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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낄낄낄] 문어의 고뇌, 유희 그리고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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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낄낄낄] 문어의 고뇌, 유희 그리고 사랑

입력
2017.06.15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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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잉글랜드 아쿠아리움의 태평양거대문어 '옥타비아'가 자원봉사자인 애나와 '포옹'하고 있다. 글항아리 제공
미국 뉴잉글랜드 아쿠아리움의 태평양거대문어 '옥타비아'가 자원봉사자인 애나와 '포옹'하고 있다. 글항아리 제공

문어의 영혼

사이 몽고메리 지음ㆍ최로미 옮김

글항아리 발행ㆍ356쪽ㆍ1만6,000원

이 사람, 많이 이상하다. 오랜만에 만난 문어가 자기를 알아봤다고 기뻐한다. 축축하고 끈적끈적한 문어 다리(그는 팔이라 부른다)가 몸 여기저기를 훑게 내버려 두더니 “문어가 나를 맛봤다”고 즐거워한다. 문어 빨판과 입맞추고 싶어 안달한다. 수조를 빠져 나와 말라 죽은 문어가 “자유를 원한 나머지 위대한 탐험가로 사망했다”고 추도하며 눈물을 떨군다.

미국 작가 사이 몽고메리가 미국 뉴잉글랜드 아쿠아리움에 사는 태평양거대문어의 내면을 들여다 보고 쓴 ‘문어의 영혼’. 처음엔 읽는 이의 영혼이 빙빙 돈다. 야들야들한 숙회, 감칠맛의 정수인 말린 다리 또는 괴물과 외계인의 표상으로 존재하는 바로 그 문어이므로. 동물 교감 전문 작가라는 저자는 문어에 감정도 성격도 공감 능력도 있다는 ‘사실’을 진지하지만 지루하지 않게 일러준다.

책은 ‘인간만이 생각하는 위대한 존재다’ ‘인간과 비슷하게 행동할수록 똑똑한 동물이다’ 같은 편견을 허문다. 문어는 꿈틀거리는 단백질 덩어리가 아니다. 지능 있는 여느 동물처럼 유희를 즐긴다. 아이가 열지 못하게 설계된 뚜껑을 열 수도 있다. 문어의 뇌 크기는 앵무새와 비슷하고, 신경 세포는 쥐(2억개)보다 많은 3억개다. 어려운 과제를 만난 문어는 피부 색이 휙휙 바뀐다. 인간이 얼굴을 찌푸리듯이. 문어와 인간은 5억년 이상 다른 트랙에서 진화했다. ‘영리하다’는 기준이 다른 게 당연하다.

“동물은 우리가 상실했거나 결코 획득한 적 없는 확장된 감각의 세계에서 우리가 끝내 듣지 못할 목소리를 따라 살아간다.” 저자가 인용한 말은 책을 관통하는 주제다. 문어 다리 여덟 개는 저마다의 성격과 호기심을 갖고 있다는 것, 다리 하나가 잘려 나가면 그 만큼의 기억도 사라진다는 것, 문어의 자아는 하나가 아닌 여덟 개일 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하려면 겸손하고 유연해져야 한다. 그럴 수 있다면 같은 종족인 인간 중에 품지 못할 이가 있으랴.

책의 클라이막스는 밸런타인데이에 미국 시애틀 아쿠아리움이 주선하는 문어의 짝짓기 장면이다. 동물의 교미에 감정 이입하는 건 변태나 할 짓이 아닌가 싶지만 어느새 ‘남녀 문어’를 뜨겁게 응원하게 된다. “흥분해서 상기돼 입을 맞대고 껴안고 빨판들이 반짝거리며 서로 맛보고 당기고 빨았다.” 얼굴이 붉어지다가도 짝짓기를 마치고 생을 마감해야 하는 문어의 숙명 앞에 숙연해진다. 수컷은 곧바로 죽는다. 암컷은 정자를 지니고 있다가 때가 되면 수정란을 낳아 지극 정성으로 보살펴 부화시킨 뒤 역시 죽는다. 문어의 사랑은 슬프고도 아름다운 헌신이다.

저녁 먹으러 간 식당 수조 속에 문어 사촌인 낙지가 엎드려 있었다. 툭툭 건드리며 말을 걸었지만 한번 움찔할 뿐이었다. “드넓은 푸른 바다를 꿈꾸었을 너는 극도의 공포와 억압 때문에 차라리 생을 포기해버린 게로구나. 미안해…”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l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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