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영기자의 TV 다시보기]

박보검(왼쪽)과 김유정은 KBS2 월화극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세자와 내시로 변신해 로맨스를 펼친다. KBS제공

“‘해를 품은 달’(MBC)이나 ‘성균관 스캔들’(KBS) 등 다 비슷하다고 하는데 모두 인정합니다. 그저 드라마가 잘 되길 바랄 뿐이죠.”

파격적인 멘트였다. 창작자들에게 모방이나 표절, 아니 그 유사한 단어조차도 입에 담기 어려운 금기어다. 그런데 KBS2 월화극 ‘구르미 그린 달빛’(‘구르미’)의 강병택 총괄프로듀서(CP)는 주위의 우려를 인정했다.

퓨전사극이라는 공통점에다 김유정이 출연했고(‘해품달’), 남장여자가 등장하니(‘성균관스캔들’) 어찌 달라 보일 수 있을까 말이다. 하지만 강 CP뿐만 아니라 KBS 드라마국도 “하늘 아래 어찌 새로운 게 있을쏘냐’식으로 달관한 자세를 취했다. 마치 드라마국이 ‘욕받이’가 될 테니 제발 ‘구르미’만은 봐 달라는 몸부림처럼 보였다.

‘태양의 후예’ 대성공으로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갔던 KBS가 의기소침한 모습을 보인 건 수목극 ‘함부로 애틋하게’의 충격 탓이다. 같은 사전제작 드라마로 승승장구할 것이라 여겼던 터라, 한 자릿수 시청률에 광고도 붙지 않고 있는 ‘함부로 애틋하게’가 ‘애물단지’로 전락한 상황이다. 그러니 ‘구르미’에 매달리는 건 당연했다.

그러나 KBS는 ‘구르미’의 첫 방송을 앞두고 한숨부터 내쉬어야 했다. SBS가 같은 퓨전사극 장르로 동시간대에 ‘달의 연인- 보보경심 려’(‘달의 연인’)를 편성해 맞불을 놓았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두 방송사는 보이지 않는 전쟁을 시작했다.

KBS2 월화극 ‘구르미 그린 달빛’과 같은 시간대에 경쟁을 펼치고 있는 SBS 월화극 ‘달의 연인, 보보경심 려’ SBS제공

잔잔했던 물결에 진동을 가한 건 SBS다. SBS는 ‘달의 연인’ 첫 방송을 앞두고 1, 2회를 연속 편성해 고지했다. 밤 11시대 방송 예정이었던 예능 프로그램 ‘꽃놀이패’의 촬영이 늦어져 방송할 수 없게 됐다는 이유를 댔지만, ‘선방’을 날린 셈이다. KBS도 바로 쌍심지를 켰다. ‘달의 연인’ 첫 방 직전인 오후 9시에 ‘구르미’의 1,2회를 요약한 특별판을 편성해 시청자를 선점하려는 작전을 폈다. 결국 29일 지상파 방송사 간의 볼썽사나운 모습이 전파를 탔다.

눈길을 잠깐 돌려보자. 지상파 3사는 ‘지상파 중간광고’를 허용해 달라고 방송통신위원회에 몇 년째 하소연하고 있다. 공동의 이익을 위해 한 목소리를 내며 종편과 케이블 채널보다 더 나은 환경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방송계에 따르면 올 1~4월 CJ E&M의 광고 매출은 1,345억원으로, KBS(1,237억원)와 SBS(1,150억원)를 추월했다. 지상파는 종편과 케이블 채널 탓에 먹고 살기 힘드니 지상파에 중간광고를 허용해달라는 주장을 특별 세미나 등을 통해 전방위적으로 펴고 있다. 이때는 각 방송사의 메인뉴스도 ‘한 편’이 된다.

하지만 드라마나 예능 등 콘텐츠 경쟁에서는 ‘으르렁’ 모드다. 시청률이 올라가야 광고시장에 어필할 수 있고, 그만큼 광고판매 수익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경쟁이야 불가피하지만 과도한 변칙과 서로를 향한 삿대질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내달 2일 한국방송협회가 주관하는 ‘제43회 한국방송대상 시상식’이 열린다. EBS를 포함해 지상파 방송사들이 회원사로 있는 협회의 가장 큰 행사다. 여기서 SBS의 보도가 대상을 받게 됐다는 소식에 KBS와 MBC는 축하 대신 떨떠름한 인상을 지었다. “아주 기분이 언짢다” “우리 방송사 분위기가 몹시 좋지 않다”는 반응까지 들린다. 이들의 관계는 과연 무엇일까. 아군인가, 적군인가.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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