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끝>칼퇴근 실현을 위하여- 본보 기자들 8시간 근무 체험

#1 입사 1년차 경찰팀 기자
오랜 만에 공연 보며 낭만 만끽
밤 11시에 “일요일 출근” 지시 와
여친과의 웨딩업체 방문 약속 취소
한국일보 사회부 법조팀의 김현빈기자가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재판을 취재하고 있다. 밤 늦게까지 재판이 이어지는 출입처지만 “일정 조율과 시간 배분만 조금 더 효율적으로 한다면 노동시간을 줄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신상순 선임기자

배가 고파 현기증이 날 때까지 업무가 끝나지 않을 때가 있다. 문 닫기 직전의 식당에 들어가 20분 만에 허겁지겁 저녁식사를 흡입하는 밤 10시에도 추가 업무를 지시하는 전화가 걸려온다. 돌발노동으로 점철돼 있고, 포괄임금제의 적용을 받으며, 직무분석에 따른 적정 노동시간 산출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업종. 바로 언론이다. 노동ㆍ복지 천국 스웨덴의 사무직노동자연합(TCO)도 “장시간 노동과 과도한 무급 야근으로 문제적인 직종”이라 인증한 분야가 저널리즘이다. 절대적으로 사건의 발생에 노동이 결정되는 업의 본질 때문이다.

한국일보에서 가장 노동강도가 높은 사회부 법조팀의 김현빈(33) 기자와 경찰팀의 정반석(31) 기자가 1주일간 8시간 근무제에 도전해봤다. 기자들의 칼퇴근 도전은 1인칭의 고충을 호소하기 위함이 아니다. 노동시간 단축이라는 시대적 과업을 향한 일종의 실험이자 바로미터다. 이들이 성공한다면, 불가능한 업종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법이 엄연히 규정하고 있는 일일 노동시간은 8시간. 이들은 과연 8시간만에 칼퇴근에 성공했을까.

한국일보 사회부 경찰팀의 정반석 기자가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검 앞에서 기사를 작성하고 있다. 그는 “기자에게 돌발노동은 불가피하지만 인력을 탄력적으로 운용하는 방안은 검토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신상순 선임기자
정반석 기자는 결혼예복을 고르지 못했다

▦6월27일 화요일 서울 영등포경찰서 기자실

어제 자정쯤 끝난 회식 탓에 늦잠을 잤다. 머리도 뻐근하고 오전 8시까지 기자실에 도착하려면 택시를 타는 수밖에 없다. 택시 안에서 오늘 일정과 다른 신문에 물 먹은(다른 신문이 특종한) 게 없는지 살펴봤다. 손과 눈이 바쁘다. 문재인 대통령 아들 취업특혜 의혹을 조작한 ‘이유미 사건’이 내 관할지역인 서울남부지검에서 수사 중이라 마음이 무겁다. “물 먹으면 각오해라”고 한 캡(경찰팀장)의 낮은 목소리가 귓전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오전 10시, 차장검사와 겨우 약속을 잡고 대기 중. 좋은 인상과 달리 원하는 대답을 듣기는 쉽지 않았다. 미팅 내용을 보고한 후 점심 약속 장소로 출발했다. 이동 중 사건 관련자들에게 전화를 돌렸지만, 아무도 받지 않는다. 준비 중이던 기획은 이유미 사건으로 취재할 틈이 나지 않는다. 온 종일 전화 돌리고 보고하고 기사 쓰고 지적 받고 전화하고 수정하고…. 어느덧 오후 6시30분. 8시간 근무는 글렀다. 표절 취재를 위해 자발적 야근을 결정했다. 내일은 청담동 드레스숍으로 결혼 예복을 고르러 가야 하는데 시간을 맞출 수 있을까. 석 달 후 결혼식인데, ‘조작 사건’이 길어지면 인원을 더 지원받을 수 있을까.

