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대안까지 고민한 스티븐 틴데일

영국 환경운동가 스티븐 틴데일은 기후변화가 인류가 직면한 최악의 숙제라고 판단했다. 그는 "150년이 된 진화론을 두고도 일부는 아직도 시비를 걸지만, 기후변화는 논쟁할 시간이 150개월도 안 남은 인류 생존의 문제"라고 말했다. 그가 원전을 옹호한 까닭이 그거였다. 다만 그가 희망을 건 원전은 우라늄 원전이 아니라 토륨원전이었다. 그가 운영했던 홈페이지 climateanswers.info에서.

주제가 주제인 만큼 조금 거창하게 시작해보자. 21세기 인류는 거대한 두 재앙의 ‘가능성’에 직면해 있다. 기후변화와 원자력(핵)이다. 둘은 문명의 성과(결과)이자 동력이지만, 문명뿐 아니라 인류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파국적 재앙의 가능성 또한 내장하고 있다. 아직 인정하지 않는 이들이 있지만, 과학과 현실이 그걸 보여준다. 둘의 맥락은 얽혀있다. 문명의 뿌리가 전기이고, 기후변화의 주 원인이 전력 생산ㆍ소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후변화와 에너지 문제 둘 중 하나만 끄집어내 긍정 또는 부정하는 주장은 부실해지기 쉽다. 마땅히 경계해야 할 의도를 감추고 있을 때도 많다.

재앙의 ‘가능성’이라고 했지만, 적어도 기후학자 및 활동가들은 고개를 저을 것이다. 사실 기후 재앙은 이미 시작됐다. 북반구 육지면적의 1/4인 시베리아 동토층이 녹아 메탄을 뿜어내고 있고, 해안선은 점점 문명을 향해 다가서는 중이다. 기후론자(활동가)에게 온실가스는 발등의 불이다. 최상의 궁극적 대안은 당연히 재생에너지이지만, 최소한 석탄 등 화석연료 발전 만이라도 당장 멈춰야 한다. 그래서, 화석연료 발전을 재생에너지로 대체할 때까지만이라도 “미워도 원전” 혹은 “그래도 원전”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그런 이들이 사실 꽤 많다.

기후론자와 반(탈)원전론자의 가시적ㆍ잠재적 불화가 거기서 비롯된다. 반원전론자의 입장은 상대적으로 더 선명하고 단호하다. 원전을 긍정하는 것은 의도와 무관하게 핵 재앙의 가능성을 키우며, 궁극적 해답인 재생에너지의 길을 가로막고 지연시킨다는 것이다. 그들은 “재생에너지가 가장 안전하고 깨끗하고 경제적”인데, 기업과 학계, 정치권 등 화석 및 원자력 기득권 집단이 진실을 외면하거나 호도한다고 본다. 재생에너지의 경제성과 성장 파급 효과는 실제로 빠르게 커져왔다. 그렇더라도, 탈석탄ㆍ탈원전의 속도를 따라잡을 만큼 재생에너지 확대가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하는 질문에 먼저 답을 해야 한다. 기후학자와 운동가들의 대답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2011년 3월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태는 각국 여론과 원전 정책을 출렁이게 했다. 기후협약과 온실가스 배출량 규제로 조심스럽게 확산되던 친(親)원전 기류는 교란됐다. 사고 직후 독일 메르켈 총리는 17개 원전플랜트를 2022년까지 단계적으로 폐쇄하기로 한 1998년 사민ㆍ녹색당 연립정권 정책을 좌ㆍ우파 만장일치로 재천명했다. 에너지의 40%를 원전으로 충당하는 스위스는 2019~34년 기존 원전의 수명이 다해도 신규 원전을 짓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프랑스는 전력소비량의 75~80%를 원전에 의존하는 국가다. 올랑드 대통령은 2012년 대선 중 노령 페센하임 원전의 임기 내 폐쇄를 공약했고, 지난해 4월 국가환경회의 연설에서는 향후 10년 내 원자력 의존도를 25%포인트 감축하고, 재생에너지 비중을 대폭 늘릴 계획이라고 천명했다. 그 시기, 원전 종주국 영국을 비롯해 신흥 원전 강국 중국과 인도, 한국 등 원전 확대를 공격적으로 추진한 나라도 물론 있었다. 하지만 추세는 대체로 그러했다.(power-technology.com, 2011.9.19)

