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드라 리 바트키

샌드라 바트키는 남성 권력의 ‘훈육적 규범’이 여성의 몸을 어떻게 억압해왔고, 억압하고 있는지 폭로한 페미니즘 철학자였다. 그는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이 미시권력이 작동하는 공간으로서의 남녀의 몸을 동일시함으로써 피억압자의 침묵을 영속화하는 데 일조하고 “서양정치이론의 풍토병인 성차별주의를 재생산해낸다”고 비판했다. foucaultnews.com

1960년대 2세대 페미니즘 운동의 약진은, 물론 시대의 순풍 덕이 컸지만, 그 바람보다 빨리 내달으며 닥치는 대로 할퀴어댄 ‘거친’ 페미니스트들이 있었던 덕이기도 했다. 사회주의 페미니스트 로절린 벅샌덜 편에서 대략 살펴본 그들 60년대 급진주의 페미니스트들은, 비록 미숙하고 이론적으로 조야하다는 평을 듣기도 했지만, 억눌린 분노로 겁 없이 전진하며 여성운동의 독자적인 공간을 개척했다. 그들은 미인대회를 성토했고, 세상을 향해 거들과 브래지어를 벗어 던지며 감각적 해방감을 만끽했다. 그들이 육체, 다시 말해 남성 지배사회가 대상화해 온 여성의 몸의 해방에 눈을 돌린 것도 60년대 말, 70년대 초였다.

흔히 70년대 페미니즘 운동의 실천적ㆍ이론적 의제로 기억되는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통찰은 그 과정에서, 다시 말해 저 거친 프락시스(Praxis)에서 걸러낸 테오리아(Theoria)라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정치ㆍ경제 구조와 제도의 바깥, 거시적인 거푸집 속 사적인 것들로 밀쳐진 것들, 즉 가정과 결혼, 성과 육체에서 차별 정치의 혐의를 찾았다. 사랑이라 여기던 것들이 실은 지배-피지배 관계이며 섹스조차 실은 남성의 여성 지배를 확인하는 정치행위일 뿐이라며 젠더의 권력관계를 폭로한 케이트 밀레트(Kate Millet, 1934~)의 ‘성의 정치학’(1970), 여성이 통제하는 성과 생식, 나아가 생물학적 재생산 단위로서의 가정의 철폐를 주장했던 슐라미스 파이어스톤(Shulamith Firestone, 1945~2012)의 ‘성의 변증법’(1970)이 그렇게 탄생했다.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1975), ‘성의 역사- 1권 지식의 의지’(1976)’등은 ‘여성성(Feminity)’을 더 깊이 들여다보게 한 계기였다. 권력이란 제도나 구조 같은 거시적‘실체’가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의 사적이고 특수한 ‘관계’로 파악해야 한다는 그의 미시권력이론. 가정 학교 공장 군대 회사 병원 등 모든 근대적 조직들이 쓸모 있고 고분고분한 구성원들을 재생산하기 위해 동원하는 다양한 규범들. 기준에 미달하거나 순응하지 않는 이들을 가두어 감시(판옵티콘)함으로써 스스로 그 규범을 내면화하게 하는 은밀한 규율과 지배. 미시권력의 작동 메커니즘들.

페미니스트들은 푸코가 면밀히 들여다보지 않았던 여성의 몸- 쓸모 있고 유순한 몸-과 그 주변에 천착했다. 그것은 보부아르가 ‘제2의 성’(1949)에서 했던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통찰의 의미를 확장하고 심화하는 일이기도 했다. 그들은 ‘여성이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새로운 답을 육체에서부터 찾고자 했다.

