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차가들어옵니다전광판불이켜지고턴넬은갑자기소음으로꽉차빠앙하는소리지하철정거장무너트리며열차는섰다10초동안문이열리고수많은사람들동시에타고내리고금세문이닫히고열차는떠나간다”. 1980년대 시동인지 <시와 경제> 제2집(1983)에 발표된 김정환 시인의 ‘지하철 정거장에서 (둘)’의 첫 대목이다. 지하철역으로 전동차가 진입할 때의 광경이 사소한 풍경이 아니라 엄청난 사건처럼 그려졌다. 시인의 예민한 감수성, 혁명을 기다리는 역동적인 주제의식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시기에 지하철의 위용은 시민들의 사소한 일상으로 파악되기는 어려웠다.

지금은 지하철, 전철이 수도권을 얼기설기 거미줄처럼 연결하고, 전국 대도시에 지하철이 발달돼 있어 지하철 교통은 이제 대다수 국민의 생활의 일부분이 되어 있다. 박혜선의 동시 ‘퇴근 시간’은 그러한 일상 속의 지하철을 주목해서, 하루 일과를 마무리할 ‘퇴근’ 시간이 되자 지하철로 모여드는 ‘구두’들을 관찰한다. ‘여기저기 기웃거렸거나’ 종종걸음을 친 구두는 일자리를 구하러 다닌 구두인 듯. 고객을 찾아 나선 영업사원의 구두일지도 모르겠다. 사무실에 ‘갇혀’ 있었던 구두는 필경 천차만별의 업종이 있는 내근직 종사자의 구두일 것인데, 갈 곳이 없어 ‘공원에서 죽치고 있었던’ 구두란 은퇴자의 구두일까. 아니 은퇴자나 노인만의 상황은 아닐 것이다. 지하철은 타고만 있으면 목적지에 ‘눈 감고도 갈 수 있는 길’이기에, 하루의 피로에 지친 구두들은 선 채로 앉은 채로 불편한 잠을 자기도 한다. 역에 정차하면 ‘또 한 무리의 구두’가 객실로 들어온다. 지하철은 온갖 사람이 모여드는 장소이고, 수많은 구두의 다양한 표정이란 하루의 팍팍한 삶이 아로새겨진 서민들의 ‘얼굴’이다.

요즘 지하철엔 임산부 배려석도 있고 노약자석도 있다. 분홍색이나 자주색으로 팍 구별되는 임산부 배려석에 젊은 청년이나 장년의 사내가 앉아 있을 때도 있는데, 눈총을 주기보다는 벙긋 웃어 주자. 출입구 쪽 자리로 배정된 노약자석을 보면 노약자 분리 차별이란 생각도 들지만, 나도 너무 피곤할 때는 슬쩍 앉아 갈 수 있으니 고맙다. 출퇴근 시간보다 낮 시간에 주로 지하철을 타는 내 시야에 들어오는 신발들은 가죽 구두보다 갖가지 스타일의 운동화 등 다종다양했다. 그것도 이 시대의 풍경이고 문화의 한 부분으로 관찰될 수 있으리라.

김이구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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