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금류지만 사체만 먹는 청소동물
강한 면역체계로 질병 노출 안 돼
하늘을 활공하는 검독수리. 국립생태원 제공

초원의 제왕으로 사자와 같은 ‘맹수(猛獸)’를 꼽는다면 하늘의 제왕은 ‘맹금(猛禽)’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주로 다른 동물을 사냥해 포식하는 육식성 조류무리이지요. 맹금류는 사람의 8배 이상 되는 시력, 튼튼한 가슴과 어깨근육 그리고 빠른 비행술, 날카로운 부리와 발톱, 빠른 반응신경 등을 갖고 있습니다.

맹금류 중에서도 가장 강인한 개체로 꼽히는 검독수리는 사냥술이 대단합니다.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등에서는 검독수리를 길들여 매사냥을 하는 데 주로 토끼와 같은 포유류를 사냥하지만, 능숙한 검독수리는 여우와 심지어 늑대까지 사냥을 하니 가히 하늘의 제왕이라 할만 합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노르웨이에서는 어린 불곰을 잡아채간 사례가 기록으로 남아 있고, 절벽을 오르는 산양을 날아가 밀어 뜨려 사냥 하는 영특함도 보입니다.

이 같은 특성 덕에 맹금류는 용맹함의 상징물로 많이 기록됩니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신들의 사자(使者)로 알려져 있고, 많은 국가의 상징물이지요. 한국 경찰청의 마크 역시 참수리로 돼 있다는 점을 볼 때 힘과 권위, 용맹함을 표현하는 데 가장 좋은 동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독수리는 사냥을 하지 않는다?

맹금류를 분류학상으로 보면 민첩한 몸놀림과 빠른 비행으로 작은 먹이를 사냥하는 매과와 큰 날개와 몸집으로 활공해 보다 큰 먹이를 사냥하는 수리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매과는 매, 황조롱이, 비둘기조롱이 등 날개 끝이 뾰족하고 크기가 작고 빠른 비행술로 소형 포유류나 양서ㆍ파충류를 주로 사냥합니다. 수리과에 속하는 맹금류는 날개가 크고 끝에는 손가락 모양의 날개깃이 펼쳐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맹금류 중 일반에 가장 잘 알려진 ‘하늘이 제왕’은 독수리입니다. 현존하는 수리류 중에서 가장 크고 하늘을 활공하는 웅장한 모습은 압도할 만합니다. 늑대도 사냥하는 검독수리를 제쳐두고 맹금류를 대표하는 일반명사로 쓰일 정도지요. ‘독수리가 병아리를 채가듯 한다’ ‘독수리 한 마리를 새매 백 마리가 못 당한다’ 등 다양한 속담에서도 독수리의 강인함을 엿볼 수 있지요. 어려서 즐겨 보았던 만화 ‘독수리오형제’를 봐도 독수리는 용맹함의 상징입니다.

하지만 독수리가 사냥을 할 줄 모르는 비교적 순한 동물이라는 점은 널리 알려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어려서부터 동물의 사체를 주워 먹는 청소동물로 일반적인 수리류와는 차이를 보입니다. 멋지게 날다가 땅으로 내려오면 다소 어리숙해 보이지만 좀 더 자세히 보니 말똥말똥한 눈동자가 귀엽기까지 합니다. 영문으로 수리류는 이글(Eagle)로, 독수리는 벌처(vulture)로 표기해 그 차이를 표현합니다. 우리가 예전부터 동경하고 속담에까지 등장하는 독수리는 훌륭한 사냥 솜씨나 용맹함 등으로 볼 때, 비교적 이름이 비슷한 검독수리가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독수리는 국제자연보호연맹(IUCN) 적색목록(Red List) 준위협종(Near Threatened)이며, 한국에서는 멸종위기야생동물 2급, 천연기념물 제243-1호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는 희귀종입니다. 유럽 남부, 중앙아시아, 티베트, 몽골, 중국 북동부에서 번식하고, 국내에는 철원평야, 장단반도, 경남 고성 등에 고정적으로 찾아와 겨울을 보내는 겨울철새입니다. 번식시기는 2월에서 8월말까지로 포란기간은 54~62일이고, 새끼를 기르는 시기는 95~120일 정도입니다. 암벽 위나 큰 나무 위에 직경이 2m가 넘는 넓은 둥지를 만들어 매년 같은 둥지를 고쳐가며 번식하고 있습니다. 알은 한번에 한 개씩 낳지만 간혹 2개를 낳은 기록도 있습니다.

