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는 다 같은 토마토가 아니다. 사진의 토마토는 모두 다른 세 품종이다. 새빨갛게 농익은 붉은 색은 적색계 품종인 데프니스. 그보다 연하게 선홍빛이 도는 것은 핑크계 품종인 도태랑이다. 대추 방울토마토는 젊은 층이 많이 소비하고 있는데, 사진의 것은 베타티니 품종이다. 강태훈 포토그래퍼

토마토는 과일인가, 채소인가. 인류 지성이 발달해 수학 난제인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도 증명됐지만, 토마토가 채소인지 과일인지는 그처럼 시원하게 답하기 어렵다. 한국에서, 한식에서 토마토는 ‘일단은 과일’이다. 밥상에 반찬으로 토마토가 오르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토마토 김치나 장아찌를 담그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최근 들어 등장한 음식이다. 애초에 토마토는 과일가게에서 팔지, 채소 가게에서 파는 일은 없다. 고로 한국에선 토마토가 과일이다.

근본적으로 정체성이 모호한 데다가 한국에 정착한지 고작 500여년 밖에 되지 않은 외래종이라서다. 페루, 칠레, 콜롬비아, 에콰도르, 볼리비아 일부 지역을 관통하는 안데스산맥 서쪽이 원산지다. 광해군 때 쓴 백과사전 ‘지봉유설’을 참고하자면 토마토가 지구를 반 바퀴 돌아 한국에 온 시기는 조선 선조나 광해군 시대로 추정된다.

그런 것치고는 많이 먹는 작물이다. 농림축산식품부 '농림축산식품 주요통계'에 따르면 토마토 생산액은 2015년 9,850억원으로 과일ㆍ채소 총생산액(4조 8,740억원) 중 20.2%를 차지했다. 2016년 파악된 토마토 재배면적은 6,836만㎡(약 2,000만평)에 달한다. 2016년 연간 토마토 소비량도 1인당 8.2㎏로 추정된다. 많이도 먹는다. 그러나 2007년엔 더 많이 먹었다. 1인당 11㎏에 달했다.

젊은층은 방울토마토를 선호하고 장년층 이상은 여전히 일반 토마토를 견지한다. 모양이 길쭉한 대추 방울토마토가 특히 급성장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서울가락도매시장을 비롯한 34개 도매시장 실적 자료를 분석한 ‘토마토 품종별 전체 도매시장 반입량 추이’에 따르면 2012년 일반 토마토가 69%, 원형 방울토마토는 25%, 대추 방울토마토는 6%였다. 2016년엔 일반 토마토는 65%, 원형 방울토마토는 14%였고 대추 방울토마토가 21%로 증가했다. 일반 토마토의 품종도 바뀌고 있다. 요리나 가공용으로 사용되는 적색계 비중이 높아지고, 생식용으로 소비되는 도색계(핑크계) 출하 비중은 감소하고 있다. 적색계 토마토는 유럽계 토마토로 통칭하기도 하는데 껍질이 두껍고 단단하며 당도가 낮고 수분이 적다. 과일처럼 먹기보다는 요리에 쓰기 좋다. 햄버거나 샌드위치 속에 넣기에 딱 좋다. 데프니스, 다볼 품종을 많이 키운다. 토마토를 샀는데 기대한 맛과 다르다면 적색계 토마토일 확률이 크다. 도색계 토마토가 수십 년 전부터 먹던 수분 가득하고 향긋하며 진한 그 토마토다. 일본계 토마토라고도 한다. 대개 껍질이 얇고 당도가 높아 그냥 베어 물어 먹어도, 아무 것도 넣지 않고 갈아서 주스로 마시기에도 좋다. 도태랑(모모타로) 계열 품종을 많이 쓴다.

