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르ㆍK재단 기금조성 등 의혹투성이
야당도 반사이익에만 기대어선 안 돼
국민이 행동으로 보여야 바로잡힐 것

지난 4·13 총선 결과는 전문가들과 언론의 예상과는 크게 달랐다. 표현을 안 하고 말을 안 한다고 해서, 국민들이 억지 주장에 현혹되거나 관성적으로 투표할 것이라고 정치권이 쉽게 재단해서는 안 된다는 게 4·13 총선의 교훈이 아닐까?

그런데 총선이 끝난 지 6개월도 안 되었는데, ‘국민을 우습게 여기는’ 정치권의 구태는 다시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 누가 봐도 도를 넘은 주장으로 국회를 공전시켰던 집권여당의 국감 거부는 여당이 여전히 국민을 우습게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닌지 하는 씁쓸함을 남긴다.

이뿐만이 아니다. 최근 불거진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의 기금조성과 설립 인허가 과정이 상식적이라고 믿는 국민은 거의 없을 것이다. 또한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과 관련된 의혹이 단지 의혹에 그치리라고 생각하는 국민도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데 국민의 상식을 뒤집을 수 있다는 청와대와 여당의 대단한 각오는 정말로 ‘국민을 우습게 여기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실패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하는 개인이나 집단은 더 큰 실패를 할 수밖에 없다.

‘국민을 우습게 여기는’ 잘못된 행태는 불행히도 청와대와 여당의 전유물은 아닌 것 같다. 정부 고위 관료, 그리고 재벌 총수일가 역시 국민을 우습게 여기지 않고서는 저럴 수 있을까 싶은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국민 세금 수십조 원이 투입될 수 있는 해운 및 조선 산업의 정부주도 구조조정에 대한 국회 청문회는 빈 손으로 끝났다. 국정조사 때 추가적으로 의미 있는 결과가 나올지도 의문이다. 핵심 증인 불출석과 주요 자료 제출 거부 등으로 급한 불을 껐다고 정부는 자평할지 몰라도, 이는 국민을 우습게 여기는 태도로 결국 관료에 대한 국민 불신이라는 더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연례행사처럼 터져 나오는 재벌가의 비리 역시 이제 진절머리가 날 지경이다. 신동주·신동빈 형제의 경영권 분쟁에서 시작된 롯데 문제는 거액의 비자금, 정관계 로비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았다. 그런데 역시 용두사미였다. 검찰이 배임과 횡령 그리고 조세포탈 등의 혐의로 롯데 총수일가를 불구속 기소하는 것으로 사건은 마무리될 것 같다. 너무나 불투명해서 총수일가의 범죄 행위조차 측근의 입을 빌리지 않고서는 기소도 할 수 없는 재벌구조를 방치한 채, 또 무슨 말들로 이번 재벌 비리도 덮고 가려고 할지 모르겠다.

정부와 여당의 실책으로 생기는 반사이익에 기대고 요란한 말의 성찬으로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고 야당과 야권 지도자들이 생각하고 있다면, 이 역시 국민을 우습게 여기고 있는 것이다. 구체적이고 일관성 있는 정책 제시 없이, 정치공학적 계산에 기반해 당위론적 주장들이나 나열한다면, 야당 역시 국민의 지지를 받기 어렵다.

다시 말하자면, 재벌 문제, 구조조정 문제,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문제 등의 현안에 대해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정책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만, 국민들이 야당을 수권정당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본질적인 입법 과제는 차일피일 미루고, 그다지 효과가 있을 법하지 않은 정책만 보여 주기 식으로 내놓으면서 국회 선진화법 운운하는 자기검열은 비열하기도 하지만 국민을 우습게 여기는 것이기도 하다.

내년의 대선을 앞두고, 많은 잠룡들이 최근 잇따라 출사표를 던지고 있다. ‘무엇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엇을 하기 위해서’라는 다짐이 국민을 우롱하는 감언이설이 되지 않아야 한다. ‘무엇을 위한’ 비전과 구체적 실행계획을 제시하고, ‘무엇을 위해서’ 자기희생도 감수할 수 있다는 진정성을 보여 줄 수 있어야만 한다.

국민도 더 이상 우습게 보이지 않기 위해서는, 행동으로 보여 줘야 한다. 내년 대선은 한국 사회와 경제에 중대한 분수령이 될 것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는 국민이 행동할 때만 지켜 낼 수 있는 가치이다.

박상인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 시장과 정부 연구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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