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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의 길 위의 이야기] 더러운 잠

입력
2017.01.26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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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표창원 의원이 주최한 전시회에 박근혜 대통령을 풍자한 누드 그림이 전시된 이후 그야말로 야단이 벌어졌다. 마네의 작품 ‘올랭피아’를 차용한 그림에서 박 대통령은 나체로 누워 있고 최순실은 주사기를 들고 서 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부패한 권력자에 대한 비판이라도 여성혐오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고 국민의당 여성 의원들도 여성 정치인에 대한 혐오와 성적 대상화라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의 대변인도 그림의 반(反)여성적 측면을 인정했다. 그런데 새누리당 전국여성의원협의회가 표 의원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장에 들고 나온 피켓을 보고 그만 어안이 벙벙해졌다. 피켓 중 하나에는 “표창원 네 마누라도 벗겨주마”라고 쓰여 있었다. 여성혐오를 비판하고자 나온 기자회견장에서 논란의 당사자도 아니고 그 아내를 조롱거리로 만드는 여성의원들의 낯 뜨거운 태도라니. 내 편이 아닌 상대방은 여성혐오와 모독을 감내해도 되고 또한 표 의원의 아내는 표 의원의 소유물이라고 인식한 데서 벌어진 일이다. 한국여성민우회의 성폭력 예방을 위한 캠페인의 핵심 키워드는 ‘내 몸의 주인은 나’이다. 주체적이고 자율적인 태도로 내 몸을 바라보는 사람이 상대의 몸도 그렇게 존중할 수 있을 거라는 의미일 것이다. 아주 오래 전 어느 대학 학술제에서 순결한 가정의 중요성을 말하며 ‘내 생식기의 주인은 배우자’라는 우스꽝스러운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적이 있다. 십 년도 더 된 그 촌스러운 일이 새삼 떠올랐다. 지금에야 뒷목을 잡을 일이지만 그 시절엔 그래, 그랬다고 치자. 하지만 2017년, 시간이 이만큼이나 흘러도 여전하다. 아무데서나 고개를 빼꼼빼꼼 내미는 이 저열한 폭력의 흔적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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