부리는 일반적인 맹금류에 비해 두툼하고, 발톱길이도 짧고 발도 두툼해 사냥하기에 적합하진 않지만 사체를 집고 뜯어 먹을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은 충분합니다. 크기는 98~120cm이고, 날개 편 길이는 2.5~3.1m로 수리류 중에서 가장 크며, 급한 사항이 아니면 잘 날지 않고 상승기류가 발생하는 시간대에 적은 날개짓으로 하늘 높이 올라가는 특징을 보입니다. 큰 날개를 파닥거릴 때마다 많은 에너지 소모가 있기 때문에 에너지 절약차원에서 진화해온 행동 중 하나입니다.

전 세계 23종의 유사종이 서식하고 머리깃털은 드문드문 합니다. 머리깃털이 많으면 사체의 부드러운 부분을 먼저 먹기 위해 내장을 먹는 과정에서 이물질이 묻어 질병에 노출될 수 있으나, 독수리는 깔끔하게 먹을 수 있어 이런 위험이 덜합니다. 이름에서도 독수리의 독(禿)은 대머리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먹이 다툼을 하고 있는 독수리 무리. 국립생태원 제공
청소동물, 불길한 징조라고요?

청소동물은 자연계에서 가뭄이나 맹수들의 사냥 등으로 발생하는 사체를 말끔히 청소해 질병 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동물을 말합니다. 대표적으로 독수리, 까치, 까마귀, 하이에나, 송장벌레 등이 있지만 흰꼬리수리나 참수리와 같은 맹금류도 멀쩡한 사체가 있으면 공짜 밥상을 본 것처럼 어김없이 청소동물 행세를 할 때도 있습니다. 큰 사체는 독수리가 소비하고 다음으로 까마귀, 송장벌레의 순으로 유기물을 말끔히 분해해 자연으로 환원시켜 주는 역할을 합니다. 이렇게 해서 보다 건강한 자연환경을 유지시켜줍니다.

이러한 청소동물은 생태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도 많은 오해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죽은 동물 주변을 기웃거리기 때문에 불길한 징조로 보이며, 영화와 같은 대중매체에서도 비슷한 이미지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실제 이들의 삶은 척박하기 이를 데가 없습니다. 대부분 배불리 먹어 본 적 없는 삶이고 모든 포커스가 에너지 효율에 맞춰져 있습니다. 청소동물의 조건은 기초대사량이 적고, 적은 에너지로 먼 곳까지 이동이 가능하며, 감각기관이 매우 뛰어나야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독수리의 경우 새벽의 찬 공기가 따뜻해 질 때 발생하는 상승기류를 타고 하늘높이 올라가 먹이를 찾는 습성은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하는 행동 중 하나입니다. 맞바람이 불면 본능적으로 큰 날개를 펼치고 하늘 높이 올라 시각에 의존하여 사체를 찾아냅니다. 나름의 전략으로 먹이를 찾는데, 이를테면 상승기류를 타고 올라온 동료들의 움직임을 파악한다든지 맹수들의 움직임을 눈여겨본다든지 하는 ‘눈치전략’을 통해 사체를 찾아내는 것으로 추측해 봅니다. 필자가 독수리 조사를 위해 몽골에 갔을 때 이야기인데요. 현지 유목민이 저녁 만찬을 만들기 위해 염소 한 마리를 게르(몽골 유목민 천막) 뒤편의 바위로 끌고 가는데 독수리 서너 개체가 몇 분 후 상공을 선회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우연의 일치일 수 있겠지만 ‘사람의 움직임도 파악하나?’ 라는 의문을 품었었지요.

그렇다면 독수리가 사체를 취식해도 질병 등에 노출 되지 않고 살아 갈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맹금류의 경우 대부분 강한 위산을 가지고 있습니다. 육식을 하기 때문에 빠르게 소화시켜 몸 속에서 부패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죠. 독수리도 강한 위산을 가지고 있으며 다른 맹금류처럼 사냥과 사체섭식을 동시에 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 사체섭식을 하기 때문에 썩은 고기도 먹을 수 있는 강한 면역체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완전 사체섭식을 하는 다른 독수리류에서도 유사한 면역체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독수리는 미국 칠면조독수리와 유전적으로 6,000만년 정도 떨어져 있고, 서식지의 교류도 없는 구대륙(아시아ㆍ유럽대륙)과 신대륙(미국대륙)에 각각 서식하고 있지만 동일한 식습관을 통해 체내 유사한 면역방어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동물 사체를 먹고 있는 독수리들. 국립생태원 제공
최대 월동지 한국, 먹이부족에 눈물

