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이미지뱅크 제공.

파멜라 린든 트래버스의 동화 ‘메리 포핀스’에는 몹시 사랑스러운 쌍둥이 아기들 존과 바바라가 나온다. 존과 바바라는 아기 바구니에 누워 하루 종일 양말을 벗어 보였다가 또 발가락을 입에 집어넣었다가 울기도 하고 졸기도 한다. 아기 방 창가에는 종종 새들이 날아오는데 그러면 존과 바바라는 새들과 이런저런 세상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니까 이 아기들은 새와 말이 통하는 거다. 새뿐 아니라 다른 동물들과도 마찬가지다. 존과 바바라에게 그것은 신기할 일도 아니었다. 아기들이 조금씩 자라 이제 사람의 말을 막 배우려 할 즈음 새가 슬픈 표정으로 말한다. “너희들도 곧 우리와 얘길 나눌 수 없게 되겠구나.” 아기들이 묻는다. “무슨 소리야?” 사람의 말을 배우게 되면 동물들과의 대화법은 저절로 잊게 된다는 걸 존과 바바라는 몰랐던 것이다. 새의 설명을 듣고 아기들은 울었다. “싫어! 너와 얘길 할 수 없게 된다는 건 너무 슬프잖아.” 아마도 내가 ‘메리 포핀스’를 읽은 건 아홉 살 무렵인 듯한데, 나도 이 대목에서 이불을 덮어쓰고 울었다. 내가 아기였을 때 나와 대화를 나누었던 참새와 동네 잡종개와 공벌레도 내가 그들과의 대화법을 잊어가는 걸 보며 혹시 슬펐을까. 오래 연락이 닿지 않은 인연을 가끔 떠올릴 때면 나는 늘 존과 바바라와 그 창가의 새가 떠오른다. 슬픈 줄도 모르고 대화법을 잊었겠지만 누구 하나는 뒤에 남아 이제 잊힌 자신을 혼자 달랬겠지. 어떤 인연은 내가 먼저 말하는 법을 잊었고 어떤 인연은 내가 뒤에 남았을 것이다. 생각난 김에 헌책방 사이트를 뒤져 계몽사판 ‘메리 포핀스’를 한 권 찾아낼까 보다.

소설가

인기 기사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