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deR's Tour] 하와이 빅아일랜드 라이딩 체험기

파란 바다… 무채색 사바나… 녹색 우림…
250km 자전거길에서 총천연색을 만나다
걷는 속도보다 빠르고 자동차보단 느린 자전거에선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 야자수 뻗어 있는 해변만 하와이가 아니다. 자전거로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다 보면 새로운 모습이 보인다. 하와이는 많은 것을 품고 있다. 자전거에서 빅아일랜드의 다양한 컬러를 만끽했다.

하와이는 열대의 대양과 활화산 그 극단의 앙상블을 품은 땅이다. 천상의 풍경을 지닌 하와이를 자전거를 타고 돌았다. 하와이 그 날것의 촉감을 두 바퀴로, 온 몸으로 전율하는 여행이다.

막 떠오른 태양의 빛이 투명한 공기를 날카롭게 가르기 시작했다.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바라보는 야자수가 순식간에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이른 아침 태평양의 작은 섬은 총천연색들의 힘겨루기로 분주했다. 하와이 빅아일랜드의 아침은 자전거여행자를 그렇게 강렬하게 맞이했다.

하와이 빅아일랜드 해변에서 섬 중심으로 들어가는 도로를 따라 자전거여행자들이 달리고 있다. 지역별로 강수량이 크게 차이나 멀지 가지 않아도 다양한 풍경을 만끽할 수 있다. 토마스컴파니 제공
해변에서 사바나까지

태양의 기세가 더 강해질라 재빨리 안장에 올라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첫 날은 빅아일랜드 서쪽 편에 위치한 숙소 로얄코나리조트에서 북동쪽으로 난 길을 따라 섬 안쪽에 위치한 와이콜로아 지역까지 갔다 회귀하는 110㎞ 코스를 달린다.

첫 날 코스와 고도. 스트라바(strava) 캡처

짙푸른 바다 옆 야자수 사이를 달리다 섬 안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오르막이다. 화산활동으로 생긴 하와이는 해변에서 섬 중심부로 들어갈수록 고도가 높아진다. 영락없는 고깔 모자다. 해변으로 나있는 일부 도로를 제외하고 대부분 오르거나 내려야 하는 비탈길이다.

바다 내음 섞인 아침 공기를 여유롭게 즐기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다. 지체했다간 적도의땡볕에 여지없이 담금질 당해야 한다. 적도 위 한낮 태양은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그나마 볕이 부드러운 오전에 둘러보는 것이 좋다. 꾸역꾸역 페달을 밟으며 고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야자수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름 모를 큰 나무가 띄엄띄엄 자리하고 있을 뿐 볼품없는 잡풀만 길가를 메우고 있었다. 탄성을 자아낼 만한 풍경은 쉽사리 나타나지 않았다.

도로변에 떨어진 열대 과일.

30분쯤 달릴 무렵 실망한 시각 대신 후각이 반응했다. 달짝지근한 향기가 코 끝을 자극했다. 떨어진 망고다. 까만 아스팔트 위에서 노란 망고가 온 힘을 다해 마지막 향기를 뿜어대고 있었다. 떨어질 열매라곤 은행밖에 없는 우리나라와는 달랐다.

낯선 곳에서 만난 달콤한 향기에 취해 힘든 것도 잊었다. 꾸준히 페달을 밟았더니 해발고도 600m의 언덕 정상에 이르렀다. 언덕을 넘기 전 녹색 일색이었던 풍경은 다른 세계에 온 것처럼 완전히 달라졌다. 먼저 빅아일랜드 서쪽 태평양이 한 눈에 들어왔다. 바다와 하늘은 깊고 투명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까만 땅 위엔 키 작은 풀이 여기저기 노랗게 폈다. 이곳은 이 섬에서 가장 건조한 지역으로 사바나 기후를 보이는 곳이다.

언덕을 넘자 새로운 풍경이 펼쳐졌다. 토마스컴파니 제공

안타깝게도 처음으로 감탄한 이 풍경이 첫날 여행의 마지막이었다. 반가움이 지루함으로 바뀌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황량한 풍경은 끝없이 반복됐다. 돌과 풀 말고 아무것도 없는 모습이 계속 펼쳐졌다. 중천에서 절정으로 타오르고 있는 태양을 피할 방법도 없었다. 빠르게 이동하지 않으면 노란 풀처럼 바싹 마르게 되리라. 태양이 도깨비처럼 요술을 부리는 건지 내리막처럼 보이는 오르막은 자전거 여행자를 고통스럽게 했다.

