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하철 휠체어길 지도 만든 협동조합 ‘무의’와 계원예대 학생들

교통약자 입장서 환승 복잡한
서울 14개 지하철역 지도 제작
“모든 역으로 확대하는 게 목표”
계원예대 학생들과 장애를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자는 협동조합 ‘무의’ 구성원 등이 지난달 29일 서울 지하철역 환승지도 디자인 수정안을 놓고 의논하고 있다. 무의 제공

“영등포구청역 5호선에서 2호선으로 갈아탈 때 평소 5분이면 충분한데 휠체어로 이동하니 30분이나 걸렸어요. 하필 휠체어리프트도 고장 난 날이라 엘리베이터만 이용해야 했는데, 지상으로 올라가 건널목을 두 차례 건너 2호선 승강장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타는 긴 여정을 거쳐야 했죠. 그나마 공익요원의 도움마저 없었다면….”

계원예대 광고브랜드디자인과 졸업을 앞둔 문미현(23), 이지훈(25), 송현수(25)씨는 지난 여름부터 직접 휠체어를 타고 이처럼 교통약자 환승에 취약한 서울 14개 지하철역을 체험해 ‘환승지도’를 만들었다. 엘리베이터와 리프트를 이용해 갈 수 있는 ‘휠체어길’을 알려주는 지도로, 한국장애인인권포럼 부설 장애인정책모니터링센터가 2013년에 내놓은 교통약자용 ‘지하철 환승도우미’ 앱을 바탕으로 환승경로가 복잡한 14개역을 뽑았다.

이달 말 모바일웹에 공개하기 위해 디자인을 최종 수정 중으로, 학과 지도교수인 김남형(45) 계원예대 교수와 윤경은(40) SK플래닛 웹디자이너, 홍윤희(44) 이베이코리아 이사 등도 디자인 수정을 돕고 있다.

윤씨는 간암 투병한 부친의 휠체어 이용 경험을 통해, 홍씨는 하반신 마비로 휠체어를 타는 딸을 키우면서 장애인 이동권에 관심을 갖게 됐다. 휠체어는 오토복코리아에서 협찬을 받았다. 휠체어 이용자 등 교통약자의 사용자경험(UX)을 포함한 서비스디자인프로젝트를 일종의 산학협력으로 진행한 셈이다. 홍씨가 속한 단체로, 장애가 무의미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취지로 지난해 결성한 협동조합 ‘무의’의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계원예대 학생들과 장애를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자는 협동조합 ‘무의’ 구성원 등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무의 제공

서울 지하철역 370여개 중 14개역에 국한된 정보지만 기존 지하철 공공 앱의 교통약자용 정보보다 세부적이고 시각적 이미지를 강조한 게 특징이다. 딸과 지하철을 바꿔 타다 휠체어 리프트 고장으로 호되게 고생한 경험이 있는 홍씨는 “당장 엘리베이터와 리프트를 확 늘릴 수 없다면 휠체어길에 대한 정확한 안내만 있어도 더 낫겠다 싶었다”고 말했다.

이들이 지하철 환승지도 만들기에 매달린 것도 벌써 반년 째. 목표는 뚜렷하다. 관련 공공기관이 관점을 바꾸는 것이다. 김 교수는 “유니버설디자인(사용자 편의를 위한 디자인)의 관심이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한국 사회의 서비스디자인은 여전히 이용자가 아닌 공급자 관점인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들이 환승지도뿐 아니라 14개역의 ‘고객여정지도(Customer Journey Map)’를 함께 만든 것도 그래서다. 교통약자 눈높이에서 사용자 경험을 생생하고 체계적으로 시각화한 것이다. 예컨대 외국인, 초등학생, 고교생 등 휠체어 이용자를 구체적으로 설정해 이들의 환승과정을 소개하면서 각 구간별로 “엘리베이터 하차 후 경사로 경사가 높아 위험했음” 같은 불편사항을 같이 적어 넣은 형태다.

이들은 교통약자 환승지도를 14개역에 그치지 않고 전 지하철역으로 늘리기 위해 시민들에게 환승지도를 함께 만들자고 독려하는 비디오를 촬영해 공개할 계획이다. 이미 이 프로젝트에 공감한 기아자동차 직원들이 대가 없이 직접 휠체어를 타고 4개역 환승경로를 조사해 넘겨줬다. 홍씨는 “서울 지하철은 여러 사업자가 나눠 운영하다 보니 환승 동선이나 안내체계에 허점이 많은 것 같다”며 “모든 사업자를 아우르는 유니버설디자인 위원회를 여는 등 시 차원의 통합 정책이 마련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소연 기자 jollylife@hankookilbo.com

제임스라는 가상의 외국인 휠체어 이용자 시각에서 만든 지하철 4ㆍ7호선 환승역인 서울 노원역의 여정지도. 무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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