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 천일야화] 27. 이것이 몽골이다

몽골 국립공원 테를지의 파노라마 전경

푸른 하늘과 흰 구름, 끝없는 초원에는 말이 달리고 머리 위에는 독수리가 선회하는 그 곳은 바로 몽골이었다. 그랬다. 칭기즈칸의 천년 제국 몽골은 이방인을 절대 실망시키지 않았다. 실크로드의 환상이 그대로 현실이 되는 곳이었다. 유목민의 나라, 몽골은 수도 울란바토르를 떠나면서 본격적으로 속살을 드러냈다.

몽골에서 가장 날씨가 좋은 7월 울란바토르 북동쪽 70㎞ 지점, 테를지 국립공원에서 첫 도전은 승마였다. 승마라면 정장을 차려 입고 돈냄새를 풍기는 귀족스포츠 이미지가 강하니, 그냥 말타기라고 하는 것이 어울리겠다.

몽골 테를지의 게르촌
여행객들이 게르에서 몽골의 밤을 마유주로 달래고 있다.

여성과 어르신들에게는 마부가 따라 붙었다. 말 잔등에 올라타는 것도 무섭다고 엄살을 피우던 50대 여성은 몽골 10대 소년의 허리를 꽉 잡아야 하는 신세가 됐다. 남성들은 자유방임 상태였다. 아무 말이나 올라타고 달려보라는 식이었다. 세 걸음만 넘으면 말을 타고 다니는 몽골에서 말은 삶, 그 자체였다. 하지만 지구촌 모든 남성이 말을 잘 탈 것이라는 믿음은 그들의 착각이었다.

10년 전 중국 내몽고 후허하오터의 악몽이 떠올랐다. 30, 40대 남성 6명이 갔더니만 말을 고르라고 했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멀리 한 지점을 가리키더니 1시간 안에 돌아오라는 것이 다였다. 그런데 이 놈의 말이 말을 들어먹지 않았다. 아랫배를 차보고, 채찍도 때려보며 고함을 질러댔는데도 말은 따로 놀았다. 앞말 엉덩이에 코를 박고 가다 샛길로 빠져 풀을 뜯기 일쑤였다. 고난의 행군이었다.

요령을 터득한 동료 하나가 앞으로 달려나갔다. 허벅지를 말등에 꽉 붙이고 고삐를 제대로 움켜잡으라는 주문이었다.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말이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제자리 걸음을 할 때는 속이 터져 죽겠더니, 달리기 시작하니 겁이 났다. 엉덩이가 불규칙적으로 말잔등에 부딪혔다.

유목민 흉내를 낸 대가는 혹독했다. 꼬리뼈 주변 엉덩이가 까져서 의자에 제대로 앉을 수도 없고, 침대에 눕기도 힘들었다. 한 달 가까이 엉금엉금 기어다녀야 했다.

경험이 교훈을 낳았다. 이번에는 아예 숙소를 나오면서 자전거탈 때 입는 두툼한 팬티로 중무장했다. 여전히 말은 제멋대로 걷다 서다 달리기를 반복했지만 내 엉덩이는 무사했다.

몽골의 밤하늘에 은하수가 쏟아지고 있다. 오른쪽은 동물 가죽으로 만든 활 과녁이다.

몽골 초원 도전 종목이 하나 더 있었다. 은하수 사진찍기다. 몇 년을 벼르다 큰 맘 먹고 니콘800 카메라에 14-24㎜, 24-70㎜, 70-200㎜ 3종 렌즈를 장만한 터라 무엇이든 렌즈에 담던 때였다.

몽골 초원에 밤이 찾아오니 별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페루 마추픽추 인근 쿠스코의 시골 마을에서 보던 은하수가 그 곳에도 있었다. 초원 한가운데 삼각대를 펴고 카메라를 장착했다. 광각렌즈에 ISO 3200, 조리개 수치 2.8에 개방시간 15초로 찰칵, 활 과녁인 동물 가죽도 앵글 한 쪽에 넣어 찰칵, 밤 마실나온 여행객도 찰칵, 그렇게 한참이나 카메라 놀이에 푹 빠졌다. 사람은 무슨 유령처럼 찍혔다. 시간이 카메라에 담긴 듯 했다. 인물사진이야 어찌됐건 은하수 사진만 건지면 됐다.

몽골인과 여행객들이 초원의 밤에 캠프 파이어를 하며 노래를 주고 받고 있다.

옆에서 캠프 파이어 불꽃이 일었다. 여행객 10여 명과 몽골 현지인 5, 6명이 장작불 옆에서 서서 노래 경연을 벌인다. 우리 노래 한 소절 끝나면 몽골 노래 한 가락 뽑는 식이었다. 무슨 뜻인지는 모르지만 몽골의 구성진 가락이 칠흙 같은 초원과 별밤에 잘 어울렸다.

테를지의 숙박은 어김없이 게르다. 한 곳에 머무르지 않는 유목민의 전통이 몽골식 텐트를 만들어 냈다. 침대 4개가 벽쪽에 붙어있고 난로가 중간, 연통은 바깥으로 뻗어나간 게르는 몽골의 낭만, 그 자체였다. 초원에 와서 호텔을 찾는 멋대가리 없는 여행객은 없을 것이다.

후끈하게 불을 지핀 게르 안에서 마유주와 소주의 만남으로 하루를 마감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에는 몽골 청년이 난로에 땔감을 더 넣어주고 나갔다. ‘연기에 질식하면 어쩌나’하고 속으로 걱정하다 잠들었는데 멀쩡하게 다시 깨어났다.

몽골을 찾은 여행객들이 서낭당과 흡사한 어워를 돌고 있다.

테를지 오는 길 곳곳에 몽골의 샤머니즘이 숨어 있었다. 길가 작은 언덕에는 우리 서낭당에 해당하는 돌무더기 ‘어워’가 이방인을 반기고 있었다. 세 바퀴 돌고 소원을 비는 곳이다. 샤머니즘과 번지수가 전혀 다른 여행객들도 무작정 돌아본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 몽골에 가면 몽골의 풍습을 따라 하는 것은 기본이다.

어워 주변에는 기념품 좌판이 좍 깔려 있었다. 사람이 몰리는 곳에 시장이 서는 것은 실크로드의 법이다.

멀리서 몽골 초원 한가운데 전혀 몽골답지 않은 건축물이 눈에 들어왔다. 허허벌판에 하늘로 솟아 있는 것이 부조화의 극치였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그 건축물은 기마상이었고, 주인공은 몽골의 상징인 칭기즈칸이었다.

몽골 칭기즈칸 기마상 앞에서 독수리 한 마리와 사진을 찍고 있다. 보호 장구를 착용했는데도 뾰족한 발톱이 피부로 느껴졌다.

높이 40m, 무게 250톤의 스테인레스 스틸로 제작된 칭기즈칸 기마상은 초원의 등대와 같았다. 좁은 복도를 따라 올라가니 말머리 전망대가 나온다. 모두 셀카에 주변 풍경을 찍느라 바쁘다.

이곳 지명은 총징볼독, 칭기즈칸의 황금채찍이 발견된 이곳에 2008년 기마상이 세워졌다. 이곳의 명물은 독수리다. 3달러 주고 가장 커다란 독수리 한 마리를 오른 팔뚝에 앉혔다. 묵직한 것이 1분을 견디기 힘들 것 같았다. 야성을 잠재운 독수리를 팔뚝에 얹고 기마상을 배경으로 서 있노라니 칭기즈칸이 부럽지 않았다. 독수리가 날개를 퍼덕인다. 족히 2m가 넘는 날개짓에 몽골의 바람이 분다.

jhj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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