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라이더들이 엄청나게 많아졌다. 여전히 자전거라는 취미는 남초의 영역이긴 하지만, 여성 유입이 확연히 늘어난 게 사실이다. 특히 로드바이크 장르에서 여성 라이더의 증가는 상전벽해 수준이다. 유독 한국만 그럴까? 아니다. 전세계적 트렌드다. 다른 통계를 살펴볼 것도 없이 글로벌 자전거 기업들이 내놓는 상품군만 봐도 여실히 증명된다. 최근 수년 사이 스페셜라이즈드, 스캇, 자이언트 등의 유명 브랜드에서 여성 지오메트리를 표방한 여성용 로드바이크들이 쏟아져 나왔다. (로드바이크는 라이더의 신체 사이즈에 따라 프레임의 크기가 달라지는데, 그 프레임의 형상을 흔히 '지오메트리'라 부른다.)

여성 사이클리스트의 실루엣

200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자전거는 (서구) 남성의 신체를 기준으로 제조됐다. 여성용 프레임을 따로 디자인하는 것은 당연히 더 많은 설비와 비용이 들어가게 된다. 그럼에도 기업들이 여성용 자전거를 제조해 시장에 내놓기 시작했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여성 라이더를 주요 고객으로 설정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아무튼 이런 흐름에서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로드바이크에 유입된 여성들은 산악자전거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젊은 세대가 많았다. 그 경향은 다시 남성의 신규 유입을 불러왔다. 동호회도 활성화되었다. 그에 따라 이 영역에서 과거에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강도와 밀도로 성적 긴장(sexual tension)이 높아지게 된다.

소위 ‘로드여신’ 논란은 이런 배경에서 나타난 사건이었다. 남탕이나 다름없던 영역에 갑자기 젊은 여성들이 들어오니, 남성 라이더들은 싫을 이유가 없었을 게다. 남성들은 외모가 출중한 여성 라이더를 향해 “로드여신”이라 칭찬하기 시작했고, 이 말은 순식간에 일종의 관용어로 등극한다. 하지만 몇몇 여성들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이 말에 대해 불편함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로드여신’이라는 말은 여성 라이더를 평등한 동료로 대하는 말이 아니라 외모로 대상화시키는 말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몇몇 남성들이 비아냥대는 댓글을 단다. 일테면 이런 식이다. “무슨 욕을 한 것도 아니고 칭찬을 하는 건데 왜 화를 내죠?” “누가 지보고 로드여신이래? 김칫국 드링킹 자제 좀 ㅋㅋㅋㅋ” “뭘 맨날 불편하대. 그럼 김연아도 피겨여왕이라 부르면 안되겠네?”

여신이 아니라 동료다.

비슷비슷한 설전이 자전거 커뮤니티마다 벌어지면서 피로감을 느낀 회원들이 대거 탈퇴하는 등 감정의 골이 깊어졌지만 딱히 어떤 기준이나 원칙이 생겨나진 않은 것처럼 보인다. 이런 갈등은 아마도 미소지니(misogyny)가 사회적 쟁점으로 부상한 요즘의 분위기와 무관하진 않을 것이다.

단도직입 말해보자면 ‘로드여신’이라는 말은 확실히 문제가 있다. 미소지니는 한국에서 보통 ‘여성혐오’로 번역되지만 혐오라는 의미로 딱 떨어지는 개념은 아니다. 여성을 낮추어보는 것만 아니라 숭배하는 현상까지 포함하기 때문이다. 과도한 여성 숭배는 남성 판타지의 투사에 불과하며, 여성을 그 자신의 삶으로부터 배제시킨다는 점에서 여성 비하와 본질상 다르지 않다. 여성비하든 여성숭배는 그것이 성적 대상화라는 점에서, 그리고 여성을 총체적 존재로 바라보지 않고 물신화시킨다는 점에서 동일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여성 사이클리스트의 전설 자니 롱고(1958~). 통산 프랑스 내셔널 챔피언 59회, 월드 챔피언 13회, 1996년 올림픽 로드 레이스 금메달.

또한 ‘로드여신’이라는 말은 ‘피겨여왕’이라는 말과도 뉘앙스가 다르다. 예를 들어 김연아 씨는 피겨 스케이팅이라는 스포츠에서 압도적인 실력과 성적을 보였기에 여왕으로 불렸지만, 자전거 동호회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로드여신’이라는 말이 사용되는 경우는 열에 아홉 외모를 칭찬할 때다. 만약 어떤 여성 라이더의 라이딩 실력이 아주 뛰어날 경우, 동호인들은 자전거 잘 타는 다른 남성 동호인과 똑같이 이름 앞에 접두어 ‘갓(god)’을 붙이거나 ‘굇수(괴수라는 뜻의 신조어)’로 불러왔다. 사실 ‘여신’ ‘여왕’ ‘여제’ ‘히로인’ 같은 말은 그 자체로 성별화하는 표현이어서 서구에서도 과거에 비해 잘 쓰지 않는 추세다. ‘여류작가’ 같은 표현이 한국사회에서 자취를 감추고 있는 것과 비슷한 흐름이다. 어쩌라는 거냐고? 남성을 향하건 여성을 향하건 성별화하는 표현, 외모와 관련된 표현을 쓰지 않으면 된다. 그런 말 안 쓴다고 동호회 분위기가 갑자기 칙칙해지거나 하지 않는다.

자니 롱고는 만 53세인 2011년까지 엘리트 선수로 활동했다.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로드바이크 라이딩에 여성들이 과거 어느 때보다 많이 참여하고, 자기 신체가 가진 잠재력을 마음껏 해방시키고 있다. ‘여자는 운동도 조신한 걸 해야 한다’ 운운하던 억압적인 과거를 떠올려보면, 정말이지 반기고 박수칠 일이다. 그러나 ‘로드여신’이라는 말은 적지 않은 여성들로 하여금 운동에 집중하기 어렵게 하는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동료 라이더이자 동료 시민으로서 우리는, 서로 존중하고 존중 받을 의무와 권리가 있다.

프리랜스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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