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공기업을 행정부가 가장 확실히 통제하는 나라가 우리나라다. 이러한 통제가 지금까진 성공적이었다. 전력 공항 철도 고속도로 등 우리 공기업의 서비스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방만 경영 지적도 없진 않으나 이만 하면 효율성도 그리 나쁘진 않다. 다만 아쉬운 점은 창의성 부족이다. 공기업도 4차 산업혁명의 일원으로 창의적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공기업이 경영의 자율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중요한 공기업 경영을 자율에 맡겨도 되는가. 삼성전자도 국가적으로 매우 중요하지만 정부가 경영에 간섭하거나 평가하지 않는다. 삼성전자를 평가하는 것은 소비자, 주주, 이사회의 3각 편대다.

먼저 소비자는 기업의 서비스를 평가한다. 소비자의 평가가 작동키 위해선 공기업에도 경쟁이 도입되어야 한다. 그러면 공기업 통제력이 정부에서 소비자로 이동한다. 최근 전력, 철도 등에 경쟁도입이 논의되는 건 환영할 일이다. 한편 주주는 기업의 가치를 평가한다. 주주의 평가가 작동키 위해선 공기업도 상장되어야 한다. 공기업 상장은 경영 투명성과 자본유치에도 긍정적이다. 최근 공항과 발전사의 상장이 논의되는 건 환영할 일이다. 공기업 상장은 민영화가 아니다. 한전, 가스공사는 상장되어 있지만 공기업이다.

이사회는 기업의 경영을 평가한다. 경쟁도입과 상장 후 공기업 정책의 화룡점정은 이사회의 역할 확립이다. 그러나 공기업 이사회는 제 역할을 못 한다. 안건은 사전에 주무 부처에 보고되어 방향이 결정된 후 이사회에 상정된다. 집행부에 대한 견제도 미약하다. 이사회는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첫째, 이사장제를 부활시키자. 공기업 이사장제는 1990년대 말 옥상옥, 낙하산 비판을 받고 폐지되었다. 옥상옥은 이사회 권한이 약하다 보니 필요 없는 절차로 보여 나온 말이다. 이사회가 제 역할을 하면 옥상옥이 아니라 필요한 지붕이 된다. 이사장은 공기업 집행부의 독단을 견제하고 정부의 무리한 요구나 과도한 간섭을 차단해 줄 수 있다. 한편 대통령제하에서 낙하산을 전면 불인정하는 건 비현실적이다. 더 중요한 자리인 장관은 모두 낙하산 아닌가. 공기업 이사장 후보도 간단한 정책 청문회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하면 어떨까 한다. 대신 공기업 사장은 철저히 공모제로 뽑아 전문성 높은 인사를 임명해야 한다.

둘째, 이사회 멤버는 사장을 제외하곤 전원 사외 비상임이사로 하자. 지금은 사내의 상임이사와 사외의 비상임이사가 대체로 균형을 이룬다. 상임이사는 전원 사장과 같은 입장인 반면 비상임이사는 입장이 갈리기 십상이다. 더구나 집행부는 더 많은 정보로 무장하고 있다. 비상임이사가 역할을 하기 어려운 구조다. 반면 항만공사의 이사회 격인 항만위원회는 사장을 제외한 전원이 비상임이사다. 집행부에 대한 견제가 상대적으로 강하다. 비상임 이사 임기도 현행 2년보단 사장과 같이 3년이 낫겠다. 그래야 사장의 성과에 대한 이사회의 책임이 커진다. 반면 비상임 이사 임기는 단임이 좋겠다. 연임하면 아무래도 견제의 날이 무뎌질 수 있다.

셋째, 정부이사제를 부활시키자. 과거에는 주무 부처와 경제기획원(나중엔 재정경제원) 공무원이 이사회에 참여하였으나 1990년대 말 공기업 자율성 확대를 취지로 중단되었다. 그러나 자율성은 확대되지 않았다. 이사회를 통한 공개 개입이 전화를 통한 비공개 개입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정부는 책임회피를 위해 비공개 개입을 선호한다. 4대강, 해외자원개발도 그런 방식으로 시작되었다. 이제 정부는 직접 이사회에 참여하여 공식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그래야 무책임한 과잉개입을 막을 수 있다. 대통령이 임명한 이사장이 존재하고 비상임이사로만 구성된 새로운 이사회는 정부이사와 대등한 논의를 펼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공기업에 대한 정부의 통제력을 소비자, 주주, 이사회에 돌려줄 때이다.

박진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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