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타는 사람들 사이엔 모종의 연대의식, 더 거창하게 말하면 증여와 환대의 정신 같은 게 있다. 이 문장을 쓴 뒤 살짝 망설였다. ‘있었다’라고 과거형으로 써야 맞는 걸까? 하지만 그대로 쓰기로 했다. 여전히 그렇다고 믿고 싶어서다. 자전거 타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타이어에 펑크가 난 걸 보면 가던 길을 멈추고 도와준다든가 타인에게 선뜻 물이나 먹을 것을 건네기도 한다. 때로 위협운전 하는 자동차를 향해 함께 욕을 퍼붓기도 한다. 자전거인은 자연스럽게 뭉친다. 그래서 이들의 생태는 약자끼리 속이고 물어뜯는 인간세계보다 동물세계에 더 가까워 보인다. 육식동물에 맞서 스크럼을 짜는 초식동물처럼, 자전거인은 도로를 전횡하는 자동차에 맞서 서로의 안위를 걱정하고 돌본다. 나는 이 ‘약자들의 연대’를 도로에서 목격할 때마다 추억을 떠올리며 실없이 웃는다. 그랬다. 그때 우린 서로를 ‘발바리’라 불렀다.

발바리 떼잔차질

발바리는 ‘두 발과 두 바퀴로 다니는 떼거리’의 약자다. 발바리는 자전거 동호회가 아니다. 회장도 없고 총무도 없다. 매달 셋째 토요일, 광화문에 모여 자전거를 탄다. 단지 그뿐이다. 한적한 교외로 나가지 않고 굳이 주말 도심을 달리는 이유는, 이 ‘발바리 떼잔차질’이 육체적 운동(exercise/sports)일 뿐 아니라 사회적 운동(movement)이기 때문이다. 교통의 모든 인프라가 오직 자동차를 중심으로 짜인 사회는 필연적으로 환경과 인간 자신을 파괴한다. 발바리 떼잔차질은 이 상황에 항의하는 시민 직접행동이었다. 2001년 봄 8명으로 시작된 이 모임은 해가 갈수록 커져서 2000년대 중반이 되면 여러 매체가 소개할 정도로 거대한 행사가 된다. 그 무렵은 마침 미니벨로(바퀴가 작은 자전거) 붐이 일면서 젊은 세대 자전거 수요가 폭발하던 때이기도 했다. “자전거면 충분하다”“Share the road!(도로공유)” 같은 문구가 적힌 깃발을 여기저기 꽂고, 그들은 자동차가 지배하는 도로를 자전거로 마음껏 내달렸다. 사람들은 그렇게 자전거를 함께 타면서, 한국사회의 공간이 얼마나 폭력적이며 반인간적으로 만들어져 있는지를 새삼 절감했고 이를 어떻게 바꿔나갈지를 토론했다.

‘발바리 떼잔차질’을 어떤 이들은 ‘한국판 크리티컬 매스(critical mass)’라고도 한다. 크리티컬 매스는 물리학 용어로 임계질량이라고 번역된다. ‘원자핵을 중성자와 충돌시켜 분열시킨 뒤, 이로 인해 다시 생성된 중성자로 핵분열 연쇄반응을 유지할 수 있는 한계의 최소 질량’을 뜻한다고 한다. 써놓고도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다. 어쨌든 원래 물리학 용어라는 정도만 알면 될 것 같다. 크리티컬 매스에는 그러나 잘 알려진 다른 의미가 있다. 도로를 점유하고 집단으로 자전거를 타는 행사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는 것이다.

밴쿠버의 크리티컬 매스 행사

일반적으로는 1992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된 행사를 시초로 보는데, 이들이 자신들의 행동을 크리티컬 매스라고 명명한 것은 자전거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 ‘스코처의 귀환 Return of the Scorcher’를 본 직후인 두 번째 행사부터였다. ‘스코처’는 1890년대, 그러니까 아직 자동차가 보편화되기 이전인 19세기 말 유럽 사람들이 도로를 누비는 자전거가 땅을 그슬릴(scorch) 정도로 빠르다고 한 것에서 유래한, 자전거의 별명이다. 이 영화에는 중국의 신호등 없는 사거리에서 자동차와 자전거 간의 암묵적 룰이 작동하는 장면이 나온다. 자전거들은 따로따로 교차로를 가로지르지 못한다. 자동차가 무서운 속도로 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둘씩 모여 집단을 이루다가 어느 순간, 자전거 무리는 자동차를 멈춰 세우고 길을 건너간다. 그 마술적 순간을 만들어내는 집단을 영화는 ‘크리티컬 매스’라고 명명한다. 여기서 ‘매스’는 물리학적 질량보다는 결정적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무리-대중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샌프란시스코의 크리티컬 매스는 빠르게 확산되어 전세계 300여개 이상의 도시들에서 결성됐다. 한편 크리티컬 매스의 급진성에 반대하는 온건한 형태의 자전거 행사가 ‘크리티컬 매너(critical manner)’라는 이름으로 열리기도 한다. 위키피디아 영문판에는 아시아 지역의 크리티컬 매스로 타이페이 한 곳만 기재되어 있지만, 2001년부터 16년째 열리고 있는 한국의 발바리 떼잔차질 역시 크리티컬 매스의 하나임은 분명하다.

“도로, 같이 씁시다”

여전히 자전거는 도로의 약자다. 지금도 자전거인은 자동차에 생명을 위협당하고 있다. 그리고 발바리들은 예전만큼 모이지 않는다. 한국의 자전거인들은 2016년 현재, 변화를 만들어내는 중대한 집단(크리티컬 매스)으로 행동하기보다 각자도생에 나선 것처럼 보인다. 어떤 발바리는 뺑소니 사고를 당한 뒤 자전거를 접었다고 하고 또 다른 발바리는 고화질 블랙박스 카메라를 구입해 자전거 앞뒤에 달았다고 한다. 아무쪼록, 모두 살아남으시라. 나도 있는 힘껏 그리할 것이다. 언젠가 또 다른 이름의 크리티컬 매스로 만날 거라 믿으며.

프리랜스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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