지난 6월 한국 정부의 탈원전 선언으로 촉발된 원전에 대한 최근 논란처럼, 후쿠시마 이후의 탈원전 추세에 반기를 든 이들이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도 적지 않았다. 다수의 기후학자와 활동가들이 거기 앞장섰다. 영국 환경운동가 스티븐 틴데일(Stephen Tindale)은 그들의 입장을 대표할 만한 이였다. 그는 20대 중반 이후 여러 환경단체를 거쳐 노동당 환경정책 브레인으로 또 환경장관 자문역으로도 활약했고, 2000~2006년의 만 5년 동안 그린피스 영국 사무총장을 지내며 맹렬하게 반원전 캠페인을 벌인 이였다. ‘변절자’라는 비난을 받아가며, 그가 원전 옹호의 선봉에 나선 까닭도 기후변화의 위기감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에게는, 한국의 탈핵ㆍ찬핵 진영 어디서도 좀처럼 언급하지 않는, ‘토륨(Thorium) 원전’의 가능성에 대한 기대와 확신이 있었다. 이데올로기에 갇히는 걸 한사코 거부했던, 실용적 환경운동가 스티븐 틴데일이 7월 1일 별세했다. 향년 54세.

틴데일은 1963년 3월 29일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서 태어났다. 영국문화원 직원이던 아버지의 임지를 따라 중동과 아프리카 여러 나라를 돌며 성장한 그는 캠브리지 리즈스쿨(Ley’s School)과 옥스퍼드 세인트앤스(St. Anne’s)칼리지(철학과 정치ㆍ경제학)를 다녔고, 런던 버크벡(Berkbeck)대학서 정치ㆍ행정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86년 외무성에 취직했지만 3년 만에 사표를 냈고, 환경단체인 ‘지구의 친구들(Friends of the Earth)’ 개량사회주의자 단체 ‘페이비언협회(Fabian Society)’ 등을 거쳐 좌파 성향의 독립 싱크탱크인 ‘공공정책 연구소(IPPR)에서 에너지 정책팀(94~96년)을 이끌었다. 이후 1년간 민간 비영리 환경연구단체인 ‘녹색동맹 Green Alliance’의 사무총장을 지냈다.

2013년 10월 미국 하와이대 연구팀은, 2040년대 중반 무렵부터 서울과 뉴욕 등 세계 주요도시가 ‘기후 이탈(climate departure)’ 즉, 가장 추운 해의 연 평균기온이 최근 150년 사이 가장 더웠던 해의 평균기온보다 높아지는 현상을 맞이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사진은 해수면 상승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남태평양 영연방 국가 투발루 해변. commons.wikimedia.org

그가 왜 외교부를 선택했고 또 금세 그만두고 훨씬 도전적인 삶을 선택했는지, 왜 하필 환경ㆍ에너지 분야였는지는 알기 힘들다. 다만 성장하면서 경험한 아프리카와 런던의 공간환경적 편차, 전통 석탄산업 노동자들에게 발목 잡힌 영국(EU) 좌파 정치의 난맥과 80~90년대 기후변화에 대한 국제 사회의 위기의식 등을 두고, 그는 특히 생각이 많았던 듯하다. 노동당 환경정책을 보좌했던 그는 토니 블레어-고든 브라운(1997~2010) 집권기에 NGO 동료들과 함께 대거 정부 정책 파트에 진출, 재생에너지와 탄소세 등 환경 정책의 틀을 닦는 데 기여했다. 기후변화에 관한 유엔규약인 ‘교토의정서’가 채택된 게 1997년이었다.

데이비드 캐머런 보수당 정부가 들어서던 2010년, 그는 노동당 환경정책(블레어 정부는 원전에 우호적이었다)에 무척 비판적이었던 영국 그린피스의 수석 정책자문역으로 자리를 옮겼고, 이듬해 최고 책임자인 사무총장이 됐다. 그는 “5년 내에 그린피스를, 혁신적 대안을 갖고 그릇된 것에 가장 두려움 없이 맞서는 단체로 인식되도록 하는 게 목표”라고 취임 인터뷰에서 말했다.(Telegraph, 2017.7.11) 정치가 채워주지 못한 비전의 공백을, 그는 그린피스의 구호처럼 ‘직접 행동’을 통해 채우고자 했을 것이다. 2000년 12월, 부시 미국 대통령의 ‘스타워즈’ 전략에 반대하며 벨기에 브뤼셀 나토(NATO) 본부 앞에서 시위를 벌이다 경찰 신세를 진 이래, 그는 그린피스 ‘액션팀’과 자원봉사자들이 주도하는 시위를 직접 지휘하곤 했다. 보수ㆍ노동당의 원전, 유전자조작(GM) 식품 정책 등이 주현안이었다. 가디언은 그를 그린피스가 “가장 시끄러웠던(noisiest) 시기”의 사무총장으로, ”영국 풍력산업의 출범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인물로 소개했다.(가디언, 2017.7.7)

