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 천일야화] 28. 하늘이 내린 전망대, 중도객잔

중도객잔에서 바라본 위룽설산 전경. 꼭대기는 만년설이다.

2014년 10월31일 중국 윈난성 리장 하바설산의 해발 2,345m 중도객잔은 무림영화 속 신용문객잔이었다. 한반도 남쪽에서는 이용의 ‘잊혀진 계절’로 가을이 깊어가는 시월의 마지막 날, 그곳에 올랐다. 경주에서 정수일 선생을 만나 실크로드와 인연을 맺은 날로부터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2년 뒤였다. 영어로 ‘halfway’라고 쓰여진 이 여행자 숙소는 경공술을 쓰는 무림고수들이 어디선가 날아들 듯한 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중도객잔은 차마고도(茶馬古道) 여러 루트 중 리장에서 티벳 라싸로 넘어가는 남쪽 길 언저리의 숙소다. 윈난성과 쓰촨성의 차와 티벳의 말을 물물교역하던 차마고도는 마방과 순례자 등을 소개한 방송사 프로그램으로 유명세를 탔지만 지금은 상징적인 이름으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차마고도의 한 갈래는 티벳에서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인도까지 넘어가면서 실크로드 족보에도 이름을 걸치고 있다.

중도객잔 전망대 난간에 '2345'라고 적혀 있다. 해발 2,345m다.

중도객잔은 하늘이 내린 전망대였다. 해발 5,396m 하바설산과 5,596m 위룽설산이 진사강을 중심으로 가파른 V자 형태를 이룬 산허리 구름 속에 있었다. 바람에 구름이 걷히면 눈 위에는 만년설을 머금은 위룽설산이, 눈 아래 낭떠러지에는 동서로 실처럼 이어지는 진사강이 넘실대고 있었다.

중도객잔은 베이징의 전통 가옥인 스허위엔(四合院)을 닮았다. 동서남북이 방으로, 중간에 정원이 난 구조다. 3층짜리 목조건물인 이곳 2층 중간방에 짐을 풀고 마당 건너 식당 옥상에 야외 카페처럼 꾸며진 전망대에 오르니 벨기에에서 온 부부 배낭여행객이 자연을 감상 하고 있었다. 곧 이어 두 쌍의 벨기에 부부들이 머리 높이의 등짐을 지고 객잔을 들어선다. 이들은 며칠째 설산을 걷는 중이라고 했다. 시간에 쫓겨 이름난 명승지만 훑고 지나가는 여행객 눈에는 그들이 부럽기만 하다.

카메라 삼각대를 펴고 이리저리 앵글에 담고 있으려니 해가 저문다. 식당에서 맛있는 냄새가 풍기더니 오골계가 상위에 올랐다. 산 중의 만찬, 시장이 반찬이 아니었더라도 꿀맛이었을 것이다.

중도객잔 밤하늘이 별천지다.

젓가락 놓기 무섭게 전망대에 다시 올랐다. 붉은 빛이 은은한 숙소 뒤에는 하바설산의 어둠이, 어슴푸레 자태가 보이는 위룽설산 위 하늘에는 별이 꽂히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은하수가 터를 잡았다. 이제 하늘은 오롯이 별들의 무대였다. 천 년 전 마방이 차를 싣고 티벳으로 넘어갈 때의 하늘도 이날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중도객잔은 지금도 전세계 트래커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명소다. 바로 후타오샤(虎跳峽ㆍ호도협) 트래킹 코스이기 때문이다. ‘호랑이가 뛰어 넘은 협곡’이란 뜻의 후타오샤는 양대 설산 사이 해발 2,000m 정도의 진사강에 길이 16㎞나 길게 펼쳐져 있다. 폭이 가장 좁은 곳은 30m에 불과하고, 이곳에서 설산 정상까지 고도차는 최고 3,900m나 된다.

중도객잔을 오르기 전 후타오샤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주차장에서 계단으로 한참이나 내려갔다. 중국인의 상술은 산이나 계곡이나 다름없었다. 태산에서 봤던 가마가 이곳에도 여행객을 태우고 계곡을 오르내렸다. 케이블카는 없었지만 2인 1조로 가마를 나르는 현지인들이 있는 이상 관절염 때문에 후타오샤를 보지 못하는 불상사는 없을 것이다.

리장 후타오샤의 진사강 중간에 호랑이가 뛰어넘은 바위가 있다. 호랑이상 앞에서는 여행객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계단을 내려가니 거대한 호랑이상 앞에 사진 찍는 여행객들이 가득하다. 하지만 호상은 인공물일 뿐 진짜는 진사강 중간의 거대한 바위였다. 바로 호랑이가 강을 건널 때 디뎠던 바위가 거센 물살을 받아 물보라를 뿌리고 있었다. 나무데크가 협곡 주변으로 이어져있었고 투명한 전망대 바닥은 꿈틀거리는 강의 용트림을 보여주고 있었다. 폭우가 내리면 바위도 물에 잠겨버린다고 한다.

주차장에서 여행객들은 속칭 ‘빵차’로 불리는 소형 승합차로 갈아탔다. 이제부터 구절양장보다 더 꼬불한 산길을 달려야 했기 때문이다. 후타오샤는 60∼70도 정도의 가파른 V자 협곡이었다. 빵차가 8명의 여행객을 싣고 낭떠러지 길을 오르니 충청도에서 온 60대 어르신의 안색이 하얗게 질린다. 약간의 고소공포증이 있다며 “내려달라”고 사정한다. 어차피 트래킹 코스이기는 하지만 혼자 뒤쳐지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그저 낭떠러지 반대쪽만 쳐다보시라고 할 밖에. 그 어르신은 차가 S자 산길에서 방향을 바꿀 때마다 오른쪽 왼쪽을 번갈아 보느라 목이 뻐근해졌다고 하소연했다.

후타오샤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한 여행객이 가마를 타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후타오샤 트래킹 코스는 치아오토우 매표소에서 나시객잔, 28밴드, 차마객잔, 중도객잔, 티나객잔으로 이어지는 산길이다. 사실 중도객잔 씩이나 와서 트래킹 맛을 보지 않는 것은 억울했다. 다음날 아침 부리나케 티나객잔 방향으로 산행을 나섰다. 관음폭포까지 1시간 정도 걷고 중도객잔으로 돌아오는 길에 어제 그 벨기에 부부 일행을 만났다. 그들은 걸어서 티나객잔까지 간다고 했다. 며칠 뒤 샹그릴라에서 만나기로 하고 “씨유레이터”, “짜이지엔”, “안녕”했다. 차마고도에서 언어야 아무렴 어떻겠는가.

중국 윈난성 리장 위룽설산 허리 밑부분에 옛 차마고도가 남아있다. 아래는 도로다.

지금도 철마다 여행사에서는 ‘호도협 트래킹 마감 임박’이라는 휴대폰 메시지를 날려온다. 그때마다 내 마음은 중도객잔에서 떠돈다.

● 관련영상: 중도객잔의 아침

jhj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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