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북을 걷다(12) 남산 기슭 용산2가동

해방 후 이북 출신과 피란민 모여들어
아직 1980년대 모습 간직한 서민 동네
책방, 이국적 식당 등 새로운 문화 등장

서울 서대문구 홍제3동 일대를 지금도 문화촌이라고 부른다. 문화가 얼마나 풍성하길래 이런 이름이 붙었을까 궁금할 테지만 동네 사람들도 정확한 유래는 알지 못한다. 1950년대 말 인근 홍제천변 자갈밭을 정비해 마을을 이루고 반듯하게 집을 지어 박화목, 김관식 같은 문화예술인이 살았다는 게 문화촌으로 불린 이유라는데 당시의 생생한 이야기를 아는 이가 드물다.

북한산 기슭 진관외동에는 기자촌이 있었다. 이름처럼 기자들이 집단 거주하던 산중 동네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땅을 내줘 마을이 조성됐다니 요즘 같으면 기자들이 특혜를 받았다는 소리를 듣기 딱 좋다. 그때는 도심에서 너무 멀어 출퇴근이 불편했고 밤에 술이라도 한잔 마시면 귀가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지금은 이 일대가 은평뉴타운으로 변해 당시의 흔적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108하늘계단과 사람이 살지 않는 집

서울에서 ‘촌’을 이름으로 사용하는 또 다른 마을은 해방촌이다. 남산 기슭 용산2가동 일대가 바로 해방촌이다. 해방 후 내려온 이북 사람과 해외 귀국자 그리고 한국전쟁 피란민이 모여 만든 동네다. 처음에는 해방동이라 했고 지금은 용산2가동이 행정지명이지만 여전히 해방촌으로 더 많이 부른다.

해방촌으로 들어가는 데는 몇 갈래 길이 있다. 그 중 주민의 삶과 마을 이력을 보고 싶으면 용산중ㆍ고에서 올라가는 것이 좋다. 작은 로터리를 지나 오른쪽으로 꺾으면 정면으로 108하늘계단이 보인다. 계단이 108개라고 해서 그렇게 부르는데 해방촌의 상징과도 같다. 경사가 심하지 않고 계단 수가 많지 않아 오르는데 힘이 들지 않는다.

이 계단은 일제가 경성호국신사를 지으면서 참배 길로 만든 것이다. 일제는 남산신궁 등 신사를 남산에 세웠는데 그 중 전쟁에서 숨진 병사를 추도하기 위해 1943년 건립한 신사가 경성호국신사다. 그러나 지금 신사의 흔적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주민들 또한 신사가 어디 있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부지가 2만평을 넘었다는 기록으로 미뤄 계단 위 비교적 평평한 곳이 신사 구역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계단을 올라서면 비슷한 모양의 다세대 주택이 좌우로 있다. 거기서 오른쪽으로 꺾으면 사람이 살지 않는 작은 기와집 몇 채가 보인다. 지붕이 내려앉은 집도 있다. 소설가 이범선이 ‘오발탄’에서 썼듯 초창기 주민들은 미군 부대에서 나온 레이션 박스와 판자 등으로 손바닥만한 판잣집을 지어 살았다. 그런 집과 비교하면 기와집 폐가도 한때는 근사한 보금자리였을 것이다. 이 참에서 왔던 길을 돌아서면 서울 도심이 내려다 보인다. 하늘을 물들이며 태양이 기우는 저녁 무렵의 풍경이 특히 아름답다.

해방촌의 상징인 108하늘계단. 원래는 일제가 만든 신사로 가는 길이다. 지금은 계단만 남아 있을뿐 신사의 흔적이 없다.
108하늘계단을 아이와 엄마가 이야기를 나누며 내려가고 있다. /그림 4지붕이 내려앉고 있는 집. 해방촌에는 낡은 집이 많다.
해방촌에서 바라본 해질 무렵의 서울 도심. 멀리 고층건물이 보인다.
●사람으로 북적거리는 해방촌 오거리

남산이 손에 잡힐 듯 가까워질 무렵 갑자기 오거리가 나타난다. 경사가 급한 비탈 마을의 오거리지만 다섯 방향으로 오가는 차량 때문에 늘 북적거리고 활기차다. 어묵가게, 과일가게, 정육점, 빵집, 부동산 가게와 파출소 등 편의시설이 다 모여있는 해방촌의 번화가다. 마을버스 정류장 앞에서 할머니들이 안부를 물으며 반갑게 이야기하는 사이에 태권도복을 입은 꼬마들이 씩씩하게 거리를 가로지른다. 인근 보성여중ㆍ고 학생들이 웃음을 머금은 채 활보하는 동안 장 보러 온 아주머니와 가게 주인이 스스럼 없이 대화를 이어간다. 향우회, 축구회 등 친목 모임 간판도 많다. 마치 따뜻한 읍내 풍경을 옮겨온 것 같다.