2005년 5월 16일, 잉글랜드 웨스트미들랜드 주 솔리헐(Solihull)의 포드 자동차 공장 점거농성을 이끈 것도 그였다. 하청업체 직원으로 위장해 공장에 진입한 그와 자원봉사자 35명은 작업 라인의 신모델 ‘레인지로버 스포트(Sport)’ 차량에 쇠사슬로 자신들의 몸을 묶었다. 일부는 회사 깃발을 내리고 ‘기후 범죄자들(Climate Criminals)’이란 글을 새긴 깃발을 걸었다. 차량 이산화탄소 배출 문제를 고발하는 시위였는데, 마침 “도시형 승용차”를 표방하며 갓 출시된 그 모델의 연비가 그린피스 관점으로는 터무니없이 낮았다고 한다. 6시간 농성 끝에 틴데일 등 16명이 연행됐다. 사측은 물론 노동조합도 “어려운 산업여건과 지역 경제를 생각해야 한다. 그린피스의 액션은 무모하고 위험한 짓이었다”고 비난했다. 당일 시위로 포드 공장은 약 40대 생산 차질로 180만 파운드 손해를 봤지만(가디언, 2005, 5.17), 그들의 시위는 소비자와 기업이 자동차 온실가스 배출 문제를 새삼 인식하는 계기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 가치는 물론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다.

84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이탈리아 핵물리학자 카를로 루비아(Carlo Rubbia)가 ‘토륨 원전’의 상용화 가능성을 이론적으로 입증한 건 1995년이었다. 토륨 원전은 농축우라늄(우라늄-235) 대신 토륨(토륨-232)을 태워 터빈을 돌리는 원전이다. 핵분열이 쉽고 빠르고 스스로 연쇄 반응을 해서 속도를 제어하기 위한 ‘제어봉’과 ‘감속ㆍ냉각재’를 써야 하는 우라늄과 달리, 토륨은 중성자를 지속적으로 투입하지 않으면 핵 연쇄분열을 못하는 방사능 핵종원소다. 토륨은 원료로서의 그런 단점 외에, 폐기물로 플루토늄이 나오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원전 초기 핵 경쟁 시절 외면당했다. 핵과학자 앨빈 와인버그(Alvin Weinberg)가 소장이던 미국 오크리지국립연구소와 플루토늄을 발견한 화학자 글렌 시보그(Glenn Seaborg) 등이 60년대 중반부터 시작했던 토륨 원자로 연구가 중단된 건 냉전 탓이었다. 루비아의 이론은 토륨 원전에 다시 불을 당겼다.(가디언, 2011.11.1)

토륨의 단점은 그사이 온전히 장점이 됐다. 중성자 없이는 연쇄반응을 하지 않으므로, 후쿠시마 사고처럼 비상시 냉각수 공급이 중단돼도 원자로가 녹을 일이 없고, 플루토늄을 만들어내지 않으므로 핵확산 우려도 없다. 우라늄보다 4배나 많이 지구에 비교적 고르게 매장돼 있다는 점과, 만년씩 지속되는 우라늄 원전 고준위 방사능 핵폐기물과 달리 토륨 원전 폐기물은 500년 안팎이면 거의 무해해진다는 점도 매력적이었다.(한국어 자료는 여기)

미국 에너지국과 오크리지연구소가, 벨기에원자력리서치센터와 EU가, 노르웨이 민간기업과 정부가, 네덜란드의 유럽 내 학계와 기업 11개 컨소시엄이, 그밖에 많은 나라들이 2000년대 이후 본격적인 토륨원전 상용화 기술연구를 시작했고, 핵비확산조약 비가입국인 인도는 2011년 300MW급 토륨원전 건설을 선언하고 설계를 거쳐 올해 착공할 계획이다. 중국과학원 역시 2011년 토륨 원전계획을 발표했고, 3년 뒤 스모그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2024년까지 상용화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2009년 가디언은 에너지ㆍ기후변화 등 각계 전문가와 함께 ‘기후 위기의 20가지 해법’이란 부제를 단 ‘맨체스터 보고서’를 채택했다. 그 처음이 태양광(concenturated solar power)이었고, 두 번째가 토륨 원전이었다.

한국수력원자력과 관련 학계의 우라늄 원전 찬가와 “착한 원전은 없다”는 환경단체의 탈원전 공방에 갇혀 한국에서는 토륨 원전의 가치와 가능성에 대한 언급 자체가 드물다. 하지만 그린피스 사무총장 틴데일은 무척 생각이 많았을 것이다. 그는 2006년 그린피스를 떠났다. 2013년 인터뷰에서 그는 “내가 반(反)원전에 의문을 품기 시작한 순간, 반원전이 핵심 DNA인 그린피스를 떠날 때임을 깨달았다”(telegraph, 위 기사)고 말했다.