●여자다운 여자가 되는 건 기만
화장ㆍ다이어트ㆍ장신구 착용…
‘여자의 몸엔 결함’ 전제해
경제력 없는 이들엔 이중고통

샌드라 리 바트키(Sandra Lee Bartky)는 저 질문에 가장 먼저 해답을 제시한 페미니즘 철학자였다. 그는 70년대 말 논문 ‘ 푸코와 여성성, 가부장 권력의 근대화 Foucault, Feminity, and the Modernization of Patriarchal Power’에서 여성의 육체를 평가하는 사회적 규범들(norms)- 몸집, 몸매, 몸가짐, 장신구와 화장 등-이 어떻게 여성의 몸을 억압해왔는지 분석하며 보부아르의 말을 보란 듯이 가져와 “이상적인 여성성은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썼다. “푸코는 마치 몸이 하나인 것처럼, 즉 남성과 여성의 육체적 경험이 다르지 않은 것처럼, 그리고 남자와 여자가 근대적 삶의 특징적 제도와 동일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처럼 몸을 다룬다.(…) 여성적인 몸을 만들어내는 종속의 형식들을 간과한다는 것은 이와 같은 훈육을 당해온 사람들의 침묵과 무력함을 영속화하는 일이다. 그래서 권력을 비판하는 푸코의 목소리에서 해방적인 어조가 들려옴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보면 푸코의 분석은 서양 정치이론 전역의 풍토병이라 할 수 있는 이른바 성차별주의를 재생산해낸다.”(‘여성의 몸, 어떻게 읽을 것인가?’윤효녕 옮김, 한울)

현대 페미니즘의 텍스트들이 텍스트로서의 여성의 몸을 이야기할 때면 맨 먼저 들춰 보이곤 하는 저 논문의 저자 샌드라 바트키가 10월 17일 별세했다. 향년 81세.

65년 영화 ‘Girl Happy’의 한 장면. “I’m Evil”이란 표지판을 든 셸리 페이버레스의 당당함은 당시 여성들에게 큰 용기와 영감을 선사했을 것이다. 다만 그의 ‘모범적인 몸매’가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까지 페미니즘 진영 안팎의 진통과 성찰이 필요했을 것이다.

바트키는 1935년 5월 5일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치열 교정의였고, 어머니는 전업주부였다. 그는 일리노이대 어배너 샴페인에서 철학을 전공, 석ㆍ박사 학위를 받았다. 베티 프리던이 ‘여성의 신비’를 출간한 63년부터 모교에서 강의를 시작했고, 독일 본 대학과 뮌헨대학, UCLA 등을 거쳐 다 늦은 90년에야 일리노이대 교수가 됐고, 2003년 명예교수로 은퇴했다.(NYT) 그는 두 번 결혼했고, 아이는 없었다.

그의 사적인 삶은 거의 알려진 바 없다. 그의 부모는 80년 6월 일리노이주 하이랜드파크의 집 차고에서 “처형 방식으로” 피살 당했다. 경찰은 끝내 범인을 찾지 못했다. 95년 바트키가 결정적 제보자에게 5만 달러의 보상금을 걸기도 했다.(chicagotribune.com)

그는 마르크시즘과 푸코의 탈구조주의, 비판이론 등의 영향 하에서 페미니즘 철학을 시작했고, 페미니즘 이론 진영이 마르크스주의적 ‘계급’을 소홀히 들여다보는 데 불만을 품어온 급진주의자 중 한 명이었다. 75년 논문 ‘페미니스트 의식의 현상학 Toward a Phenomenology of Feminist Consciousness’에서 그는 여성 노동자들의 처우를 이야기하며 여성주의 의식과 계급이론의 접점을 찾기도 했다. 그는 “페미니스트가 아닌 여성 노동자들은 동일 노동과 차별 임금에 대해 별 문제의식을 못 느낄지 모르지만, 페미니스트라면 그 상황에서 착취의 정황과 투쟁의 계기를 발견한다. 페미니스트란 다른 사람들과 다른 것을 보는 이들이 아니라 같은 것을 다르게 보는 이들이다”라고 썼다.(NYT, 16.10.23)

저 이야기는, 여성주의 의식과 행동이 개인을 변화시키는 과정을 설명하면서 나온 거였다. 그는 의식의 첫 계기를 희생당함(victimization)의 각성이라 표현했다. 부당하게 대우받고 있다는 깨달음과 행동을 통해 그 억압의 구조를 허물었을 때 얻게 될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깨달음. 각성의 양상이 개인마다 다른 까닭은 푸코의 통찰처럼 “사회의 실재가 기만적”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실제로 일어나는 것과 보여지는 바의 차이, 그래서 ‘실재’가 무엇이라고 밝히지 못하는 무능의 각성이 페미니스트로 하여금 같은 것을 다르게 보도록 한다는 거였다. 바트키는 “페미니스트 의식은 편집증과도 얼마간 유사한데, 사회적 성차별의 총체와 그것이 작동하는 은밀하고도 다양한 양상들을 이해하고자 할 때 특히 그러하다”고 주장했다.

