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나는 이렇게 흘러가는 순간을 거머쥐지 못하고 바라만 보는 것일까. 고대 히브리 시인이 말한 것처럼 인간은 결국 한 줌 흙인가. 이 질문이 오년 전 나에게 낯선 손님으로 찾아왔다. 그 후 매일 아침 가만히 앉아 묵상하는 나에게 같은 질문을 던진다. “너는 누구냐?” 이 질문으로 나는 ‘나’를 보기 시작했다. 말하는 나, 숨 쉬는 나, 음식을 먹는 나, 음악 소리를 듣는 나, 꽃향기를 맡는 나. 그리고 습관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나. 그런 나를 관조하며 새로운 나를 꿈꾸기 시작했다.

‘내가 갈망하는 나’와 ‘현재의 나’는 딴 사람이었다. 지난 세월이 흐르는 물처럼, 무심하게 흘러가 버렸다. 내가 원하는 삶이나 그 궤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애써 기억이란 그물을 짜 흘러간 세월에 던졌지만 내가 끌어올린 물건들은 이기심과 욕망의 순간들뿐이었다. 이제부터는 과거의 나와 그것을 습관적으로 연장하는 현재의 나를 멈춰, 새로운 나, 나만의 나, 내가 간절히 원하는 나를 위해 새 길에 들어서고 싶다.

자신의 유일하면서 거룩한 정체성을 찾기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할까 ‘거룩’이란 남들과는 구분된 자신만의 최선의 정성스런 제단을 만들 때 형성되기 시작한다. 어디서 내가 그런 최적의 삶의 문법을 찾을 수가 있을까. 인류가 남긴 고전들은 바로 이 문법을 적어놓은 나침반이다. 이 나침반을 통해 자신만의 길을 찾으라는 지혜다. 고전작가들은 그 길을 ‘은유’라는 장치를 통해 말한다. 은유는 인간이 가진 언어의 부족함 때문에 생겨났다. 우리는 정의하고 싶은 어떤 대상을 언어라는 매개체로 충분히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은유를 이용하여, 우리 각자만의 나침반을 만들어 새로운 삶을 살고자 한다.

이 고전들은 인생을 ‘여정(旅程)’이란 은유로 설명한다. 여행을 갈 때 가장 필요한 덕목이 무엇인가. 숙박시설이나 운송수단 예약, 적절한 의상, 여권, 여행 동료들…. 여기에 나열한 것들도 중요하지만, 이것이 없다면 여행이 성립되지 않는 가장 근본적인 것이 있다. 바로 목적지 설정이다. 출발점, 목적지, 그리고 중간과정인 한 걸음 한 걸음이 여정을 만든다. 인생에 있어 출발점이란 자신의 존재를 가능하게 해준 운명적인 환경이다. 나의 부모, 고향, 환경… 이런 것들은 나를 키워준 육체적인 공간이다. 이 출발점은 목적지로 가기 위한 동기를 마련해 주는 기반이면서 과감히 벗어나야 할 진부함이다. 이것은 새끼 거북이가 자신의 임시 치아로 깨야 할 알이며, 애벌레가 나비가 되기 위해 자신이 인내하며 견뎌야 할 고치다. 우리는 이 공간이 익숙하고 편하기 때문에, 좀처럼 탈출하지 않으려 한다. 그것이 자신의 온 세상이라고 착각하다가 그 안에서 자신도 모르게 부패하기 마련이다.

그 운명적인 공간이 자신을 진부한 사람으로 만드는 괴물이라고 느낀 한 인물이 있었다. 지금부터 700년 전, 이탈리아 피렌체에 거주하던 정치가 단테다. 단테는 고리대금업을 하던 아버지를 창피하게 여긴다. 그는 자신이 상상하는 최선의 인물이 되고 싶었다. 운명은 그를 휘몰아쳐 정치가로서 꿈을 좌절시켰고 자신의 고향 피렌체도 돌아올 수 없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이 추방은 그를 위대한 시인으로 만든 장치였다.

이 유배가 단테에게 자신만의 별을 찾을 수 있는 캄캄한 밤하늘이 되었다. 그는 자신에게 온전히 몰입했다. 그는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자신의 마음속에서 숨어있던 감정(感情)이란 것을 느꼈다. 당시 유럽 지식인들은 지성(知性)을 인생의 등불로 생각했다. 그들은 지성만이 인간의 불행을 풀 수 있는 열쇠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단테는 지성이 아니라, 자신의 심연 속에서 일어난 사사로운 감정인 ‘사랑’과 그것을 실천하려는 ‘의지’를 발견하였다. 그는 첫 작품 ‘비타 누오바’(Vita Nuovaㆍ신생) 24단락에서 노래한다. “나는 내 심장 안에서 잠자고 있는, 사랑으로 충만한 영혼(spirito amoroso)이 깨어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 사랑(amore)이 저 멀리서 오는 것을 인식하고 너무 기뻤습니다.” 단테는 자신의 마음속에 있었던 ‘사랑’이란 영혼이 기지개를 켜고 깨어나는 것을 느꼈다.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 숨어있는 지극히 사적인 감성인 ‘사랑’이란 자신에게 고유한 별을 본 것이다.

고유(固有)라는 한자에서 ‘固’ 자는 자신만의 공간인 ‘에워쌀 위(口)’와 ‘옛 고(古)’가 합성된 것이다. ‘옛 고’는 대대로 10대에 걸쳐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자신만의 전통으로, ‘평안하다, 진실로, 참으로, 한결같이’란 의미다. 단테가 발견한 ‘사랑’이라는 마음속 별은 저 하늘의 별들보다, 중세를 풍미하던 철학적인 담론이나 신학적인 교리보다 더 반짝였다. 그 찬란한 광휘는 구태의연한 어두운 과거의 전통 안에 신음하던 인간들을 깊은 잠에서 깨웠다. 단테의 고유함은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을 촉발하는 자극제가 되었다.

자신의 고유(固有)가 나를 온전히 만들고 나를 만족시킨다. 고유함은 항상 새롭게 매일 발견되어 변화하는 보석이다. 그것은 놀랍고, 예상 밖이며, 심지어 생소하고 상상을 뛰어넘는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당신의 고유함을 찾은 적이 있으십니까.

배철현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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