하늘과 동업해 길러낸 맛있는 토마토
싱싱하게 익어가는 달기농장의 토마토. 잎에 난 자국은 해충인 아메리카잎굴파리의 흔적이다. 흥 많고 느긋한 조재호 농부는 천적충을 푸는 타이밍을 서두르지 않고 해충이 충분히 극성일 때를 기다린다. 사진 이해림 객원기자

가장 맛있는 토마토는 어떤 것일까. 일단 달아야 한다. 과일이라면, 단맛을 상상해야 식욕이 돈다. 동시에 신맛도 충분해야 한다. 그래야 침이 고인다. 신맛 없이 달기만 해서는 되레 밍밍하다. 짠맛도 필수다. 짠맛엔 감칠맛이 따라온다. 특별히 소금간을 하지 않아도 맛이 진해 간이 맞는 것이 맛있는 토마토의 조건이다.

한국술집 이원석 요리사와 달기농장 조재호 농부. 앞에 놓인 병에는 토마토에게 주는 천연 영양제가 들어있다. 사진 이해림 객원기자

국제슬로푸드 한국협회와 농사펀드, 한국술집이 협업해 매달 여는 ‘맛연구회’와 함께 충남 아산시의 달기농장을 찾았다. 1993년부터 토마토를 키운 이 농장은 처음부터 유기농을 고집하며 한 해 농사를 수 차례 망치길 거듭하다가 오랜 경험을 통해 최적의, 최상의 맛을 내는 토마토를 생산하는 농장으로 자리 잡았다. 이 농장의 가장 큰 특징은 두 가지다. 우선 ‘맛 좋은 토마토를 생산한다는 것’이 첫째다. 과일로서 최상의 토마토다. 도태랑 계열 토마토는 당도가 7.5브릭스(100g에 1g의 당도가 있을 때 1브릭스)까지 나오는데 일반 토마토 중 아주 높은 당도다. 대추 방울토마토는 ‘베타티니’ 품종을 쓰는데 9.5브릭스까지 나온다. 당도와 산미를 함께 갖추고 있으며, 적당히 간이 된 맛이다.

달기농장의 토마토 꽃 수분은 벌이 담당한다. 자연스럽게 꽃가루를 옮겨 붙이는 방법이다. 사진 이해림 객원기자

두 번째 특징은 ‘생산 효율성이 매우 떨어진다’는 것이다. 품종부터 수확량이 적은 종이다. 수확량으로 따지자면 적색계 토마토가 월등히 많다. 달기농장은 토경 재배를 고집한다. 양액(작물에 필요한 양분을 수용액으로 만들어 주는 것) 재배가 훨씬 효율적이고 광범위한 농법이지만 이들은 땅을 더 믿는다. 토마토 밭도 쉬어야 한다며 두 해 중 반년은 쉬게 둔다. 이상적인 탄질비(탄소와 질소 비율)를 만들기 위해 토마토 발치에 짚단을 깔아둔다. 미생물이 활동해 짚단이 숙성되면서 이산화탄소를 내뿜는다. 화학적으로 병을 막는 게 아니라 유산균 등을 사용해 생물학적으로 병을 막는다. 해충은 천적을 푸는데, 천적충을 쓰기 전에는 손으로 일일이 잡았다. 한 달에 한 번 꼴로 엷게 희석한 해수를 급수한다. 토마토는 염도에 민감해 짠 땅을 먹으면 생산성이 낮아진다. 대신 과실엔 당도와 산도가 증가한다. 수확 직전에는 물도 굶긴다. 물 먹지 않은 진한 맛으로 출하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키우니 일반 토마토 농장의 수확 기간(개화 후 50일)보다 20일을 더 기다려야 수확할 수 있다. 양도 적고 시간도 더 든다. “농사는 하늘과의 동업”이라고 말하는 조재호·박응서 부부는 “마음을 비우지 않으면 맛있는 토마토가 나오지 않는다”고 ‘부처처럼’ 이야기한다.