●일상에서 페미니즘 실천 요구
그간 깨닫지 못한 여성의 희생
일상에서 찾아내는 노력 필요
장난감 쇼핑에서 대화까지
여성다움 강박에서 벗어나야

그는 “페미니스트 의식은 실천, 즉 행동주의와 결합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 실천과 행동은 행진에 참여하거나 ‘수갑을 찬 저항자’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아이의 장난감이나 옷을 고르는 일부터, 물건을 쇼핑하는 일, ‘여자답게’같은 일상의 언어를 말하는 차원을 포괄하는 실천이다. 그는 페미니스트의 실천을 재규정함으로써 ‘실천의 위계 hierarchy of movement’를 극복하고자 했다. 그의 저런 관점은 예컨대 흑인 페미니스트 이론가 패트리샤 힐 콜린스의 주장, 즉 “행동주의에 대한 사회과학적 연구들은 전형적으로 공공적이고(public) 공식적이고(official), 눈에 보이는 정치적 행동에 초점을 맞추지만, 사회적 삶 속에서 비공식적이고 사적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행동과 실천도 동등하게 중요하다”는 입장으로 정돈됐다.(miamioh.edu/writingcontest2007)

바트키가 여성의 몸에서 발견한 훈육의 흔적들도 그의 표현대로 실제를 ‘다르게 본’ 사례 중 하나였다. 시대와 문화에 따라 여자의 몸에 다르게 가해진 문화적 강박과 선입견들. “오늘날 덩치 크고 힘세고 뚱뚱한 (여자의)몸은 혐오스럽게 다가온다. 요즘 유행하는 몸매는 탱탱하고 가슴이 작으며 엉덩이가 좁고 거의 수척할 정도로 날씬한 몸매다. 그것은 성인 여자라기보다 청소년기의 남자 아이나 사춘기에 갓 접어든 여자 아이에게 더 걸맞아 보이는 실루엣이다.”(위 책) 지방연소 운동법, 다이어트, 신경성 거식증, 부위별 살빼기…. 걸음걸이와 앉음새, 표정과 미소 등 몸짓과 자세에 따라 다니는 처신의 억압도 있다. 그는 마리안네 벡스(Marianne Wex)라는 독일 사진작가가 거리에서 촬영한 사진 속 남녀의 차이를 언급하며 이렇게 썼다. “사진 속 여자들은 스스로를 작고 좁게, 그리고 무해하게 만들려고 노력한다. 그들은 긴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또 공간을 적게 차지하고 있다.” 바트키는 “ (권력이 말하는) ‘풀어진 여자(loose women)’는 이와 같은 기준을 위반한다. 여자의 단정치 못함은 도덕성에서뿐만 아니라 말씨와 자유롭고 편한 행동방식에서도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피부는 부드럽고 탄력 있고 털이 없어야 하며, 나이 든 표시를 드러내지 않아야 하며, 표정에서는 성격도 개성도 감춰야 하지만 억제된 미소를 통해 성적 매력은 드러내야 하며…. 그의 고발은 끝이 없었다.

마리안네 벡스가 1970년대 독일 함부르크에서 촬영한 ‘Let’s Take Back Our Space: Female and Male Body Language’ 의 사진들. 40년 뒤인 근년의 사진들과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24.media.tumblr.com

“(저 모든) 훈육적 관행들은 훈련되고 종속된 몸. 즉 열등한 지위가 새겨진 몸을 만들어낸다. 여자의 얼굴은 화장되어야, 말하자면 변경되어야 하는 것이다. 여자의 몸도 마찬가지다.(…) 화장의 기술은 변장의 기술인데, 이는 여자의 얼굴이 결함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여성성이라는 훈육 기획은 일종의 ‘짜고 하는 게임’이다. 그것은 근본적이고 광범위한 몸의 변형을 요구하기 때문에 거기에 빠져든 모든 여자는 사실상 어느 정도 실패할 운명에 처한다.” 실패의 치욕과 절망은 경제적 능력이 없는 이들에게는 이중의 고통인데, 훈육의 많은 것들이 경제적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그는 ‘판옵티콘의 감시관’인 남성 권력의 가치 규범- 그는 그것을 ‘날씬함의 폭군 tyranny of slenderness’이라 불렀다-에 순응하는 이들 사이의 위계, 즉 피억압자로서의 여성들 사이의 계급ㆍ계층 문제를 넌지시 암시했다.

