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화가 김환영이 낸 그림책 ‘빼떼기’의 원화전을 보았다. 나는 화가와 벗으로 지내는 사이지만, 원화 한 컷 한 컷의 무게감이 서늘해서 그림에 대해 그에게 뭐라 말을 건네기가 어려웠다. 적어도 일주일은 머무르며 다가섰다 물러서고, 돌아갔다 다시 오고, 눈 속에 담았다가 머릿속에 비워 내고 해야 그림이 뿜는 기운을 반이나마 받아 안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얗게 펼쳐진 종이 앞에서 붓은 망설인다. 두려움이다. 단 하나, 계속 그려 가다 보면 어느 순간 붓이 스스로 눈을 떠 제자리를 찾아가기도 한다는 것. 내가 그림을 움직이는 게 아니라 그림이 나를 움직이며 진행되기도 하더라는 것. 그렇게 화면을 장악하는 힘과 감각이 최고의 상태에 이르기도 하더라는 것.” 지면에 발표된 화가의 ‘작업 일기’를 읽으며, 화가가 그림과 마주한 순간들이 어떤 무늬를 그려 나갔는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었다.

‘빼떼기’는 권정생 선생이 쓴 동화로, 아궁이에 들어갔다 솜털이 타고 불에 데어 빼딱빼딱 걷는 깜둥 병아리 이야기다. 내게는 김환영의 붓으로 그림책으로 재탄생한 ‘빼떼기’를 새롭게 만나는 경험이었지만, 많은 독자들은 권정생과 김환영의 합작 그림책으로 ‘빼떼기’를 처음 만날 것이다.

김환영의 그림이 권정생 작품을 다시 만나게 했듯 시인 안상학은 권정생 선생이 사시던 안동 조탑리 집 마당으로 나를 이끈다. 선생이 타계하고 지난 5월로 어느덧 10주기이니, 그곳 풍경도 이제 많이 변했을 듯하다. 시인은 선생이 키우던 개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본다. ‘꾸구리’ ‘버직이’ ‘뺑덕이’ ‘두데기’라는 녀석들이 선생에게는 다 특별했을 것이다. 선생이 피붙이처럼 지낸 개들이 눈 똥을 파묻었던 집 둘레에 봄이 오고 개나리꽃이 핀다. 강아지 똥이 피운 민들레꽃(동화 ‘강아지 똥’)이 떠오르는 장면이다. “무덕무덕 핀” 개나리꽃의 이미지는 민들레꽃보다 더 질기고 강렬하다.

앞으로 권정생 선생의 작품을 다른 예술가와의 합작품으로 또는 다른 예술가를 매개로 해서 만나는 일이 많아질 터이다. 특별하고도 즐거운 경험이다. 권정생 선생이 개성 있고 뛰어난 예술가들을 불러내고 있다.

김이구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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