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9일 용산 미군기지를 둘러봤다. 폭염경보가 내려진 날씨에도 불구하고 한미연합군사령관의 역사보좌관인 해롤드(Harold) 박사가 기지 안을 구석구석 안내하며 친절하고 자상하게 각 시설에 얽힌 내력을 설명해 주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하나라도 더 많이 이야기해 주려고 애쓰는 그의 진지한 태도에서 곧 한국의 품에 안기게 될 용산 미군기지가 한미의 우호협력을 체감하는 역사학습의 현장으로 활용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작년 10월 하순에도 미군기지에 근무하며 이곳의 역사를 천착해온 김천수 씨의 해박한 설명을 들으며 영내를 꼼꼼히 살펴봤다. 그때는 청명한 가을하늘 아래 샛노란 단풍에 둘러싸인 영관장교 숙사 등이 우아하게 보였는데, 이번에는 짙은 녹음에 둘러싸인 독신장교 숙사 등이 한가롭게 보였다.

미8군사령부는 7월 11일 65년 동안의 용산주둔을 마감하고 평택으로 이전했다. 수수한 사령부 건물은 이미 비어 있었고, 미리 뜯어간 미8군 전몰자기념비 자리에는 어느새 잔디가 무성했다. 다만 한미연합군사령부 건물 앞에는 1978년 박정희 대통령이 한자로 쓴 ‘평화수호의 보루’라는 비석이 서 있고 4성 장군의 재근을 알리는 붉은 깃발이 펄럭이고 있어서 용산의 미군시대가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는 현실을 환기시켜 주었다.

용산은 한강변에 위치하여 예로부터 수운의 거점이었다. 인왕산 등에서 발원한 만초천(蔓草川)이 용산나루터로 흘러 들고, 남산에서 분기한 둔지산(屯芝山) 줄기가 이태원을 끼고 서빙고 쪽으로 뻗어나갔다. 조선이 한양으로 천도한(1394년) 이래 만초천 하류 용산나루 일대에 형성된 마을이 이른바 구용산이고, 일제가 경인선에 한강철교를 가설한(1900년) 이후 용산역을 중심으로 하여 개발된 지역이 신용산이다. 용산은 개천과 도로 및 철도를 따라 한양 도성의 서대문과 남대문에 평탄하게 이를 수 있는 데다가 한강변의 드넓은 개활지를 거느리고 있어서 군대의 주둔에도 적합했다. 몽골, 명, 청, 일본, 미국의 군대는 일찍이 용산의 지정학적 이점을 간파하고 이곳에 진을 쳤다.

현재의 미군기지는 일제가 한국을 침략하는 과정에서 구축한 시설에서 연유한다. 일제는 경인선과 경부선을 부설하면서 용산역 부지로 50만여 평을 차지했다. 그리고 러일전쟁의 도발을 앞두고 300만여 평을 군사용지로 수용했다. 일제가 점령한 땅의 일부는 일본인에게 불하되어 식민의 거점으로 활용되었지만, 대부분의 부지에는 철도와 군사 시설이 착착 들어섰다. 조선총독부 철도국과 조선군사령부 등의 예하 기관들이다. 당시 철도와 군대는 침략과 지배를 선도하는 핵심 도구였다. 일제는 시가의 10분의 1 내지 20분의 1 가격으로 토지·가옥·분묘 등을 점탈(占奪)했다. 철도용지는 대한제국에 빚을 주어 아예 무상으로 받았다. 졸지에 삶의 터전을 빼앗긴 둔지미(屯芝味) 등의 주민들은 거세게 저항했지만 일본군과 매판관료의 탄압으로 정든 마을에서 쫓겨났다. 이처럼 용산에는 서울시민의 피 어린 사연이 깃들어 있다.

일제가 패망하여 쫓겨 간 후 용산기지에는 잠시 미군이 주둔하다가 대한민국 국군이 터를 잡았다. 그러나 곧 북한군의 남침으로 6ㆍ25전쟁이 발발하자 용산기지는 다시 미군과 유엔군의 차지가 되었다. 그 후 65년의 세월이 흘렀다. 용산기지 안에는 현재 1,245개의 건축물이 존재한다. 그 중에서 1952년 이전의 건축물은 132동이다. 일본군의 79연대, 공병대대, 육군병기고, 위수감옥 등의 건물은 미군이 다른 용도로 사용해왔지만 거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그야말로 100여년의 근현대사를 실물로써 증언하는 살아있는 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다.

용산 미군기지의 반환을 계기로 각계에서 이곳을 노리는 입질이 거세지고 있다. 평당 1억 원을 호가하는 아파트가 세워진다든지, 그럴듯한 이름의 박물관이나 공원이 들어선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그러나 바라건대 용산기지는 미군이 떠난 후에 적어도 10년 가량은 현상대로 보존하면서 일반인이 자유롭게 돌아보고 활용방안을 논의할 수 있도록 내버려둬야 한다. 어느 한 정권이 섣불리 용도를 결정할 사안이 아니다.

지난 100여 년 동안 서울의 자연경관은 무척 바뀌었다.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망가져버린 셈이다. 용산 미군기지 안에 들어서면 철종(哲宗) 때 ‘동여도(東輿圖)’에 그려져 있는 둔지산과 만초천을 만날 수 있다. 다른 곳에서는 모두 깎이고 덮여서 볼 수 없는 아늑한 산세와 물길이다. 둔지산은 100여 년 동안 용산의 영욕을 지켜보며 등허리의 느티나무 숲을 무성하게 키워냈다. 만초천은 일그러진 역사의 흙탕물을 온몸으로 실어내고 지금도 재잘거리며 흐른다. 아마 우리가 아무리 좋은 조형물을 세운다 하더라도 둔지산과 만초천보다 아름답거나 고즈넉하지는 않을 것이다. 둔지산과 만초천이 우리가 파괴해버린 150년 전 서울의 경관을 일부나마 시현(示現)할 수 있도록 미군이 떠난 용산기지는 오랜 동안 그대로 보전해야 한다.

정재정 서울시립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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