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재우고 한숨 돌리려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나로서는 드문 일이라 살짝 긴장한 채 휴대전화 버튼을 눌렀다. 아들과 같은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의 엄마였다. 얘기인즉, 아이의 어린이집 등원을 좀 도와줄 수 없겠냐는 부탁이었다. 나보다 세 살 많은 그 이웃집 언니는 최근에 둘째를 낳았다. 몸조리도 끝나지 않은 데다 갓 태어난 아이가 찬바람을 맞아야 해서 몸도 마음도 불편한 모양이었다. 나는 솔직히 반감이 들었다. 피곤한 아침, 내 아이를 준비시켜 등원하는 일도 힘들다. 더구나 아들은 어린이집까지 얌전히 걸어가는 법이 없다. 안 간다고 떼도 쓰고 문방구에 들러서 뭘 사달라고 조르기도 하며 때로는 내 손을 뿌리치고 찻길로 달려나간다. 그런 아이를 하나도 아닌 둘을 데려간다니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팠다. 차마 대놓고 거절하지는 못하겠고 일단 알겠다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내일 적당히 둘러댈 말을 찾아 기분 나쁘지 않게 거절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자려고 눕자 문득 얼마 전 내 상황이 떠올랐다. 다니려던 학원 수업시간이 이른 아침이라 아이를 등원시키고 가기에는 시간이 모자랐다. 누군가가 딱 30분만 아이를 봐주고 어린이집에 등원시켜주면 좋겠는데 부탁할 사람이 없었다. 친정엄마는 얼마 전 멀리 이사를 했고 시간제 육아 도우미는 기본 이용시간이 2시간인 데다 매번 오는 분이 달라져서 예민한 아들이 잘 받아들일지 걱정이었다. 그때 떠올랐던 사람이 바로 그 이웃집 언니였다. 오가며 얼굴을 익힌 덕에 아들도 거부감이 없을 터였다. 일주일에 한 번, 딱 30분만 부탁하면 될 일이니 언니에게 말해볼까 고민했다.

그때 나는 용기를 내지 못했다. 말 한마디 건네 보는 일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언니가 날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도 됐고 가까운 사이도 아닌데 부탁부터 하기가 영 민망했다. 그래서 발만 동동거렸던 기억이 있다. 다행히 내 경우에는 예상치 못한 학원 측의 도움으로 수업을 들을 수 있게 되었지만 당시의 일을 떠올리니 언니의 상황과 심정이 이해가 갔다. 고민 끝에 용기 내서 한 말일 텐데 매몰차게 거절할 생각만 하다니 나도 참 못됐다.

즐겨봤던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선우 엄마는 아르바이트하러 갈 때마다 둘째 딸 진주를 이웃집 엄마들에게 맡긴다. 이웃집 엄마들은 거리낌 없이 진주를 맡아주고 선우 엄마도 스스럼없이 부탁한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참 부러웠다. 내가 태어나고 자랐던 80년대에만 해도 저런 일이 가능했구나 싶었다. 당시 이웃들은 든든한 육아 지원군이었다. 골목길에서 함께 자란 아이들은 이웃집을 제집처럼 드나들며 밥과 시간을 공유했다. 온 마을이 함께 아이를 키운 셈이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그렇지 않다. 비용을 들이지 않고 누군가에게 내 아이를 맡기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엄마들은 대개 문 닫힌 집 안에서 자신의 아이를 홀로 돌본다. 물론 이웃들 간의 소통이 전혀 없지는 않지만 같이 시간을 보낼지언정 온전히 내 아이를 남의 손에 맡기는 경우는 거의 없다. 서로 간에는 보이지 않는 낮은 벽이 존재한다. 든든한 육아 지원군이 사라진 세상. 어쩐지 서글펐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일찌감치 언니에게 전화를 걸어 등원을 도와주겠노라고 말했다. 언니는 그제야 그동안의 마음고생을 털어놓으며 진심으로 고마워한다. 며칠 두 아이를 등원시켜보니 조금 힘들기는 해도 그렇게 겁낼 일도 아니었다. 어디선가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자신이 행복하려면 지역 사회를 위해 봉사해야 한다고. 아이의 등원을 도와주는 일이 봉사까지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지역 사회의 누군가에게 작은 힘이 됐으리라 생각하니 뿌듯했다. 1980년대로 돌아갈 수야 없겠지만 요즘 엄마들의 닫힌 마음을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열 수 있을까. 다른 사람의 아이를 돌봐주는 일, 그리고 내 아이를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는 일이 지금보다 조금 수월한 세상이 되면 좋으련만.

이정미 전업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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