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가 없는 이들에게 목소리를 주는 게 정치라고 말한 사람은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다. 민주주의는 누구나 1인 1표를 가진 평등한 체제다. 하지만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말과 토론에서 국민 모두는 평등하지 않다. 어떤 이들은 자기 말을 통해 토론의 주인공이 되고, 어떤 이들은 자기 말을 갖지 못한 채 방관자로 남아 있게 된다.

말이 곧 목소리다. 목소리를 박탈당한 서민과 목소리를 내지 않는 중도층이 하고 싶은 말을 대변하는 것, 그리하여 1인 1표의 평등이라는 이상을 올바로 실현하는 게 민주정치다. 말의 다른 이름은 시대정신이다. 시대정신이란 미래에 대한 사회적 소망과 국민적 열망이 응결된 가치의 결정체다. 목소리를 준다는 것은 이러한 소망과 열망을 대표한다는 것을 뜻한다.

김부겸, 남경필, 안희정, 원희룡, 오세훈, 유승민, 이재명. 8월 초부터 9월 초까지 한국일보 기획 ‘2017 도전하는 리더들, 시대정신을 말하다’에서 만난 이들이다. 정치부장이 인터뷰한 유승민을 제외하고 나는 질문지를 만들어 여섯 정치인의 육성을 직접 들었다. 내가 알고 싶었던 것은 이들이 어떤 목소리를 대변하는지, 어떤 현실 인식과 미래 비전을 갖고 있는지의 시대정신이었다.

이들에게 발견한 것은 세 가지다. 첫째, 경제정책을 중심으로 한 시대정신에서 보수와 진보의 거리가 좁아지고 있다. 보수의 경우 ‘공존과 상생’(오세훈), ‘경제정의’(유승민), ‘공유적 시장경제 모델’(남경필), ‘경제의 고도화’(원희룡)는 성장 패러다임에 묶여있던 기성 보수를 뛰어넘는 시대정신이었다. 진보의 경우 ‘공존의 공화국’(김부겸), ‘함께 합시다’(안희정), ‘기회 독점 해소’(이재명)는 분배 패러다임을 중시했던 기존 진보보다 포괄적인 시대정신이었다. 가장 진보적인 정치인으로 알려진 이재명은 ‘법과 상식’을 존중하는 보수주의자로 자처하기도 했다.

둘째,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해법 제시에도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보수 리더들이 불평등에 대응하는 불공정 해소와 사회적 타협을 내세웠다면, 진보 리더들은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재분배 강화와 사회통합 제고를 부각시켰다. 흥미로웠던 것은 오세훈과 원희룡이 유럽 국가들이 추진해온 노사 간 사회적 대타협을 적극 강조했다는 점이다. 일곱 정치인들의 구상은 유승민과 김부겸이 일찍이 제안한 ‘중부담ㆍ중복지’ 정책으로 수렴하는 것으로 보인다.

셋째, 대외정책의 측면에서 보수와 진보의 거리는 여전하다. 오세훈, 유승민, 남경필, 원희룡은 사드 배치 결정을 지지한 반면, 김부겸, 안희정, 이재명은 사드 배치 결정에 반대했다. 주목할 것은 보수 안에서 남경필이 ‘미ㆍ중 대화와 합의’를 제시하고, 진보 안에서 안희정이 ‘균형자로서의 미국의 역할’을 강조했다는 점이다. 대북정책과 대미ㆍ대중정책에서 보수와 진보 모두 변화 가능성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2017년 대선 구도를 논하기엔 아직 이르다. 이들보다 반기문, 문재인, 안철수, 박원순, 김무성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더 높다. 하지만 이들이 내년 대선은 물론 2022년 대선까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일곱 정치인들에게 두 가지를 당부하고 싶다.

첫째, 정치는 말로 존재를 드러내는 동시에 그 말의 결과를 책임져야 한다. ‘낡은 정치 청산’(노무현정부), ‘선진일류국가 구현’(이명박정부), ‘국민행복시대 개막’(박근혜정부)의 비전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냉정히, 겸허하게 돌아보길 바란다. 국민 다수가 원하는 것은 새로운 시대정신 못지않게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선하고 지혜로운 권력의지다.

둘째, 저성장ㆍ불평등ㆍ인구절벽ㆍ제4차 산업혁명에 대해 실현 가능하고 지속가능한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제시해야 한다. “모든 이론은 회색이라네. 그러나 삶의 황금 나무는 초록색이지.” 시대정신이란 말을 알린 괴테의 ‘파우스트’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이다. 시대정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론이 아니라 삶, 다시 말해 국민 다수가 자유롭고 평등하게 먹고 사는 문제의 해결에 놓여 있음을 언제나 기억하길 바란다. 간절한 소망이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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