하지만 단 몇 시간 만에 열대기후와 건조기후를 경험한 것만으로도 가치 있는 일임이 틀림없었다. 그것도 자전거로 말이다.

뜨거운 태양을 피해 구름 속으로 들어왔다. 완전히 다른 세계다.
구름을 타다

둘째 날은 해발고도 1,300m를 오르는 코스다. 섬 중심부로 다가간다. 오후 3시 무렵 숙소를 출발했다. 해변의 태양은 여전히 강하게 타올랐지만 목적지인 산 중턱에는 구름이 걸려 있었다. 섬 안쪽으로 들어가면 구름 아래서 태양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날씨는 비까지 예보돼 있어 더위 걱정은 줄었다.

둘째 날 코스와 고도. 스트라바 캡처

해발고도 200m 정도 올랐더니 구름이 태양을 가려준다. 400m 정도 올랐을 땐 빗방울이 한 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했다. 거친 숨을 몰아 쉬며 가파른 오르막을 몇 개 올랐다. 고도 600m에 이르자 구름 속으로 완전히 들어왔다. 살갗에 작은 물방울이 닿았다. 얼굴에 분사하는 방식의 수분 보충제를 온 몸에 뿌리면 이런 느낌일까. 10m 밖도 보이지 않았다. 속도, 방향을 가늠할 수 없었다. 그저 페달에 느껴지는 무게와 소리로 움직였다. 모든 감각을 동원해 자전거를 움직여야 했다. 어쩌면 자전거만 누릴 수 있는 특혜일 수도 있겠다.

구름 속에서 시야가 급격히 줄었다.

경사도 17~18%에 이르는 비탈길을 서너 개 오르며 지쳐갔다. 다소 완만한 길에서 숨을 고르며 다리를 쉬게 하며 느리게 가고 있던 찰나 자욱한 안개 속에서 갑자기 잿빛 생명체가 튀어 나왔다. 집채만한 개가 낮고 굵은 소리로 짖어대며 자전거를 몰아붙였다. 대형견에 물려 성인이 사망했다는 뉴스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발로 공격을 해야 할지, 내려서 자전거를 사이에 두고 대치해야 할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개를 공격해서 다치게 해 주인이 커다란 총을 들고 쫓아오는 장면도 떠올랐다. 언덕을 올라오느라 페달을 힘차게 구를 힘이 없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개에게 소리를 지르는 것뿐이었다. 그래도 미국땅이라고 영어가 나왔다. ‘헤이, 헤이, 헤이…’ 개를 향해 소리치며 남아있는 모든 힘을 다해 페달을 밟았다. 다행히 그 개는 30여m 정도를 더 쫓아오다 돌아갔다.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먼저 간 일행이 보이길 고대하며 계속 페달을 돌렸다. 안개 속에서 공작새를 보고 자전거에서 내려 촬영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대형견의 공격을 받을 것이 두려워 그냥 지나갈 수밖에 없었다. 5분 정도 더 달렸을까 드디어 일행들이 보였다. 자전거로 거닐던 꿈을 개 때문에 화들짝 깬 것으로 둘째 날의 자전거 여행은 끝났다.

오르락 내리락이 반복되는 길에 숨이 차 올라도 드넓은 태평양을 마주하면 가슴이 뻥 뚫린다. 토마스컴파니 제공
맑고 투명한 바다를 지나

이번엔 방향을 바꿔 숙소에서 남쪽으로 향했다. 해안을 따라 달리다 다시 안쪽으로 돌아오는 코스다. 어느 곳을 가든 바다가 시야에 들어온다. 태평양 바다를 마음껏 누릴 수 있다.

셋째 날 코스와 고도. 스트라바 캡처

투명한 바다 옆을 지나다 바다거북을 여럿 만났다. 형형색색 열대어는 손에 잡힐 듯하다. 그저 스쳐 지나며 보는 것만으로도 청량감이 느껴진다.

해변에서 만난 바다거북.

열대우림 터널이 만든 신선한 산소가 폐 속 깊은 곳까지 스며든다. 잔뜩 압축해 포장해 오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사람 얼굴만 한 꽃이 떨어진 길을 지나는 호사를 누리기도 했다. 어김없이 태양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더 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욕심이다. 빅아일랜드를 달린 은륜엔 이미 충분한 추억이 새겨졌다.

하와이=김주영 기자 will@hankookilbo.com

하와이의 자전거 환경과 문화가 궁금하시면 아래 기사를 보시면 됩니다.

하와이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자전거 천국

관련 기사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치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