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청량리588, 미아리 텍사스와 함께 서울의 3대 성매매 업소 집결지였던 천호동 텍사스. 이제 47곳의 가게만 남아있다.

어찌할 줄 모르고 쭈뼛거리며 서 있던 제게 먼저 말을 걸어온 쪽은 이모였습니다. “일 구해?” 이모의 질문에 불쑥 “네” 하는 대답이 튀어나왔습니다. “들어와. 커피 줄까? 우리 믹스밖에 없는데 괜찮지?” 커피를 받아 들고 생경한 풍경을 둘러봤습니다. 낡은 스툴의자 몇 개와 붉은 조명, 벽면 전체를 차지한 거울에 생활감이 묻어나는 식기들. 그리고 속옷이 다 들여다 보일 만큼 짧은 치마에 다리를 꼬고 저를 위아래로 훑어보던 30대 여성.

2개월 차 견습기자이던 제가 잔뜩 움츠린 어깨를 하고 앉아있는 곳은 천호동 텍사스 안의 한 가게, 서울에 얼마 남지 않은 집창촌이었습니다. 천호동 텍사스는 한때 청량리588, 미아리 텍사스와 함께 서울의 3대 성매매 업소 집결지로 성업했습니다. 그러나 2004년 특별법 이후 성매매는 일명 ‘오피’(성매매 장소로 쓰이는 오피스텔)처럼 보이지 않는 곳으로 숨어들어갔고 이후 호객행위를 하며 손님을 끌던 곳들은 하나 둘 사라졌습니다. 아니 사라진 줄 알았습니다. 강동경찰서 라인을 담당하고 있던 저는 아직도 천호동 텍사스에 가게 47곳이 영업 중이라는 것과 그곳이 곧 대규모 주상복합단지로 바뀔 것이라는 얘기를 우연히 듣게 됐습니다. 너무 많이 다뤄졌던 주제라 기사화할 수 있을지 확신은 없었지만 그 풍경을 눈으로 목격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선배에게 무작정 “가겠습니다”라고 보고한 뒤 그곳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청소년접근금지구역’이라는 플래카드 앞에 서자 겁이 났습니다. 청소년이 아닌데도 ‘접근금지’라는 위협에 그냥 발길을 돌리고 싶었습니다. 저를 향해 노골적인 시선들이 쏟아지는데, 막상 저는 그들을 똑바로 쳐다볼 수도 없었습니다. 말은커녕 눈도 못 마주치고 돌아가겠구나 하는 생각에 기운이 쑥 빠지던 때, “일 구해?” 라는 목소리가 저를 잡아 끌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거짓말이 시작됐습니다.

“저는 22살의 미연이. 고향은 전남 순천이고 서울에는 일을 구하러 어제 상경했습니다. 부모님은 안계시고 저는 돈을 벌고 싶습니다.” 거짓말들이 입에서 술술 새어 나왔습니다. 경계를 푼 이모가 제게 선뜻 장부를 펼쳐 보여줍니다.

“미연아 이것 봐. 여기선 네가 열심히만 하면 돈 벌 수 있어. 15분에 8만원, 30분에 12만원 40분에 16만원이야. 오빠가 단골이 되면 너랑 껴안고만 있는데 돈 줄 수도 있어. 이모 무리해서 일 안 시켜. 괜히 무리했다 상처 나면 장사 오래 못해. 여기 있는 언니들 다 10년 넘게 일했어. 다 너처럼 집에 돈 보내주려고 일 시작한 언니들이야. 그래서 하루에 10만 원짜리 적금 꼭 들라고 이모가 그래. 얼른 돈 벌어서 여기 떠야지.”

이모는 몇 번이나 제 등을 쓸어 내렸습니다. 저는 이미 기자라고 털어놓을 타이밍을 놓쳤고 그저 고개를 주억거리며 종이컵 입구를 물어뜯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곳 곧 철거될 거라는 얘기가 있던데요?”겨우 꺼낸 질문에는 “그거? 어차피 한참 걸려. 우린 걱정 안해”라는 태연한 대답이 돌아왔을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이모 얘기를 듣고 있는데 유리창 너머로 남자들 몇몇이 안쪽을 힐끔거렸습니다. 저는 무거워진 엉덩이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낯선 숫자들의 조합으로 이뤄진 가짜 전화번호를 남기고.

집창촌 입구까지 배웅 나온 이모가 제 손을 꼭 잡으며 말합니다. “미연아, 꼭 와. 기다릴게.” 걸어 나오는데 쇠락한 풍경 속에 서 있을 이모가 제 뒷모습을 오랫동안 응시하고 있다는 것이 등으로 느껴졌습니다.

집창촌으로 향했던 건 일종의 치기였을지 모릅니다. 기자 초년생이라면 이런 곳도 가봐야지 하는 생각. 그런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기자라는 이름을 달고 내밀한 이야기를 이끌어낼 자신이 없어 결국 미연이라는 이름을 빌려야만 했습니다. 게다가 어떤 자극적인 이야기를 기대하고 간 곳에는, 그냥 생활과 사람들이 전부였습니다. 함께 밥을 지어 먹고 때가 되면 일을 하는 삶. ‘성매매 하는 여성들은 이럴 것이다’라고 생각했던 선입견은 사라졌고 얘기를 나눌수록 취재원들은 제게 솔직한데 나만 솔직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부끄러워졌습니다.

지금껏 만나왔고 앞으로도 만나게 될 무수한 취재원들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아마도 제 짧은 삶의 경험으로는 전부 재단하기 힘든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들에게 말을 걸고 이야기를 듣는 일이 언젠가는 능숙해질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상황에 따라서는 거짓말이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적어도 기자가 된 이상 그들의 이야기에서 완전히 무관하게 살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한동안은 자주 쭈뼛거리고 망설이게 되겠지만, ‘듣기 위해’기자가 된 이상 계속해서 말 걸 용기를 가져야 하고, 그 과정에서 능숙하되 진심이고자 하는 노력도 게을리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때는 미처 말하지 못한 이름을 이제야 털어놓습니다. 이모, 제 이름은 미연이가 아니고 한국일보 견습기자 한소범이에요.

글ㆍ사진=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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