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에 다니는 둘째가 한글을 익히기 시작했다. 전기밥솥을 유심히 들여다 보더니, “이 글자는 음… ‘예진이’의 ‘예’, ‘약속’할 때 ‘약’!” 친구들 이름에서 글자를 익히기 시작해서 하나씩 하나씩 글자를 더듬더듬 읽기 시작하는 것을 보니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다.

어릴 때는 이렇게 뭐 하나 둘씩 배워 가는 모습이 마냥 사랑스러웠는데, 학교에 들어간 첫째는 이제 평가를 받기 시작한다. 매주 받아쓰기를 해서 점수를 받아 오고, 가끔 단원평가 시험지도 가지고 온다. 아이의 점수를 받아 보기 시작하니, 기분이 묘하다.

점수는 아무 것도 아니고, 아이가 어릴 때는 신경 쓰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그래도 마음 먹은 것과는 다른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점수를 잘 받아 온 날은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돌고, 점수가 나쁠 때는 괜찮다고 생각하면서도 뭔가 묘하게 기분이 침체된다. 아이의 점수가 바로 내 점수가 아닌데, 왜 이렇게 기분이 영향을 받는지 모르겠다.

아들 친구 엄마들을 가끔 만나면, 우리 반의 누가 공부를 잘하는지, 점수가 어떤지, 이야기를 할 때가 있다. “아, 그렇군요….” 그저 끄덕거리고 있는데, 얘기를 하다 보면, 서로 은근히 점수에 대해 신경을 쓰게 되는 것 같다.

내가 어릴 때 기억을 떠올려 보면, 공부를 잘 하고 점수를 잘 받았을 때 기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공부보다 더 잘하고 싶은 것들도 있었고, 친구들과 좀 더 잘 어울리는 것이 나에게 중요했는데 충분히 그러지 못해서 아쉬운 마음도 있었던 기억이 난다. 특히 중, 고등학교 때는 성적 때문에 친구들과 서로 비교하고 신경 쓰는 것이 엄청난 스트레스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내가 엄마가 되어 보니 아이의 높은 점수는 그저 기쁘고 자랑스럽기만 한 것이다. 내가 점수를 잘 받았던 기억보다 나의 아이가 점수를 잘 받는 것이 더 기분이 좋은 것은 뭔가 이상하다.

내 점수보다 아이의 점수가 더 기쁜 것은, 아마 점수를 받기 위해서 쏟아야 하는 노력과 스트레스, 경쟁과 비교에서 오는 열등감과 우월감 같은 여러 과정이 다 생략되고, 오직 결과만을 보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점수가 높은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며, 경쟁과 비교 속에서 느끼는 감정들이 긍정적이고 건강한 것만은 아니다. 내 아이가 과연 더 좋은 점수를 받고 싶을까? 또 남보다 좋은 점수를 받는 것이, 반드시 더 행복하고 더 나은 삶을 살아가는 과정일까? 혹시 나도 모르게 결과 중심적인 사고방식으로 아이를 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이의 점수를 보면서, 나를 돌아보고 생각하게 된다.

다행히 아이는 점수에 크게 연연하는 편은 아니다. 좋은 점수를 받아온 날에는 “이번에는 잘 봤어요” 하고, 점수가 별로 좋지 않으면, “이번에는 어려워서 많이 틀렸어요” 라며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한다. 또 반에서 중간 정도 잘 하는 것에 대해서는 “이 게 제일 좋은 거예요. 앞으로 더 잘할 수 있으니까. 제일 잘하면, 이젠 더 떨어질 것 밖에 없잖아요”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자기가 남보다 더 잘 하고, 더 못 하는 것에 대해서 너무 스트레스 받지 않으면서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엄마보다 낫구나 싶고, 점수에 연연하는 엄마의 마음이 부끄럽다.

아주 어릴 때부터 성적과 점수를 매기고, 누구보다 더 잘나고 더 못나고를 평가 받는 것이 익숙한 우리 사회에서 점수에 연연하지 않고 살아가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이런 여러 가지 평가가 과연 아이들의 미래에 대해 적절한 판단인지, 불필요한 열등감이나 우월감을 만들어내고, 아이들의 꿈을 꺾을 수도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이 된다. 한치 앞도 예측하기 어렵고 급하게 변하고 있는 사회에서, 아이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는 지금 점수로는 알 수 없지 않을까. 아이의 점수보다는, 아이의 마음과 꿈을 더 살피는 엄마가 되어야 할 것 같다.

김남희 참여연대 복지조세팀장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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