▦6월28일 수요일 서울남부지검

국민의당 압수수색으로 아침부터 전쟁이었다. 압수수색 장소의 주소를 확보해 보고하고, 허기가 져 기자실에 가져다 둔 콘플레이크로 아침을 때웠다. 어제도 저녁 10시가 다 돼 겨우 저녁을 먹었는데…. 남부지검으로 옮겨 피고발인들과 변호인, 차장검사 등 관련자는 가리지 않고 수소문했다. 여자친구에게 걸려온 전화. 기다리다 지쳐 혼자 청첩장 만들기에 들어갔다고 한다. 전세 대출이나 친구 모임 등에 급히 필요해서다. 청첩장 문구를 직접 써보려 했는데, 불가능한 욕심이었다. 그냥 템플릿 문구를 베끼기로 했다.

종합면과 사회1면에 기사가 잡혀 마음이 급하다. 오후 2시 30분에는 차장검사 티타임(기자 브리핑)도 있는데…. 학생 논문을 베낀 대학교수 사건 기사까지 써야 한다. 오후 3시30분 이유미 구속영장 청구, 기사가 더 커졌다. 오후 5시가 다 돼 쓰기 시작한 기사는 6시까지 송고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아니나 다를까, 오후 5시40분 캡에게서 전화가 왔다. “야, 오늘 8시간 근무 아니냐? 퇴근시간까지 20분 남았는데 기사는 언제 올리냐?” 기사 송고시각 오후 5시57분. 신문 제작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했다. 차장이 기사를 검토 수정하고 승인할 때까지 기다리는데, 성북구의회 의장 뇌물수수 혐의 구속 사건이 터졌다. 그러면 그렇지. 번개같이 기사를 막고 나니 오후 6시20분. “퇴근해라.” 캡의 지시가 떨어졌다. 오늘만은 제대로 저녁이 있는 삶을 즐겨보리. 온전히 쉬어보리. 왜 자꾸 비질비질 웃음이 새나오는 걸까.

하지만 복병이 나타났다. 3주간 출장 여파로 몸살이 난 여자친구가 병원에 다녀온 후 쉬고 싶다며 드레스숍 예약을 취소하자고 한 것이다. 직장 다니는 친구들도 대부분 저녁이 없는 삶이다. 나 혼자 칼퇴근 한다고 저녁이 생겨나진 않는다. 언제부턴가 친구들과의 저녁약속이 성사되지 않는다. 정해진 시간에 나타나는 친구가 없을 뿐 아니라 못 나오는 친구들이 점점 늘어난다. 평등하게 다 같이 야근하는 세상.

8시간만 근무하고 칼퇴근 한 지난달 28일 밤 서울 서교동 웨스트브릿지 라이브홀. 인디밴드 ‘브로콜리너마저'의 공연을 관람하며 인증샷을 찍었다. 정반석 기자

참 오랜 만에 맞는 내 삶의 저녁이다. 혼자면 어떠랴, 좋아하는 밴드 ‘브로콜리 너마저’의 공연을 즉석 예매했다. ‘마음의 문제’를 따라 부르며, 휴대폰을 꺼놓은 것만으로도 힐링이다. 아, 마음이 너무 가볍다. 방황하던 대학 신입생 때의 그 감정이 아련하게 떠오르며 눈가가 촉촉해졌다. 나, 울고 있니?

막간 잠시 휴대폰을 켜보니 차장이 30분 전 남긴 카톡 메시지들이 뜬다. 남부지검 기사에 추가할 내용을 지시한 카톡으로 시작해 ‘왜 대답이 없냐’를 거쳐 ‘내가 써서 넘겼다’로 끝나는 노란 줄들. 식은땀이 흘렀다. 나의 칼퇴근을 위해 누군가가 희생해야 한다면, 이게 과연 대안이 되는 걸까? 5일 중 칼퇴근 흉내라도 낸 건 이틀뿐이다. 29일 오후 7시에나마 퇴근할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캡이 내가 써야 할 기사를 덜어준 호의 덕분이었다.

▦7월1일 토요일 강남역

여유있게 ‘스드메(스튜디오 촬영+드레스+메이크업)’ 업체를 골라보기로 한 날. 휴일이지만 오전엔 이유미 사건의 제보자와 인터뷰를 하고 기사를 작성했다. 오후 2시 만난 여자친구와 수제버거를 먹고 카페에서 기사 쓰기와 결혼 준비를 동시에 했다. 신혼여행지를 검색하다 사건 일지를 정리하고, 스드메를 의논하다 일요 근무자에게 넘겨줄 인수인계 파일을 만들었다. 그래도 행복하다. 둘이서 얼굴 마주보고, 사진도 찍고, 결혼 이야기도 나눴다. 한 주간의 피로가 풀리는 느낌이다.

