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대세” 자신감 배경 이해되지만
프레임은 '어떤 정권교체냐'로 이동
'낡고 무디고 굳은' 이미지 반전 있어야
지난 달 31일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찾아가는 동 주민센터'인 서울 성동구 마장동 주민센터를 찾아가 방문글귀를 적은뒤 들어보이고 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의외였다. 설 연휴 끝에 편하게 '마크맨'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가볍게 답한 말이라고 하지만 "저 문재인이 대세 맞다"라고 한 것은 평소 그의 어법이 아니다. 본인조차 표현이 과했다고 생각했던지 "제 개인보다는 정권교체를 바라는 민심이 대세이고 정권교체를 해낼 사람으로 저를 지목하는 게 민심"이라고 톤을 낮췄으니 말이다.

평소 그의 겸손한 성품이나 신중한 성격에 비춰 볼 때 이 얘기는 그냥 웃자고 한 것으로 흘려버릴 것이 아니다. 특히 대세론은 자칫 잘못 꺼내면 캠프나 지지자들의 긴장감을 흐트려뜨려 잡음을 낳고 경쟁자의 반격을 촉발하는 등 역기능이 크다. 그럼에도 자가발전 하듯 이 대목을 꺼낸 것은 다른 계산이 섰다는 뜻이다. 우선 설 연휴 전후해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나 지역별 민심 탐방에서 확인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이른바 제 3지대 움직임에 쐐기를 박고, 될 사람을 밀어주는 호남 충청권의 '전략적 투표'를 의식했을 법하다. 아울러 포용적 이미지의 안희정 충남지사 등 역동적 다크호스들이 치고 올라오는 것을 경계하고 캠프의 자신감을 북돋우려는 메시지도 느껴진다.

더구나 그는 "사상 최초로 광주 부산 등 영호남과 충청 모두에서 지지를 받는 지역통합 대통령, 진보 보수를 아우르는 이념통합 대통령, 세대 간 갈등을 치유하는 세대통합 대통령 시대를 열고 싶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다자간 대결에서 지지율이 30% 벽을 뚫은 데다 2위와의 격차를 배 이상으로 벌렸다. 지역별로도 절대 취약지대가 없고 진보적 투표성향이 50대 초반까지 올라가는 등 인구지정학 여건이 '결코 질 수 없을 만큼' 우호적으로 바뀐 결과이니 의욕이 커질 만하다.

전 우주가 나서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를 도와주는 것일까. 얼마 전 한 조사에선 지지도가 40%대로 치솟아 캠프를 흥분시키더니, 중도보수 진영의 강력한 경쟁자였던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마저 좌우와 지역을 넘나든 끝에 제풀에 지쳐 결국 돌을 거뒀다. 전윤철 전 감사원장을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영입해 호남 구애와 친문 패권 색채 희석의 계기도 마련했다. 문 대세론이 먹히고 있다는 것은 국민의당 분당 때 떨어져 나간 당원들의 복당 러시에서도 확인된다.

그럼 문 전 대표의 대선가도는 탄탄대로일까. 그를 줄곧 괴롭혀 온 확장성 문제도 쉽게 풀려나갈까. 지난 18대 대선에서 문 전 대표는 14,692,632표, 48.2%을 얻어 박 대통령에게 108만표, 3.53%포인트 뒤졌다. 2%를 더 가져오느냐 빼앗기느냐가 승패를 갈랐다는 얘기인데, 진영대결을 피할 수 없는 이번 대선에서도 대결구도가 어떻게 짜여지든 막바지엔 결국 이 2%가 열쇠가 될 가능성이 높다.

문 진영은 정권교체 프레임과 대세론으로 밀고가면서 일자리 및 성장, 공정 및 균형발전 등 정책의제를 선점하면 경쟁자가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을 것이라고 여기는 듯하다. 하지만 반 전 총장의 중도하차로 보수가 길을 잃자 대세론 프레임도 덩달아 흔들리고 있다. '더 나은' '더 유능한' '더 젊은' 등의 정권교체 성격이 부각되면서 대선의 유동성과 불확실성은 오히려 확대됐다는 주장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안희정 지사 주목도가 높아진 것은 단적인 예다.

문 대세론에 제동을 거는 2%는 감동으로 채워야 할 공간이다. 문제는 문 진영이 감동과 스토리를 만들어 내기엔 너무 낡고 무디고 굳어 있다는 것이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시인과 촌장, 가시나무)라는 절창 노랫말에 빗댄다면 '문재인 속에 문재인이 너무 많아' 다른 생각과 사람이 깃들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통합과 화쟁의 시대를 외치는 문재인 안에 햇볕정책의 틀에 갇힌 경직된 안보관을 고집하고 주류 기득권을 친일과 독재 잣대로 매도하는가 하면, 우리편을 앞세우는 정치공학적 편가르기와 포퓰리즘적 시류 편승을 일삼는 문재인이 견고하게 똬리를 틀고 있는 까닭이다.

문 전 대표의 좋은 품성만으로는 난세를 이끌기 어렵다. 마키아벨리가 말한 '비르투(virtu)'든, 김대중 전 대통령이 강조한 '서생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이든, 그의 눈이 더 커져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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