한국은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많은 수의 독수리가 도래하는 최대의 월동지입니다. 몽골은 넓은 초원과 유목민들로부터 얻을 수 있는 먹이가 많아 번식지로서 최적의 조건을 가진 나라입니다. 또한 바위산이 많아 둥지를 만들기도 좋습니다. 하지만 겨울철 몽골은 너무나 춥고 먹이도 얻기 힘들어 보다 따뜻한 한국으로의 이동이 불가피합니다. 이렇게 일부 둥지를 지키려는 성조를 제외하고 부모로부터 독립한 올해 태어난 독수리와 일부 성조가 무리를 이뤄 10월쯤 한국으로의 이동을 시작합니다. 에너지 소비를 최소로 하기 위해 상승기류를 타고 높이 올라갔다가 하강하면서 이동하지요. 위치정보시스템(GPS) 추적 기록을 보면 몽골, 중국, 북한 등지를 통과해 약 1,700km를 22일 동안 날고 또 쉬면서 이동합니다. 한국에는 매년 약 2,000마리가 찾아오는데, 주요 독수리 도래지를 방문하면 거대한 독수리들이 옹기종기 모여 휴식을 취하거나 먹이를 찾기 위해 활공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월동하는 개체들의 삶도 녹록하지 않습니다. 먹이 부족 때문이죠. 야생동물 사체가 많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축산농가에서 나오는 부산물이나 일부 사고로 죽는 야생동물의 사체로 버티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아 영양부족으로 탈진하는 사례가 많이 발생합니다. 탈진한 개체들이 다행히 사람들에게 발견되면 야생동물 구조센터에 인계돼 영양공급을 받고 치료와 휴식을 취할 수 있습니다. 야생동물 구조센터에 가보면 다친 새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유리창에 부딪쳐 눈을 잃은 수리부엉이, 사냥꾼들의 총에 맞은 말똥가리, 독극물이나 납탄총에 맞은 기러기와 그러한 기러기를 섭식하다가 납중독으로 실려온 흰꼬리수리 등 인간이 만들어 놓은 많은 것들이 이들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특히 전깃줄은 우리가 바라볼 때 하늘을 배경으로 바라봐 잘 보이지만 새들의 경우 논이나 바닥을 배경으로 보기 때문에 거의 보이지 않아 하강할 때 부딪쳐 다리와 날개가 부러지는 사고가 많이 발생합니다. 이들의 치료를 위한 국내 야생동물 구조센터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열정을 다해 일하시는 분들 덕분에 멸종으로 향하는 야생동물의 삶이 조금이나마 유지되고 있습니다.

멸종위기종의 생존을 위해 국가의 예산투입과 환경보호단체의 먹이주기 봉사가 매년 진행돼, 독수리의 개체 수는 조금씩 증가하고 있습니다. 야생성을 잃어버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지만 독수리는 스스로의 사냥기술이 없어 누군가가 제공한 먹이를 먹고 진화해온 조류이기 때문에 야생성과는 큰 상관이 없다고 보여집니다.

먹이주기 행사에 가보면 많은 수의 독수리들이 먹이를 먹기 위해 싸우고 있지만 일부는 인근의 까치나 까마귀에게 쫓기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하늘의 제왕 타이틀이 머릿속에서 사라지는 순간이죠. 겨울철 몰려다니는 까치나 까마귀에게 이길 조류들은 많지 않습니다. 이들은 잡식성인데다가 영리하기 때문에 덩치가 큰 맹금류가 나타나면 뒤를 쫓아가 꼬리 깃을 빼버립니다. 날기 불편하게 만들기 때문에 귀찮은 존재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한줌도 안 되어 보여도 깃 갈이를 하는 데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소모되므로 꾹 참고 도망가는 거죠. 하지만 매와 같이 빠르고 강한 공격력을 가진 맹금류에게는 덤비질 않습니다. 금방 잡아 먹히기 때문이죠. 그런 의미에서 매가 진정한 하늘의 제왕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독수리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맹금류는 멸종위기종입니다. 한국을 비롯, 전 세계의 맹금류가 같은 처지이지요. 인간 활동의 결과로 발생하는 자연 생태계의 불균형은 이들의 먹이사슬에도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상위포식자인 맹금류의 수가 유지되고 있다는 것은 그 지역의 생물다양성도 유지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먹이가 될 생물이 많다는 이야기이지요. 더욱이 독수리와 같이 먹이를 직접 구할 수 없는 청소동물의 개체수가 많다는 것은 상위포식자가 남긴 사체가 많다는 것이므로 보다 건강한 생물다양성이 유지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런 이유에서 비록 검독수리 보다 덜 멋지고, 덜 용맹하지만 독수리를 하늘의 제왕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이들이 번성할 수 있는 생물다양성의 제국이 될 날을 기대하면서요.

진선덕 국립생태원 생태기반연구실 선임연구원

관련 기사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치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