해방촌은 원래 이북 사람이 많았지만 지금은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등 각지 출신이 두루 섞여 있다. 친목 모임은 출신지나 취미에 따라 만든 것이다. 한 주민은 “서울에서 마을 사람끼리 단체여행을 가장 많이 가는 동네가 바로 해방촌”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거리에는 외국인도 많다. 삼삼오오 수다를 떨며 걸어가거나 거리 음식을 사먹는 모습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 해방촌 주민 1만2,000여명 중 1,000명 정도가 외국 사람이다. 특이한 것은 나이지리아 출신이 많다는 점이다. 누구는 주한 나이지리아 대사관이 근처에 있어 그렇다고 하지만 동빙고동에 있는 대사관을 썩 가깝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해방촌오거리. 다섯 방향으로 차가 오가기 때문에 길이 복잡하다.
해방촌오거리 마을버스 정류장에서 할머니들이 나란히 앉아 이야기하고 있다.
해방촌 신흥시장 앞을 지나가는 외국인들. 해방촌에는 외국인이 많다.
●카페 들어서고 젊은이 찾아오는 신흥시장

오거리의 한쪽에는 신흥시장이 있다. 빛이 적어 컴컴하고 허름하지만 과거에는 제법 번창했던 시장이다. 마을에서 50년 가까이 살았다는 한 주민은 “80년대까지도 이태원과 후암동사람들이 장보러 이곳까지 왔다”고 했다. 지금처럼 시장이 쇠락한 것은 대형 마트의 등장과 니트 산업의 침체 때문이라고 한다. 주민들이 ‘요꼬’라고 부르는 니트 짜기 즉 편직은 해방촌의 주력 산업이었다. 초창기에 막노동과 불법 담배 제조로 생계를 잇던 주민들은 60년대 들어 ‘요꼬’를 시작했다. 큰 돈이 들지 않는데다 노동집약산업이어서 해볼 만했다. 직원 서너 명을 두고 가정집에서 수공업 형태로 직물을 짰다. 한때는 주민의 70%가 이 일을 했고 전국 유통 물량의 30%를 공급했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여느 의류 산업이 다 그렇듯 이곳의 편직 또한 중국에 밀렸고 그 때문에 마을의 활기도 줄어들었다. 그래도 편직 일을 하는 가내 공장이 40여 군데 남아 있어 마을에서 기계 도는 소리를 듣는 것이 어렵지는 않다.

어둑하고 낡은 신흥시장에 요즘 큰 변화가 몰아치고 있다. 카페와 공방, 향초 가게 등을 내는 젊은이가 늘고 있는 것이다. 시장 초입의 작은 공연 무대는 이 시장이 어떻게 변할지를 짐작하게 한다. 서울시는 신흥시장을 도시재생 활성화 지역으로 정하고 아트 마켓으로 특성화할 생각이다. 주민들 또한 도시재생주민협의체를 구성해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시장 한쪽에 방송인 노홍철씨가 차린 ‘철든 책방’이라는 서점이 있다. 스케줄이 없는 날 노씨가 직접 손님을 맞는다. 가수 성시경씨와 정엽씨도 해방촌을 즐겨 찾는데 특히 정엽씨는 가게를 내 자신의 근거지로 삼을 생각이란다.

신흥시장 안의 어둑한 모습. 빛이 많이 들지 않아 컴컴하다.서울시는 시장을 멋진 아트마켓으로 바꿀 계획이다.
0신흥시장에 있는 4평학교. 작은 문화공간이다.
1신흥시장 안에 들어선 카페. 분위기가 은은하다.
노홍철씨가 차린 철든책방. 아쉽게도 문이 닫혀 있다.
신흥시장 부근의 공동주택. 뒤로 남산이 보인다.
신흥시장 근처의 편직 공장. 한때는 마을 사람 대부분이 이 일을 했다.
●외국인도 많이 찾는 이국적인 거리

오거리에서 녹사평대로 쪽으로 가면 분위기가 갑자기 달라진다. 피자, 토스트, 스테이크, 버거 등을 먹을 수 있는 이국적인 음식점과 펍, 바가 이어진다. 간판도 외국어로 쓴 것이 많다. 온라인에는 요즘 해방촌 맛집 리스트가 돌아다닌다. 녹사평대로 건너편 경리단길처럼 젊은이들의 핫 플레이스가 됐다. 같은 해방촌이지만 108하늘계단이나 오거리 쪽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길에서 ‘ㅊ’이라는 특이한 이름의 서점을 만났다. 카페를 겸하는 서점으로 디자인 관련 책이 많다. 그러고 보니 철든책방과 ‘ㅊ’ 말고도 서점이 여럿이다. 가파른 골목에 있는 고요서사는 문학 도서를 주로 취급하지만 인문ㆍ사회ㆍ예술 책도 많다. 스토리지북앤필름은 책뿐 아니라 필름카메라, 소품 등도 갖추고 있다. 책을 많이 들인 대형 서점과 달리 이들 서점은 특정 장르의 도서를 중심으로 자신만의 개성을 강조한다. 요즘은 일부러 해방촌 동네 서점을 찾아오는 사람도 많다.

해방촌은 지금 두 얼굴을 하고 있다. 해방 이후 전국에서 몰려온 사람들이 함께 만든 원래의 해방촌에, 이국적 풍경의 새로운 해방촌 문화가 합쳐진다면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마을이 될 게 틀림없다.

해방촌의 피자집. 다른 나라 손님도 많이 찾기 때문에 마치 외국에 있는 음식점 같다.
해방촌에는 이국적인 음식점이 많다. 간판도 대개 외국어로 돼있다.
외국인이 많이 살기 때문에 주민에게 알리는 안내 글도 영어를 섞어 썼다.
동네의 작은 가게도 영어 간판을 달았다.
해방촌에 있는 서점 'ㅊ'. 디자인 관련 책이 많다.
해방촌의 서점 고요서사. 문학책을 주로 취급한다.

kh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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