친구들과 저녁 술자리. 밤 11시에 캡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일 남부지검 기사를 처리할 사람이 부족하니 출근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라인에 전쟁이 났으니…”란 캡의 말에 틀린 것 없고, 기자라는 일이 본래 그런 것이다. 하지만 여자친구에게 일요일 방문하기로 한 스드메 업체 상담을 또 취소해야 한다고 말하려니 조바심이 난다. “일요일 오후에도 시간 내기가 그렇게 힘들어?” 팀 인력이 인사검증팀에 차출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기자가 그렇지’하고 받아들이는 것 외에 다른 인력 운용 방안은 없을까? 인력 증대나 업무 효율화, 획기적 근무제 변화 등 명확한 대책 없이 모두가 저녁 있는 삶은 어렵겠다.

#2 맞벌이하는 법조팀 기자
사건 체크해 후배에 전달 후 퇴근
입덧 심한 아내 위해 고등어 조림
“평일에 요리해 주니 신선한 충격”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브리핑을 들으며 취재 중인 김현빈 기자. 신상순 선임기자
김현빈 기자는 후배에게 일을 맡기고 떠났다

▦7월3일 월요일 서울중앙지법

지난 일주일 내내 8시간 근무에 실패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 부회장 공판이 연일 이어져 저녁 7시까지도 재판이 안 끝나니 마감이 기약 없다. 여느 때처럼 오전 6시30분 기상하자마자 네이버에 ‘단독’을 입력하고 물 먹은 기사가 없는지 확인한다. 오전 8시30분 기자실에 정위치 할 때까지 조간신문을 체크한다. 출근하자마자 공소장을 열람하고 노트북을 켜는데, 어, 노트북이 자꾸 다운된다. 몇 차례 재부팅 후에도 마찬가지. 후배를 통해 아침보고를 하고 회사 IT팀에 전화해 노트북 수리 일정을 잡는데, 왜 반가운 거지. 1시간이나마 서초동을 합법적으로 떠나 있을 수 있다. 노트북 수리를 기다리는 동안 팀장이 한 변호사가 쓴 칼럼을 카톡으로 보내왔다. 감상을 말해야 할 것 같아 읽고 또 읽었다. 칼럼이 좋다는 건지 싫다는 건지, 팀장이 먼저 뭔가 말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지난 금요일에는 휴무였는데, 후배가 쓴 기사에 중요한 팩트 하나가 빠진 걸 마감 후 늦게야 발견했다. 통상 밤 늦게까지 진행되는 재판은 내가 책임지는 게 의무였던 터라 후배가 미처 챙기지 못한 거였다. 8시간 근무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철저하고도 매끄러운 인수인계가 필수다. 팀 내부에서라도 업무분장을 확실히 할 필요가 있겠다.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재판이 밤 늦게까지 계속될 모양이다. 중요사항을 체크해 후배에게 전달하고 오후 6시30분 뒤도 안 돌아보고 퇴근했다.

오후 7시30분 집 앞에 도착해 입덧이 심한 아내가 먹고 싶다고 한 고등어조림 재료를 샀다. ‘백선생 레시피’를 검색해 1시간쯤 조리한 고등어조림을 아내가 맛있게 먹는다. 평일에 요리를 해줄 수 있다니! 신선한 충격이자 행복이다. 막연한 불안함을 안고 퇴근했는데, 저녁이 있는 삶이란 웬걸, 좋군.

