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잠이 깼다. 그대로 누워 다시 잠을 청해보았지만 그럴수록 정신이 멀쩡해졌다. ‘딸바보 의식’을 치르기에 좋은 시간이니 잘되었지 싶었다. 두 눈을 비비고는 몸을 일으켜 살짝 안방 문을 열었다. 어둠 속은 금방 익숙해졌다. 평소처럼 아기침대 안에는 꾸부정하게 누워있는 아내와 곧 첫 생일을 맞이할 딸아이가 곤하게 잠들어 있었다. 혹여 잠을 깨울까 특히 조심하면서 양손을 바닥을 짚고 고개를 숙여 딸아이의 잠든 모습을 살피기 시작했다. 가만히 바라보는 것으로 시작하는 나만의 딸바보 의식 첫 순서다.

제일 먼저 살펴보는 것은 숨소리다. 호흡에 문제가 있어 태어나자마자 얼마 동안 인큐베이터에 들어가 있었기에 언제나 가장 먼저 확인하고 신경을 쓴다. 들숨과 날숨이 고르게 이어지는지, 또는 거칠거나 너무 얕지는 않은지 항상 귀 기울이는 것이 습관처럼 되었다. 뒤이어 몸 전체를 두루 살핀다. 이때 잠자는 아이의 몸이 아주 조금씩 움직이고 있는 것을 보기도 한다.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천천히 움직이는 동작을 보는 즐거움이 꽤 크다. 손가락을 뻗어 살짝살짝 딸아이의 발가락이나 머리칼을 만지면 아이는 움찔거리며 팔다리를 팔랑팔랑 흔들기도 한다. 가끔 아이가 큰 숨을 턱 내쉬기도 하는데 이때 바짝 긴장하게 된다. 혹시 잠이라도 깨면 아내의 불호령이 떨어지기에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매일 잠 설쳐가며 육아에 지쳐가는 아내를 위해 이 부분은 무척 조심해야만 한다. 그러나 꼼지락거리는 아이의 반응이 너무 귀여워서인지 의식의 절정인 이 순간을 쉬이 포기하지는 못한다. 절로 히죽거리며 큭큭 거리다가 아내의 꾸지람을 듣기도 하지만, 깨우지만 않으면 용서가 된다. 이윽고 눈가가 촉촉해지고 가슴이 따스한 기운으로 벅차오른다. 의식의 정점인 순간이다. 건강하게 다시 새로운 아침을 맞이할 딸아이의 존재가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내 딸로 세상에 나와 주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감사할 일이다.

홀로 울며 웃는 시간, 나는 이 시간이 무척 좋다. 세상 모두 잠든 새벽에 홀로 일어나 아내 몰래 치르는 ‘딸바보’만의 비밀의식은 늘 신비롭고 즐겁다. 아빠의 넘치는 의욕과 상관없이 시시때때로 터질 듯 울기는 하지만 그 울음소리에 짜증을 내거나 화가 난 적이 없다. 우는 것만큼 아이 스스로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최대한의 감정표현이 어디 있겠는가. 여느 팔불출 아빠들과 다름없이 나 또한 언제 어디에서나 아이가 보고 싶고 모든 순간이 그립다.

올여름 제주도 가족여행을 다녀오면서 딸아이는 처음으로 비행기를 탔다. 하늘 위에서 창문 밖을 바라보던 아이는 손바닥을 펼쳐 유리창을 만져보기도 했다. 마치 유리창 너머 뭉게뭉게 피어오른 구름 속으로 날아오르기라도 할 것처럼. 그 모습을 보는데 코끝이 찡해지고 말았다. 세상을 향한 아이의 호기심이 언젠가는 내 품을 떠나 세상 속으로 스스로를 이끌어가려니 하는 생각에 이른 것이다. 그때를 위해 더욱 단단해지길 바라는 마음과 자식을 멀리 보내는 아비의 서운한 감정까지 미리 들면서 어설픈 초보 아빠는 한없이 뭉클해지는 가슴을 다독여야 했다.

돌이켜 보면 참 새삼스럽다. 세상 여기저기를 떠돌며 나름의 자유혼을 꿈꾸던 내가 결혼과 더불어 딸바보 아빠가 되다니. 무엇보다 수십 년 시간이 흘러도 아빠와 딸의 관계가 동년배 친구처럼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 세상의 의미를 같이 살피고 힘들거나 기쁜 일들을 함께 나누며 자기 인생의 가치를 찾는 일에 늘 소홀함이 없는 그런 사이가 되었으면 참 좋겠다.

그렇기 위해 오늘도 나는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되고 싶다.

임종진 달팽이사진골방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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