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북한의 제5차 핵실험 감행이 국내외에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직접적으로는 북한의 무모한 핵 개발에 대한 극단적인 실망과 분노, 그리고 그동안 국제적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에 대한 좌절감과 절망감이 교차하고 있다.

이러한 절망감과 좌절감은 북한 비핵화에 대한 피로를 동반하고 있다. 지난 20여 년간 북한 핵실험과 이에 따른 제재를 거듭해 왔다. 이번에도 보다 강력한 제재를 소리 높여 외치면서도 어딘가 한구석에 제재의 실효성에 대한 공허감을 느끼고 있다.

이런 좌절과 공허감은 국내적으로 과거 정권의 대응전략에 대한 비방과 함께 핵개발이나 전술핵무기 도입, 북한 정권의 궤멸 등 극단적 대응방안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북한의 맹목적 핵개발 추진 행보를 고려한다면 이런 분위기는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냉정함을 잃지 말아야 한다. 국내외에서 흥분이 커지면 커질수록 북한의 핵개발이나 도발을 더욱 부추길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돌파구가 없을 것 같은 벼랑 끝에서라도 과거를 되돌아보며 새로운 전략을 모색할 때다. 뉴욕타임스도 북한의 도발적 행위에도 불구하고 남은 것은 대화라는 입장을 보인다.

지난 20여 년간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접근들의 심각한 문제는 비핵화를 회담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워왔다는 것이다. 미국의 전략적 인내도 한국 정부의 입장도 이런 전제를 깔고 있다. 그러나 이런 전제는 미국 전 국방장관 윌리엄 페리가 “우선 시급한 것은 북핵무기 프로그램을 동결하는 것”이라 말한 바와 같이 현시점에서 비현실적이다. 이제 북한의 비핵화는 중장기적 목표가 될 수밖에 없다.

또한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 구조는 문제 해결에 효율적인 기제가 아니었다. 회담개최에 끊임없는 시간 끌기, 6자 간 좁혀지지 않는 이견과 이를 이용하는 북한, 상호 책임 전가 등으로 북한 핵개발에 시간만을 벌어준 결과만 낳았다.

북한 핵개발이 진행되는 동안 국제사회의 역학 관계의 변화는 북한핵을 보는 시각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특히 북한의 비핵화가 미ㆍ중의 일정한 합의를 전제로 하고 있던 시기에서 미국과 중국의 지역적 국제정치적 이익에 북핵 문제가 종속되는 변화를 겪고 있다. 현재 각국이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현실적 기대감이 일치하는지 불투명하다.

국내 차원에서도 북한 핵개발의 지속적 추진에 따라 한반도 문제가 더욱 국제화되면서 국제공조라는 이름 아래 남한의 북한에 대한 정책적 전략적 지렛대가 점점 효과를 잃고 있다.

한마디로 북핵 문제는 누구도 그 사태의 심각성과 해결의 당위성에 대해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사실상 방기된 채 표류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놓여 있다. 결국 북핵문제가 정치적 차원에서 군사적으로 이전되고 있다.

한국은 이런 전략적 공백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새로운 전략적 구상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한국이 가장 직접적인 이해당사자이기 때문이다. 그 구상의 핵심적 내용은 북핵문제의 현실 인식에 기초하여 군사 기술적 차원과 정치적 해결을 새롭게 연계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동시에 6자회담 틀에서 벗어나 보다 효율적인 방식을 구상해야 한다. 이와 함께 북핵문제 해결의 우선순위를 각국에 인식시키는 외교적 노력을 전개해야 한다. 한국은 북핵에 대한 국제적 좌절감과 피로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전략과 방식의 개발 위해 새로운 국제적 논의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관련 당사국들은 물론 그동안 소외되었던 유럽국가들을 포함한 토론의 기회를 만들고, 이를 통해 북핵문제의 중장기적 해결 프로세스에 관한 새로운 생각과 이에 대한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그 구체적인 추진 방법의 하나로 구태의연한 6자회담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한국이 주도하는 3자회담을 추진하는 것이 보다 효율적일 것이다.

끝으로 국내 차원에서는 지금까지 역대 정권이 보여준 형식적이고 사후적인 초당외교 시늉에서 벗어나 주요 외교문제에 대해 사전적이고 실질적 초당외교를 펼쳐 대외적으로 일관된 전략과 정책 추진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 절실히 요청된다.

이러한 노력이 결실을 거둔다면 한국은 위기 상황을 벗어나 한반도와 지역 평화 구축을 위한 리더로서의 위상을 쌓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하용출 미국 워싱턴대 잭슨스쿨 한국학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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