지금 우리에겐 너무나 익숙한 그의 저런 주장들은 페미니즘 운동과 함께, 영화나 드라마 광고 상품 분석 등을 통해, 또 일상의 체험을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환기돼 왔다. 뮤지션 앨리샤 키스(Alicia Keys)가 지난 5월 ‘No Make-up 선언’을 하고 2016 MTV 비디오 뮤직어워드 시상식장에 맨 얼굴로 등장한 것이나 최근 한국의 몇몇 작가들이 다리 벌린 여성 그림으로 내년 달력(‘내몸내꺼’ 프로젝트)을 만든 일 등이 그 예일 것이다.

바트키는 일리노이대 젠더ㆍ여성학 프로그램을 설립했고, 71년 미국 여성철학회(SWIP) 창립멤버로 활동했다. 그는 “만일 여성주의 철학이라는 게 있다면 그 시절 페미니스트이자 철학자였던 우리가 발명했을 것이다”라고 했다.(feministphilosophers.wordpress.com)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저 말을 전한 워싱턴대 여성학 교수 린다 니콜슨(Linda Nicholson)은 “바트키가 여성주의 철학을 발명했다는 말은 옳다. 그는 자신의 연구를 ‘자신에게 깃들인 악마의 퇴마사가 되어야 했던 철학자의 이야기’라고 말한 적이 있다”고 덧붙였다. 바트키는 자신의 작업이 주로 여성주의 의식화에 관련된 거였다며 “나는 ‘페미니스트 의식의 현상학’ 등을 통해 페미니스트가 아닌 이들, 아직 덜 된 이들에게 페미니스트가 무엇인지를 말하고 그들을 유혹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남성이 페미니즘 운동의 주체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다양한 이들의 논의를 담은 ‘남성 페미니스트’(톰 디그비 엮음, 김고연주 등 옮김, 또하나의문화)란 책 머리말을 바트키가 썼다. “나는 여전히 여성 해방운동은 여성이 주도해야 하며 여성이 책임져야 한다고 믿”지만 “강요된 여성 정체성과 매한가지로 강요된 남성 정체성도 모호함과 혼란으로 가득 차 고통스럽다는 것을 안다”며 남성들도 페미니즘 이론에 중요한 공헌을 해왔음을 인정했다. 그는 페미니즘에 동참하는 남성들이 그들 집단에서 겪는 조롱과 비난을 인종 차별에 맞서 싸운 백인들의 수난에 비유하며 “우리에게는 (아주 많은)‘성별 배신자’가 필요하다”고 썼다. 성별 배신자란 표현은 물론, ‘우리끼리의’ 위트였을 것이다.

결혼 제도를 공격하며 기혼 여성을 측은히 여기기까지 했던 60년대의 그들처럼, 바트키의 급진주의는 몸매를 가꾸고 화장에 공을 들이는 여성들을 공격하는 논리로도 활용됐다. 또 그것이 전적으로 바트키를 오해한 결과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푸코에 대한 그의 안티테제는 이후의 실천 속에서 비판적으로 수용돼왔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제 많은 여성들은 훈육적 시선을 만족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거울 앞의 자신을 기쁘게 하기 위해 화장을 한다. 바트키도 2002년, 적절히 여성적인 모습으로 우리 자신을 가꾸는 일이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긍정적인 경험이 될 수 있음을 인정했다고 한다.(NYT, 위 기사) 그 변화의 전과 후에 바트키(같은 이들)가 있었다.

말년의 그는 인종과 계급, 특히 저개발국가의 여성성 연구에 몰두했고, 다수의 논문과 에세이, ‘여성성과 지배: 억압의 현상학’(1990), ‘공감과 연대’(2002) 등의 책을 썼다.

최윤필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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