 사망, 60만여명이 강제 피신한 후 현재까지도 부정 선거 및 폭력 사태에 대한 우려가 케냐를 지배하고 있다. 10년이 지났으나 다른 점은 크게 없다. 부족주의를 기반으로 한 정치 문화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데다 대선 경쟁 구도 마저 거의 유사한 모습이다. 때문에 선관위의 ‘이번엔 완벽하다’는 구호가 무색하게 케냐는 또다시 폭풍의 핵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다.

폭력 사태 감지한 주민들 거주지 이탈 시작

2017년 판 선거 참사의 조짐은 전국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시사 만평가 패트릭 가사라는 최근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 기고를 통해 “대도시 등 부족들이 뒤섞여 사는 지역마다 인구 대이동이 일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재선을 노리는 우후루 케냐타 현 대통령(키쿠유족)과 4번째 대권에 도전하는 야당 연합체 국민슈퍼동맹(NASA)의 라일라 오딩가 후보(루오족)가 여론조사마다 44~48%를 오가며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는 상황. 주민들은 선거에 패배한 부족의 보복이 두려워 각 부족별 집단 거주지로 피신해 만약의 폭력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조금 더 여유가 있는 경우 아예 케냐를 떠나기도 해 선거일 전후로 출국 비행편은 일찌감치 예약이 다 끝난 상태다. 그만큼 케냐 국민은 다가오는 불안을 직감하고 있다.

정치권은 이 같은 불안을 잠재우기는커녕 선거 조작 의혹을 키우며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 NASA는 투표 용지 이송 직후에는 “일부 용지가 감시망을 벗어나 비밀리에 옮겨졌다”고 주장했고, 지난달 28일에도 케냐타 정권이 군을 동원해 선거 당일 정전 등 부정 작전을 모의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케냐타 대통령은 “군경을 옹졸한 정쟁에 끌어들이면서까지 선거를 연기하기 위한 꼼수를 부리고 있다”고 의혹을 부인했다. 하지만 양측 모두 명확한 증거 하나 공개하지 않은 채 공방만 이어가고 있는 형국이다. 케냐타 대통령은 심지어 군소 후보들과 공동 출연을 할 수 없다며 후보자 TV토론도 거부했다.

지난달 29일 발생한 의문의 살인 사건은 여야 갈등에 정점을 찍었다. IEBC의 고위 간부인 크리스 음산도 정보통신기술 담당 대표는 이날 나이로비 외곽에서 고문 흔적과 함께 숨진 채 발견됐다. 수사당국도 부검 후 고문과 교살 사실을 확인했다. 음산도는 특히 공정 선거를 위해 통합전자투표관리시스템(KIEMS) 및 유권자 등록 제도를 도입, 통제하던 인물이어서 그의 사망은 곧바로 야권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NASA는 1일 “영연방 또는 유엔의 독립된 국제 전문가들이 음산도와 선관위를 대신해 전자투표 시스템을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진상 조사를 요구하는 거리 시위가 전역에서 일어난 가운데, 서부 리프트밸리주 엘도레트, 바링고 등 과거 선거 보복 피해가 가장 컸던 지역의 치안이 이미 불안정한 상태라고 국제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는 경고헀다.

케냐 수도 나이로비의 여성 주민들이 지난달 30일 시내에서 열린 선거 유세 행사에서 두 손을 위로 뻗어 노래를 부르며 기도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희망의 불씨 살리려는 노력도

물론 케냐 내에도 유혈 사태를 막으려는 반작용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선거 과정에 대한 민간 신뢰도를 높여야 한다는 목표 아래 대선 기간 민관을 불문하고 각종 최신 기술을 동원한 프로그램이 시도됐다. 2007년 참사에 대한 반성으로 만들어진 비영리 정보 공유 플랫폼 ‘우샤히디’가 대표적이다. 우샤히디는 선거 전후로 ▦투표 방해 행위 ▦부정선거 독려 ▦폭력 상황 등 각종 변칙 상황을 제보받아 지도에 실시간 표시하는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선관위 측도 유권자 등록 절차를 대폭 간편화한 데 이어, 선거 당일 투표소 및 개표 현황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사진ㆍ영상으로 생중계하는 서비스를 적극 홍보 중이다.

다만 우샤히디의 모토는 케냐 선거의 성패가 어디에 달렸는지 명확히 알려주고 있다. “기술은 성공의 10%일뿐 나머지 90%는 사람이 만든다.” 진짜 희망은 유권자의 과반을 차지하는 청년 인구가 이러한 시도에 적극 응답하며 투표 참여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는 데 있다. 나이로비에 사는 올해 22세의 샤론 도이고는 영국 BBC방송과 인터뷰에서 “가족 모두 만일에 대비해 다른 안전한 지역으로 옮겨 유권자 등록을 마쳤다”며 “케냐에 변화를 가져올 중요한 기회를 가만히 앉아 놓칠 순 없다”고 밝혔다. 케냐 탐사보도 전문기자 존 앨런 나무는 “이번 선거 등록 유권자의 51%가 35세 이하 젊은이”라며 ‘청년들의 선거’가 될 8일 선거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관련 기사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