토마토, 너의 미래는?
토마토는 요리 재료로 무궁무진하게 변신할 수 있다. 지난달 28일 열린 ‘맛 연구회 – 땅이 주는 그대로의 맛’에서 ‘한국술집 21세기 서울’ 이원석 요리사가 선보인 요리. 왼쪽 아래부터 시계 방향으로 에피타이저인 토마토 칩ㆍ젤리ㆍ차, 토마토 가스파초와 샐러드, 토마토 게살 타르타르, 도다리 롤에 곁들인 다양하게 조리한 토마토, 벌꿀 토마토 아이스크림, 토마토 빙수. 강태훈 포토그래퍼

다시 토마토의 정체로 돌아가자. 토마토는 그러나 과일인 동시에 분명히 채소이기도 하다. 토마토가 요리에 채소로 쓰일 때는 단단한 것이 좋고, 껍질은 제거하기 쉬워야 하며 수분이 적어 질척이지 않아야 한다. 기왕이면 젤리(씨방)도 작고 단단한 게 유리하다. 샐러드를 만들어도, 샌드위치나 햄버거 속재료로 써도 이런 토마토가 적합하다. 토마토 소스는 완제품을 구매하거나 이탈리아산, 미국산 토마토 캔을 쓰는 것이 대개의 경우인데 달걀 모양의 플럼계 품종, 산 마르차노 등이 주로 사용된다.

한국에서 이런 토마토를 볼 수 없는 것은 가격이 안정적이고 품질이 일정한 토마토 캔이 워낙 잘 나오기 때문이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기후가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안데스 산맥의 잉카와 마야 문명을 떠올려 보자. 태양은 내리쬐지만 서늘하고 건조한 기후의 풍경이 펼쳐지지 않는가. 한국의 여름은 고온다습하고 특히 여름 내내 끈적이는 열대야가 이어진다. 토마토에게 가혹한 기후다. 농촌진흥청 노미영 박사는 “플럼 토마토 같은 가공용 토마토는 노지에 빽빽하게 심어 일시 수확해 바로 가공하는데 시설재배가 100%에 육박하는 한국에서는 그러한 재배 여건이 갖춰져 있지 않다. 기후 면에서도 노지 재배가 쉽지 않다”며 “수요가 미미하기 때문에 수익성 측면에서도 쉽게 시도되기 힘들다”고 설명한다.

이원석 요리사가 조리한 토마토의 15가지 제형. 왼쪽 위부터 차례대로 24시간 동안 말린 토마토를 간 토마토 파우더, 덜 익은 토마토로 담근 토마토 장아찌, 토마토로 주스를 내 만든 젤리, 말린 토마토와 블랙 올리브, 멸치를 함께 갈아 만든 토마토 페이스트, 토마토의 맑은 즙만 모아 설탕, 홍이버섯균을 넣고 발효시킨 토마토 차, 토마토 젤리만 모아둔 것, 탄산을 주입한 토마토 식초와 시럽, 토마토 맑은 즙에 가볍게 절인 방울 토마토, 투박하게 자른 토마토

그러나 언제까지고 한국의 토마토가 과일일 수만은 없다. 시대의 흐름은 농산품의 품종 다양화다. 농촌진흥청은 과일이 아닌 요리의 소재라는 토마토의 이미지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소비 다변화, 한국 기후에 맞는 품종 개발, 종자의 국산화, 친환경 생산 재배법 개발 등이 목표다. 전라남도 보성의 김영수 농부, 경기도 광주의 정관모 농부 같이 틈새 수요를 위한 다양한 특수 토마토를 시험하고 새로운 시장 개척에 도전하는 농부들도 있다. 맛 좋은 토마토가 과일이어도 좋지만, 채소로서도 맛 좋은 토마토가 흔해진다면 선조 시대 이전처럼 토마토가 없는 밥상 풍경도 드디어 바뀔 수 있으리라.

이해림 객원기자 herimthefoodwrite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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