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렌디의 딜레마 <3>아빠와 남편 사이

‘성폭행’ 단어 설명하는 아내에게

“호기심만 더 생긴다, 그만해라”

아이방에 혼자 재우기도 이견

“독립성 키워야” “정서 안정 우선”

조율 없던 생각들 부딪치기 일쑤

프렌디되려는 아빠 의욕 꺾기도

출산 전에 양육 방식 소통하고

아이 앞에선 절대 다투지 말아야

회사원 최진욱(40ㆍ가명)씨는 최근 초등학교 3학년 아들 앞에서 아내와 말다툼을 했다. 방송 뉴스에서 ‘성폭행’이란 단어를 접하고 뜻을 궁금해하는 아이에게 아내가 지나치게 상세한 설명을 한다 싶어 “그만하라”고 제지한 탓이다. “요즘 애들이 얼마나 빨리 이성친구를 사귀는지 아느냐”며 미리 몸가짐을 주의시켜야 한다는 중학교 교사 아내의 주장에, “알게 되면 호기심이 생기게 마련”이라고 맞서던 그는 아이의 불안한 표정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최씨는 “남자 아이가 커가면서 겪게 될 일들은 아무래도 같은 남자인 아빠가 더 잘 알지 않겠나”라며 “아내가 성교육을 너무 교과서적으로 이해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친구(Friend) 같은 아빠(Daddy) ‘프렌디’를 표방하며 육아에 적극 참여하려는 젊은 아빠 가운데 양육 철학이나 방식을 놓고 배우자와 마찰을 빚는 이들이 적지 않다. 자녀 양육의 짝꿍인 아내가 번번이 자신을 지지하지 않거나 아예 육아 동참을 가로막는 장벽처럼 느껴질 때, 아빠는 자신감을 잃고 심지어 양육 책임을 회피하는 핑곗거리로 삼기도 한다. 하지만 좌절하면 곤란하다. 오늘날 ‘육아빠(육아하는 아빠)’들의 고충은 자신의 심신에 스민 가부장적 관습에서 벗어나 시대가 요구하는 신(新)인류, 프렌디로 거듭나기 위한 산통일 테니 말이다.

수면 위로 부상한 부부 양육갈등

예전이라고 해서 양육을 둘러싼 부부 갈등이 없진 않았지만, 지금의 20~40대 세대에 와서 양육 문제가 부부 간 중대하고 보편적인 현안으로 격상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임영주 신구대 유아교육과 교수는 “부모가 바깥일과 집안일이라는 역할 구분이 있던 시대에서 여성의 사회 진출, 저출산 등으로 공동 양육이 정당성을 얻은 시대로 빠르게 전환하면서 자녀 육아ㆍ교육 문제가 부부 공동 관심사로 급부상했다”고 진단했다.

학령기 자녀 교육 문제로 본격화하던 양육 갈등은 이제 보다 이른 시기에 시작된다. 시민단체에서 일하는 김승환(32)씨는 딸이 태어난 지 석 달 만에 아내와 부딪쳤다. “아이를 혼자 재우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 내 의견이었다. 자다가 울더라도 안아주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독립성을 기르고 엄마도 쉴 수 있다고 봤다. 하지만 아내는 아이의 요구를 채워줘야 정서적으로 안정된다며 반대했다.” 교육공무원 전명훈(42)씨 부부는 3세 아들의 생활교육 방식을 두고 의견 차가 있다.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사람으로 기르고 싶어 아이가 잘못하면 엄하게 혼을 내는 편이다. 반면 아내는 보다 허용적으로 키우자는 입장이라 종종 부딪친다.”

교육 문제는 여전히 첨예한 대립 점이다. 네 자녀를 둔 회사원 김형준(43)씨 부부는 큰 딸이 중학교에 진학한 2년 전부터 자녀 사교육 문제로 종종 의견 차이를 빚는다. “아내는 큰 딸이 중학교 입학하기 전부터 영어학원을 보내자고 했다. 아이가 영어를 못하는 것도 아닌데 벌써부터 보내야 하느냐고 반대했다. 외벌이라 월 30만원이 넘는 학원비가 부담스럽기도 했다. 아내는 ‘기초를 잘 잡아야 영어 공부에 흥미를 갖는다’고 주장했고 결국 내가 뜻을 꺾었다.”

게티이미지뱅크
조율 안된 이견은 가족에 상처

서로 다른 성장 배경과 가치관을 지닌 부부가 함께 자녀를 키우는 과정에서 생각이 다른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나아가 남편의 양육 참여는 아내의 양육 스트레스와 부부 갈등을 줄여주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 다수의 연구 결과다. 임영주 교수는 “지금의 양육 갈등은 젊은 아빠들이 이전에 없던 역할 모델을 만들어가는 과도기적 상황이라고도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관건은 부부의 차이가 소모적 갈등으로 비화하지 않고 양육에 보탬이 될 수 있게끔 조율될 수 있는가 여부다. 실제 출산 전부터 배우자의 양육관에 대한 이해를 넓혀온 부부는 생산적으로 이견을 조율할 수 있는 역량을 보인다. 일하는 아내를 도와 3년 동안 전업으로 육아를 한 경험이 있는 전명훈씨는 “나는 군인 아버지 밑에서 엄하게 컸고 아내는 자율적인 집안에서 성장한 터라 양육 방식에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부부가 사전에 대화하고 소통한다면 충분히 조율해 나갈 수 있는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내와의 갈등이 종종 프렌디가 되고자 하는 아빠의 의욕을 꺾는 것도 현실이다. 최진욱씨는 “아내가 자기 양육 방식을 고집할 때마다 아들과 나 사이가 아내에 의해 가로막히는 듯한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특히 자녀의 젖먹이 시절 육아 부담이 컸던 아내는 뒤늦게 육아에 참여하려는 남편에게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성아 자람가족학교 대표는 “육아 초기엔 엄마에 대한 의존도가 높기 마련인데, 이 시기 남편의 소홀함에 서운함을 느낀 아내가 ‘그 동안 당신이 한 게 뭐 있느냐’며 비난하고, 남편은 풀이 죽어 아내와 자녀 주변을 서성대는 일이 생기기 쉽다”고 말했다. 조창현 나우미가족문화연구원 상담소장은 “부모가 자녀 앞에서 양육 방식을 두고 다투면 아이들은 불안하고 위축돼서 소심하게 행동하기 쉽다”고 지적했다.

이훈성 기자 hs0213@hankookilo.com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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