김현빈 기자가 직접 끓인 미역국을 아내에게 맛을 보이고 있다. 김현빈 기자

▦7월5일 수요일 서울중앙지법

‘박유천 무고 여성 국민참여재판’ 체크로 시작한 하루가 순조롭게 흘러간다. 오늘은 딱 8시간만 일하고 오후 6시 칼퇴근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이 스멀스멀 피어 오른다. 취재원과 여유 있게 한 시간 넘는 점심시간을 보내고 팀장과 준비한 기획기사를 내일 쓰기로 결정했다. 재판 기록을 다시 찾아보고 판결문 분석을 해야 쓸 수 있는 기사다. 내일 커버해야 할 대형 사건을 취재하며 짬짬이 해야 하는 일이라 업무부담이 커졌다. 정시 퇴근을 하려니 시간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분배해야 할지 고민이다. 당일 돌발 기사 처리가 기자의 숙명이지만, 기획기사는 내가 일정을 조율하고 효율적으로 일하면 퇴근 시간을 앞당길 수 있을 것 같다. 기자 개인의 노력만으로 가능하지는 않다. 편집국 차원에서 마감 일정을 미리 정해 기자들이 생산성을 높이도록 하면 좋겠다.

후배 기사가 최종 승인된 걸 확인하고 오후 7시 아내와 만나기로 한 수제버거집으로 출발했다. 오후 6시 퇴근은 정녕 불가능한 미션인 듯하다. 약속장소에 거의 도착할 즈음 아내에게 아직 일이 안 끝나 출발도 못했다는 문자메시지가 왔다. ‘왜 이제서야 연락을…’이란 말을 목울대로 삼키고 기다리는데 차라리 집 근처에서 만나 저녁만 간단히 먹자는 연락이 왔다. 혼자 집에서 기다리다 오후 9시 넘어 도착한 아내와 집 앞 삼겹살 집에 갔다. 맛있는 저녁이 실패하고 분위기가 다소 가라앉은 상태. 어색한 분위기에서 “그래도 칼퇴근이 좋긴 좋네” 운을 띄우니 아내도 적극 동의한다. 온전한 퇴근이 주는 심적 편안함. 이런 삶을 자꾸 상상하게 된다. “매일 이렇게 저녁을 함께 먹는 삶이라면 마음이 정말 풍요로울 것 같아.” 보름달처럼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 둥근 배를 쓰다듬으며 아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3 언론도 노동시간 단축 가능할까
“8시간에 맞추니 몰입해서 일해”
“여유 생겨 현안 크게 볼 수 있어”
업무 분배ㆍ유연근무 등 고민해야
근로시간 단축 불가능하지 않다

두 기자의 8시간 근무 도전은 다른 동료의 희생을 대가로 한 성공이었다. 짧은 체험 동안 근무시간 단축의 다양한 쟁점이 표출됐다. ▦업무의 범위와 적정량에 대한 분석 없는 인력 운용 ▦야근을 당연시하는 기업문화 ▦인수인계가 불분명하고 장기 일정은 존재조차 않는 주먹구구식 업무 프로세스 등이 높은 벽으로 칼퇴근 실현을 막고 있다. 만성 장시간 노동 속에서, 어떤 날은 일이 너무 많아 결과물이 부실하고 어떤 날은 마감이 없지만 역시 쉬지 못하는 비효율이 단적으로 드러난다. 업종의 특성상 비효율과 장시간 노동이 전혀 없을 수는 없다. 그래도 업무 나누기, 기사별 차등 마감, 개인별 유연근무 등 근로단축 실현을 향한 고민은 싹을 틔웠다.

두 기자가 삶에서 되찾은 저녁은 따스한 휴식 이상이었다. 김현빈 기자는 “8시간에 맞춰서 일을 하니 마냥 밤까지 있을 때보다 훨씬 몰입해서 일하게 됐다”고 말했다. 정반석 기자도 “시간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배분할까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창의력 향상도 실감했다. “밤 10시, 11시까지 일에 매여 전전긍긍하지 않으니 현안을 크게 볼 수 있었다. 오늘 발생한 사건들을 내일 어떻게 의미를 부여해 새로운 기사로 써볼까 구상이 떠올랐다”고 김 기자는 말했다.

짧게 일하는 것이 더 잘 일하는 것일 수 있다는 새로운 경험은 칼퇴근 도전의 주목할 성과였다. 실현 가능성에 대한 고민도 잉태됐다. 기자가 된다면 모두가 된다.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

정리=박선영 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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