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할 말 있다

초등 여아들 자신감, 체력 높아져
소년들 “여자는 약자” 이해 못해
일부 학부모 “남녀 활동 분리”
이분법 프레임이 젠더 교육 망쳐

중학교 1학년, 초등학교 4학년 두 아들을 둔 주부 A(40)씨는 지난주 같은 반 여학생이 꼬집어서 멍든 큰아이의 팔을 보고 속앓이를 해야 했다. 이런 일이 다시 없게 문제를 삼을까 했지만, ‘남자가 쩨쩨하게’라며 아들만 이상한 아이 취급 받을까 봐 말 꺼내기 쉽지 않았다. 그러면서 계속 마음이 불편했던 것은 지난해 아들이 같은 반 여학생에게 상처를 입혔을 때의 일이 생각나서였다. 담임 교사는 “아이들끼리 장난치다 생긴 일이니 걱정말라”고 했지만 여학생 부모는 “왜 사과도 없이 가만히 있느냐”며 항의하는 바람에 A씨는 수 차례 “죄송하다”고 사과하며 문제아 엄마가 된 듯한 자괴감이 들었다. 고민 끝에 A씨는 아들에게 앞으로 여학생들과 어울리지 말라고 했다. “남학생, 여학생이 어울렸다 작은 사고라도 생기면 자초지종 따져 보지도 않고 남학생 잘못으로 단정짓는 분위기가 있어요. 그러니 할 수 있나요? 아예 여학생 있는 곳에 가지 말라고 하는 수밖에.”

초등학교 남학생들은 억울하다고 한다. 분명 또래 여학생들은 자신보다 약하다는 느낌을 전혀 받지 못하는데도 어른들은 여자는 약하니까 남자가 잘 지켜줘야 한다고 한다. 씩씩한 남자가 진짜 남자라는 그 압박에 힘겨워하는 남학생들은 그냥 여학생이 싫다고 까지 한다.

어린 소년들에게 여성혐오의 그늘이 있다는 지적에 남학생들과 아들 둔 부모들에겐 “억울하다”고 하소연하는 목소리가 많다. 성평등 교육이 강조되면서 과거라면 장난으로 넘어갈 일에도 남학생들이 엄하게 벌 받고 지적받는 일이 많아졌지만, 현실에선 여학생들이 훨씬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지방의 초등학교 교사 B씨는 “요즘 교실을 보면 모둠 활동이 많은 수업시간에는 대부분 여학생들이 모둠을 이끌고, 반장(회장) 같은 자리도 여학생이 훨씬 많은 게 사실”이라고 말한다. ‘여자는 얌전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자란 부모 세대와 달리 어렸을 때부터 부모의 전폭적 지원 아래 당당하게 자기 주장을 펼치며 자란 여학생들은 자신감이나 성취도에서 부족할 게 없다. 초등학생까진 체격이나 힘에서도 남학생에게 밀리지 않는다. 그러니 어린 소년의 눈에는 ‘여자는 약자’라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울의 초등학교 C 교사는 “남학생에게는 ‘여자를 때리면 큰 일 난다’는 메시지가 전달되지만 여학생에겐 이런 교육이 되지 않아 문제”라고 지적한다. 남자든 여자든 때리면 안 된다고 교육해야 하지만 교실에서 실제 이뤄지는 교육에는 다양한 수준의 젠더 의식이 뒤섞여 있다. 남녀가 동등하다고 배우다가도 ‘남자는 남자다워야 한다’거나 ‘여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고개를 든다. 그러다 잘못된 방식의 감정 표출이 불쑥 튀어나온다. 다른 초등학교 D 교사는 “자기 표현을 잘 못하던 남학생들이 갑자기 여학생에게 욕설이나 성적 표현을 해서 왜 그러냐고 이유를 물으면 그냥 여자 아이들이 싫다고 합니다. 정작 차별 받는 것은 자기라면서요”라고 말했다.

이런 억울한 심정에 빠진 남학생 학부모들은 남학생과 여학생을 분리해 끼리끼리만 어울리는 등 성평등에 반하는 문화를 만들기도 한다. 초등 3학년 아들과 유치원생 딸을 둔 한 엄마는 “초등학교 입학 즈음 아들은 알림장도 못 적고 준비물도 빠뜨리기 일쑤라 매일 여학생 학부모에게 귀동냥을 해야 했다”며 “여학생들과 어울려 봐야 득될 게 없다고 생각한 남학생 학부모들은 아예 따로 모여 방과 후 축구 활동을 하는 식으로 학부모 그룹도 양분됐다”고 말했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성인들의 이분법적 프레임이 오히려 남녀 학생들을 자연스럽게 어울리지 못하게 만든다”며 “남녀 구분 없이 누구든 상대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된다는 보편적 교육과 함께 성별에 따른 입장을 이해해 주는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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