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소설집 ‘빛의 호위’

2004년 등단해 소설집 2권 장편 4편을 발표한 조해진은 오늘날 한국소설의 한계와 가능성을 함축한 작가다. 이야기는 시종 단순하고 인물들은 하나 같이 담담하지만, 그 고백 끝에는 시적인 여운이 남는다. 창비 제공

빛의 호위

조해진 지음

창비 발행ㆍ268쪽ㆍ1만2,000원

순문학에서 타자와 소외에 관한 문제는 언제나 주요한 관찰의 대상이었다. 1980년대 시, 소설이 거대 담론에 의해 규정된 타자를 다루었다면, 1990년대는 여성주의 관점에서 소외가 논의되는 식으로 말이다.

소설가 조해진은 오늘의 방식으로 타자와 소외를 다룬다. 이를 테면 횡령죄를 저지른 후 노숙인 생활을 하는 전직 은행원(단편 ‘지워진 그림자’), 한국남자와 사랑에 빠져 한국에 들어왔다가 남자가 떠난 뒤 부엌 가구점에 취직한 우즈베키스탄 출신 고려인 여성(단편 ‘인터뷰’), 탈북자를 만나며 자신의 상처와 대면하는 방송작가(장편 ‘로기완을 만나다’)를 밑천으로 삼는 식이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이 작가의 첫 소설집 ‘천사들의 도시’(2008) 해설에서 명명한 “타자의 소설”은 곧 조해진의 상징이 됐다.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쓴 단편 아홉 편을 묶은 소설집 ‘빛의 호위’는 오늘날 한국 순소설의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함축하고 있다. 흡입력 좋은 소설을 앞부분에 집중 배치한 작품집은 조해진의 세계를 처음 접한 독자가 포기하지 않고 단숨에 몇 개 읽어 나가게 만든다.

표제작 ‘빛의 호위’는 21세기 한국 단편의 말하기 방식을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잡지사 기자인 화자가 분쟁지역 전문 사진작가 권은과의 인연을 ‘스노우 볼’을 통해 단계별로 회상하게 되는 작품은, 상처를 지닌 내가 나보다 더 큰 상처를 지닌 누군가를 관찰하며 맞닥뜨리게 되는 감각을 섬세한 필체로 기록한다.

보다 정교한 작품은 역사적 폭력의 생존자와 그 주변인들의 내면을 비추는 이야기들이다. ‘사물과의 작별’은 1971년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을 겪은 이들을 지하철 유실물센터 직원이자 조카인 나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화자의 고모는 서울의 레코드가게에서 일하며 재일동포 유학생 서군을 만나고, 서군은 고모에게 일본어로 쓴 에세이 원고를 보관해달라며 맡기고 사라진다. 이듬해 봄, 서군의 학교로 가 조교로 보이는 남자에게 원고를 전달한 고모는 보름 뒤 유학생 간첩단 명단에서 서군의 이름을 보게 된다. 평생 죄책감에 짓눌린 고모는 40여 년 만에 서군을 만나지만 서로 알아보지 못한다. 서군은 고문 후유증으로 인한 전신마비, 고모는 치매에 걸린 탓이었다.

1967년 동백림(동베를린) 사건의 흔적을 되짚은 ‘동쪽 伯(백)의 숲’은 일말의 희망을 남긴다. 독일 유학 당시 간첩으로 몰려 고초를 겪은 대학교수 안수 리와 그가 사랑했던 한나의 이야기를 한나의 손자, 발터의 시선으로 재현한다. 두 연인은 고초를 겪으며 각자의 진실을 서로 알릴 수 없지만, 상대방과의 뜻 깊은 인연을 배신하지 않음으로써 “개인이 세계에 앞선다는 것”을 재확인 시킨다.

소외된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20여쪽 짧은 이야기들은 시종 단순하고 한 문장이 두 줄을 넘지 않는다. 삶의 큰 변곡점에 선 인물들은 하나 같이 담담하고, 남녀노소 학력과 계층에 상관없이 인물들의 고백 끝엔 시적인 여운이 남는다. 동생의 살아가는 힘이 되는 세상 떠난 언니(‘잘 가, 언니’), 먼 나라의 화가에게 영감을 주는 신문에 실린 사진 한 장 (‘시간의 거절’), 직장 잃은 철학 강사에게 답장 없는 편지를 계속 보내는 중국인 제자(‘산책자의 행복’)등 소설 속 인물들은 서로를 살게 하기 위해 분투하면서 그 힘으로 살아간다.

곡진한 아홉 편의 이야기를 묶으며 작가는 썼다. ‘나의 세계를 넘어선 인물들, 그들은 시대와 지역을 초월하여 소통했고 유대를 맺었다. 그들은 나보다 큰 사람들이었고 더 인간적이었다.’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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