영국 리버풀베이 버보(Burbo)뱅크 풍력단지. 유럽의 가장 모범적인 풍력 발전국가로 꼽히는 영국은 2015년 전력의 약 17%를 풍력으로 충당했다. 틴데일은 노동당 정부의 환경 전문가로서, 또 그린피스 사무총장으로서, 풍력산업 투자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고 한다. en.wikipedia.org

2015년 11월, 영국 정부는 발전량의 30%를 점하는 노후 석탄화력발전소를 “2025년까지 단계적으로 모두 폐쇄하고, 원자력과 천연가스 개발ㆍ발전 비중을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석탄의 약 절반인 천연가스 발전도, 틴데일은 탄소제로(Carbon Zero) 사회로 가는 중간연료(bridging fuel)로써 긍정했다. 2016년 9월 영국 정부가 아일랜드해 연안 랭커셔의 셰일가스 개발계획을 승인하자 환경단체들은 토양 및 지하수를 오염시킨다며 반대했다. 그는 ‘The Sun’ 칼럼에서 “재생에너지가 물론 최선이지만 석탄화력이 사라지는 2025년까지 부족한 전력을 충당할 길이 없다”며 가스가 수입되는 과정에 액화-기화하면서 10% 가량 유실되는 점, 가스 수출국 카타르의 생산기지 노예노동 문제까지 거론하며, “개발 불가”를 주장하는 환경단체를 부도덕하고 무책임하다고 비판했다. 그는 랭커셔 해안의 환경이 아니라 지구 환경, 기후 변화를 중심에 두고 이야기했다. “노예노동보다 프래킹(frackingㆍ셰일가스 추출 수압파쇄공법)이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환경단체 어디서도 대답을 듣지 못했다.” 그는 유전자조작(GM) 식품 등을 두고도 환경단체들과 대립하곤 했다.

틴데일은 2010~15년 자본친화적 싱크탱크 겸 로비그룹 유럽개혁센터(CER)의 환경 정책연구원으로 적을 두고 저 활동들을 했다. 2011년 6월 ‘토륨: 어떻게 유럽 원전을 구할 것인가’ 같은 리포트도 그 무렵 낸 거였다. 2015년 그는 핵 에너지의 평화적 이용을 옹호하는 ‘앨빈와인버그재단’ 책임자(Director)가 됐다. 재단 홈페이지 취임사에서 그는 핵 과학자이자 선구적인 기후 캠페이너였다는 와인버그의 1977년 글 ‘수용 가능한 핵의 미래를 향하여’의 한 구절을 인용했다. “나는 태양광 찬미론자들에 대해 불평할 마음이 없다. 그들의 꿈은 고결하고 격려할 만하다. 하지만 그것이 원자력의 기회를 박탈하는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된다면 그건 반대해야 할 아주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하고픈 말이 와인버그의 저 말이었을 것이다. 다만 태양열의 자리가 재생에너지로 확장됐고, 와인버그의 원전은 토륨원전으로 바뀌었을 뿐이었다.

토룸 원전의 장점이 다소 과장됐다는 지적도 있고, 바람직한 해답이라 판단하기 이르다는 주장도 있다. 중요한 것은, 탈핵-찬핵의 선택이 특정 집단의 이해나 단기적인 경제성에 휩쓸리지 않고, 인류 재앙의 가능성을 두고 연구하고 토론하는 과정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는 점일 것이다. 틴데일처럼, 원전과 GMO를 긍정한 저명 환경운동가 마크 라이너스(Mark Lynas)는 환경운동가가 원전에 찬성하는 건, 동성애자가 커밍아웃하기까지 긴 클로짓 시절을 보내듯, 어렵고 힘든 일이라는 요지의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리고, 누구의 말처럼, 개량주의자는 순수주의자에게 이용당하기 쉽다. 틴데일의 ‘변절’도, 의도와 무관하게 원전 이데올로기 강화에 부역한 면이 없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어쨌건 그는 그 틈새에 서서, 찬반너머의 더 중요한 것들을 되돌아보고 다시 생각하게 해준 환경운동가였다.

틴데일은 두 차례 결혼-이혼했고, 10대 두 아이를 두었다. 프리미어리그 축구 토트넘 핫서퍼(Spurs)의 팬이었고, 등산과 클래식 음악 감상이 취미였다고 한다. 그는 신념을 실천하기 위해 주말 비행기 여행조차 삼갔고, 그러면서도 행복한 여가생활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했다. 2015년 3월 그는 “기후 캠페이너들은 더 많은 타협을 해야 할 것이다. 실제로 진전을 이루는 것은 이상주의가 아니라 실용주의일 때가 많다”는 글을 자신의 트윗 메인에 올렸다. 하지만 그는 활동가의 저 지침을 자기 일상에 적용하는 데는 서툴렀던 듯하다. 그는 성년이 된 뒤로 내내 우울증과 고된 씨름을 했고, 2006년 한 차례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최윤필 기자

인기 기사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